강태식 소설 <126회>
다른 멤버들이 밤하늘 저 멀리 사라져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식칼 아줌마는 당황했다. 모래주머니는 분명히 풀었다. 바람까지 불고 있었다. 무게가 없기 때문에 날아가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식칼 아줌마는 여전히 착, 땅 위에 발을 붙이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건지, 뭐가 잘못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거기서 뭐 해? 빨리 와!”
저 높은 곳에서 스마일 영감님이 식칼 아줌마를 향해 손짓하고 있었다.
“이상해요, 영감님!”
“뭐라고? 안 들려.”
식칼 아줌마는 밤하늘에 대고 손나발을 불며 소리쳤다.
“갈 수가 없어요, 영감님!”
식칼 아줌마의 슬픈 목소리가 밤하늘 멀리 울려 퍼졌다. 지금은 맞은편 소파에 앉아 직접 내린 드립 커피를 천천히 마시고 있지만, 식칼 아줌마는 아지트 옥상에 혼자 서 있던 그 밤을 이렇게 회상한다.
“정말 찢어질 것처럼 가슴이 아팠다.”
지상에 남겨진 식칼 아줌마는 밤하늘 멀리 날아가는 멤버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신체적인 장애 때문에 피리 부는 사나이를 따라가지 못한 동화 속의 아이처럼 울고 울고 또 울었다고.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뭐. 헤어지기 싫었는데…….”
손을 흔들며 작별을 고하는 스마일 영감님의 웃음 가득한 얼굴에도 주르륵, 닭똥 같은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어딜 가시든지 몸 건강하게 잘 지내셔야 해요.”
다시 한번 식칼 아줌마는 캄캄한 밤하늘에 대고 손나발을 불었다. 눈물에 젖은 목소리가 아스라이 멀어져갔다.
“응, 우리 걱정은 하지 마. 너도 거기서 잘 살아야 해.”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이렇게 갑자기 헤어질 줄은 정말 몰랐다.
그동안 잘해줘서 너무 고마웠어요. 모두들 정말 보고 싶을 거예요.
아지트 옥상에 혼자 남겨진 식칼 아줌마는 스마일 영감님과 대걸레, 구둣주걱 아저씨가 까마득한 점이 되어 사라질 때까지, 캄캄한 밤하늘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까지, 뚝뚝, 눈물을 흘리며 그 자리를 뜰 수 없었다고 한다.
“그게 내가 본 멤버들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다음 날부터 몸 상태가 나빠졌다. 소화도 잘 안 되고 입맛도 별로 없었다. 처음에는 기분 탓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멤버들을 보내고 돌아온 날 밤에는 아무리 눈을 감고 있어도 잠이 오지 않았다. 뭘 해도 기운이 없었다. 정신 나간 사람처럼 하루 종일 멍하니 앉아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당신 왜 그래? 어디 안 좋아?”
돌주먹의 권유로 가까운 내과를 찾아갔다.
“여기가 아니라 다른 병원에 가보셔야 할 것 같은데요.”
돌팔이 의사 같았다. 식칼 아줌마는 속는 셈치고 다른 병원에 가보았다.
“그때 나는 이미 임신 6개월이었다.”
왜 날아갈 수 없었는지, 왜 혼자만 남겨졌는지, 그때 처음 알았다. 그러니까 내려놓을 수 없는 추라는 건…….
“임신 후 6개월이 지나면 태아의 평균 몸무게는 1.9킬로그램, 2킬로그램이 넘을 때도 많다. 결국 배 속에 2킬로그램짜리 추를 넣고 있었던 셈이다. 날아갈 수 없었던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식칼 아줌마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그때까지의 나는 사람의 감정이라는 걸 너무 단순하게만 생각했었다. 기쁨과 슬픔이 섞일 수 없고, 사랑과 미움이, 연민과 증오가 공존할 수 없다고 여겼다. 그렇게 앞만 보며 달려왔다. 내 인생의 목표는 복수였고, 내 삶의 원동력은 증오심이었다. 다른 건 생각하지 않고 살았다. 복수의 그날을 기다리며 마음속에 증오를 차곡차곡 쌓아 올렸던 거다. 그러다 돌주먹의 아이를 갖게 되었다. 이 배 속에서 원수의 아이가 자라고 있다니……. 나는 그런 나를 용납할 수 없었다. 하지만 더욱 용납할 수 없었던 건 나의 감정이었다. 나는 기뻐하고 있었다. 클래식 음악을 자주 듣게 되었고, 배를 어루만지며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를 상대로 말을 걸게 되었다. 그건 정말 놀라운 경험이었다. 증오하면서도 동시에 사랑할 수 있다는 걸, 사람의 감정이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돌주먹에 대한 감정도 비슷하게 변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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