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식 소설 <128화>
그 후로 1년이 지났다…… 고 하면 굉장히 아련하겠지만 시간은 그렇게 빨리 흐르지 않았다. 한순간도 멤버들의 얼굴을 잊은 적이 없었다…… 고 하면 어떨까? 비극의 주인공처럼 멋져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은 비극이 아니다. 비장하지도 아름답지도 않다. 오히려 희극에 가깝다. 모든 것이 빨리 퇴색되고 쉽게 잊힌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은 살 수가 없다. 어쩌면 비극의 주인공은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
나도 그랬다. 인상을 구긴 채, 쓴 소주를 마시며, 비탄과 슬픔에 잠겨 있을 수만은 없었다. 밥도 해야 했고, 밥을 먹은 후에는 설거지도 해야 했으며, 옷이 더러워지면 빨래도 해야 했고, 가끔씩은 먼지를 뒤집어쓰며 청소도 해야 했다. 화장실에 앉아서 힘을 줄 때는 인상을 구기기도 했지만 그건 비탄과 슬픔 때문이 아니었다. 술도 줄였다. 건강을 생각해서였다.
밤에는 유료 화장실에 앉아 손님을 기다리며 시간을 보냈다. 호황까지는 아니었지만 수입이 짭짤했다. 영업개시 전에 청소를 하고, 손님을 받고, 화장실 용품을 팔았다. 소변요금을 내고 대변을 보는 손님들도 있었다. 추가요금을 요구하면 오리발을 내밀었다.
“증거를 대봐. 증거를!”
화장실에 들어가서 맡아보면 냄새가 났다.
“내가 요실금이 있어서…….”
요실금은 대변이 아니라 소변을 지리는 증상이다. 하지만 따지지 않고 추가요금을 받았다.
손님이 들어간 화장실에서는 다양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들을 들으면서 생각했다. 사는 건 희극이라고……. 그리고 비극의 주인공은 절대 사람이 아니라고…….
세월이 약이라고 했던가. 하지만 생활은 세월보다 훨씬 효과가 확실한 약이었다. 세탁기나 청소기를 돌리고 있으면 딴생각이 들지 않았다. 쌀을 씻을 때는 콧노래를 흥얼거렸고, 화장실에 앉아서 힘을 줄 때는 잡지나 신문을 구독했다. 술에 취한 손님이 우웩! 영업용 변기에 구토를 하면 빠직, 이마에 핏줄이 섰고, 시큼한 냄새를 맡으며 그걸 치울 때면 불끈, 나도 모르게 주먹이 쥐어졌다. 그렇게 멤버들의 얼굴은 바쁜 생활 속에 묻혀 조금씩 조금씩 지워져갔다.
하지만 가끔은 인상을 구긴 채, 쓴 소주를 마시며, 비탄과 슬픔에 잠겨 허우적거릴 때도 있었다. 영업을 마치고 돌아와 문득 불 꺼진 아지트 창문을 바라볼 때, 이제는 저기에 아무도 없구나, 그런 생각을 하는 내 눈 속에 캄캄한 밤하늘이 흘러들어 고일 때, 마침 스산한 바람이 불고 발목에 찬 모래주머니 두 개가 그날따라 유난히 무겁게 느껴질 때, 반짝반짝 예쁜 별도, 휘영청 밝은 달도 물에 잠긴 듯 뿌옇게 젖어갈 때, 그럴 때 나에게는 인상을 구기며 비탄과 슬픔에 잠길 수 있는 쓴 소주 두 병이 필요했다. 아무리 날씨가 추워도 창문은 닫지 않았다. 매트 위에 자리를 잡고 앉아 강소주를 마시며 창문 밖을 내다봤다. 불도 켜지 않았다. 그렇게 술에 취하면 캄캄한 밤하늘이 더 잘 보이는 것 같았다. 어디선가 짜잔, 그리운 얼굴들이 불쑥 나타날 것 같았다. 하지만 한 잔 두 잔 술에 취해 비틀거릴수록 오래된 사진첩을 넘기듯 그리움만 깊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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