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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식 소설 <가드를 올려라> ⓒ이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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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식 소설 <129화>
“혼자서 마시면 못써. 중독돼.”
그날은 소주 두 병으로 부족했다. 편의점에서 소주 두 병을 더 사왔다. 그날따라 발목에 찬 모래주머니 두 개가 무겁게 느껴졌다. 불 꺼진 아지트 창문이 두 배쯤 어두워 보였고, 마침 불어온 바람도 두 배쯤 스산했으며, 그래서 평소보다 두 배쯤 오래 캄캄한 밤하늘을 바라보며 멍하니 서 있었다. 그랬다. 그날 나는 다른 때보다 두 배쯤 더 외로웠다. 멤버들의 얼굴도 두 배쯤 더 보고 싶었고, 그래서 소주도 두 배쯤 더 필요했다.
“인상 펴라. 주름 생긴다.”
처음에 들려온 목소리는 스마일 영감님이었고, 그 뒤를 이어 구둣주걱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리 술에 취해도 잊을 수 없는 목소리였다. 곧 대걸레의 목소리도 이어졌다.
“아저씨 그러다 폐인 돼요.”
처음에는 환청인 줄 알았다.
“참견하지 마.”
하지만 아니었다.
“지나친 음주는 건강에 해로워요.”
“안주라도 먹으면서 마셔.”
“취할 거면 곱게 취해. 행패 부리다 콩밥 먹는 수가 있어.”
깜짝 놀라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제일 먼저 문부터 확인했다. 하지만 아지트 문은 굳게 입을 다물고 있었다.
“여기야, 여기!”
그건 분명히 스마일 영감님의 목소리였다.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지트 저쪽 끝에 보이는 창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어이, 그동안 잘 지냈어?”
스마일 영감님이 그 창문 밖에서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술이 떡이 될 때까지 퍼마셨구먼.”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됐는지 아세요? 울컥, 설움이 복받쳤다.
“혼자 두고 가서 미안해.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데리러 왔어.”
영감님이 창문 밖에서 손을 내밀었다. 어디로 가는데요? 묻지 않았다. 그냥 잡으면 따뜻할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아저씨?”
드르륵, 바로 옆 창문이 열리더니, 이번에는 대걸레의 얼굴이 불쑥 튀어나왔다.
“벌써 죽은 줄 알았는데, 아직 살아 있었네…….”
대걸레 뒤에서 프레스에 눌린 듯 흉악한 얼굴이 스윽 다가왔다. 구둣주걱 아저씨였다. 정말 모두 여전하시네요,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시야가 흐려졌다. 모두들 정말,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아세요? 뺨을 타고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너 지금, 술 마시고 우는 거야?”
구둣주걱 아저씨에게 한 소리 들었다.
“혼자서 고생 많이 한 놈이야. 실컷 울게 놔둬.”
스마일 영감님의 애처로운 눈길이 느껴졌다.
“우리랑 같이 가요. 이제 여기 있을 필요 없잖아요.”
땅에 발을 붙이며 살아보리라, 아등바등 몸부림쳤던 지난날이 떠올랐다. 달콤한 행복 같은 건 거머쥐지 못했다. 이거다, 하고 손에 잡히는 의미도 발견할 수 없었다. 한 걸음, 한 걸음, 진흙탕 속을 걷는 기분으로 허우적거렸던 기억뿐이다. 울고 싶을 만큼 힘든 날도 많았고, 그래서 남몰래 눈물도 많이 흘렸다. 소박한 꿈은 결코 소박하게 이루어지는 게 아니었다. 소박한 행복도 마찬가지였다. 취직도, 결혼도, 내 집 마련의 꿈도 신기루 같았다. 잡으려 해도 잡을 수 없었다. 허들이 깔린 길을, 숨이 턱에 찰 때까지, 심장이 터져버릴 때까지, 쉬지도 않고 앞만 보며 달렸지만 남은 건 빈손뿐이었다. 대걸레의 말처럼 더 이상 여기 있을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허들을 뛰어넘으며 아무리 열심히 달려봐도 희망찬 내일의 약속 같은 건 기대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동안 고생 많았지?”
고생이라면 말도 못하게 많이 했다. 주르륵, 주르륵, 눈물이 앞을 가린다. 와이퍼 같은 게 있었으면 좋겠다.
“수고했어. 이제 그만하고 쉬어.”
“빨리 안 오면 우리 그냥 간다.”
“같이 가요, 아저씨.”
멤버들 모두가 창문 밖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몰라요.
몸이 비틀거렸지만, 발을 헛디디는 바람에 몇 번 넘어질 뻔도 했지만, 나는 멤버들을 향해 달려갔다.
발목에 차고 있던 모래주머니도 풀었다.
투둑!
이제 모래주머니 같은 건 필요 없다. 몸이 홀가분해진 기분이었다. 마음까지 가벼워진 것 같았다.
발이 붕, 공중으로 떠오른다. 한 발만 더 내디디면 창문 밖이다.
스마일 영감님, 구둣주걱 아저씨, 그리고 대걸레 너도……. 이렇게 마중 나와줘서 모두들 정말 고마워요!
(이상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가드를 올려라>를 사랑해주신 많은 분들에게 깊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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