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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경 소설 <오아시스> ⓒ이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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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경 소설 <1화>
커다란 방울뱀이 귓속을 파고들었다. 나는 눈을 떴다. 잠에서 완전히 깨어난 후에야 귓가에 감겨든 것이 뱀이 아닌 뉴스 시그널뮤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소리는 침실에서 흘러나왔다. 7시에 알람을 맞춰둔 라디오가 작동된 것이었다. 습관적으로 일어나려다 말고 나는 다시 몸을 늘어뜨렸다. 오늘은 쉬는 날이었다.
어젯밤, 나는 욕조에서 잠이 든 모양이었다. 어쩌면 침실에 누워 있다가 새벽녘에 빠져나온 건지도 몰랐다. 또 어쩌면 주방에 늘어져 있다가 이리로 옮겨온 건지도. 욕조 안에 웅크린 채로 파괴된 기억을 복구해보려 했지만 소용없는 일이라는 걸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바닥에 깔아둔 러그 위에 검붉은 얼룩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얼룩은 욕실 밖 거실에서부터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두 팔을 들어 눈앞에 가져다 댔다. 팔등과 손목 여기저기에 자해의 흔적이 보였다. 허벅지에는 제법 큰 상처가 있었다. 살점이 깨끗하게 찢기지 않은 걸 보면 이번에 사용한 것은 면도칼이 아닌 듯했다. 스테이크용 나이프 혹은 작은 톱 같은 것으로 그야말로 살점을 썰어낸 상흔이었다. 기억은 전혀 없었다. 약에 취했을 때의 일을 기억할 수 없게 된 건 이미 오래전이었다. 손상된 시간 속의 나는 요즘 들어 자해하는 취미를 새로 붙인 모양이었다.
G는 알몸인 채로 침대에 엎드려 자고 있었다. 2년 전 네바다 주에 흘러든 뒤부터 쭉 같이 살고 있는 멕시코 출신 여자였다. 구릿빛 피부 덕분에 G의 엉덩이는 더욱 탄력적으로 보였다. 육중하게 솟아난 둔부에 꽂혀 있던 시선을 거두고 등과 팔, 다리를 찬찬히 훑어보았다. 다행히 아무런 상처가 없었다.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 G의 엉덩이를 어루만지면서 생각했다. 중독된 걸까. 아니었다. 아직은 스스로 충분히 조절이 가능했다. 차를 몰고 벌판까지 달려가도 갑갑증이 사라지지 않을 때에만 약에 의지하는 정도였다. 잠에서 깨어난 G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키스해줘.
G는 눈을 감은 채로 중얼거렸다. 나는 상체를 숙여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G가 내 목을 끌어안으며 모로 누웠다. 나는 한 손으로 여체의 아름다운 능선을 오르내리며 G의 입술을 맞받았다.
방 안에 공기처럼 떠다니던 낮은 목소리가 이제 막 밀착되려는 두 덩어리의 육체 사이로 끼어들었다. 나는 G에게서 몸을 뗐다. 뉴스 앵커는 인근의 사막에서 신원을 알 수 없는 여성의 시신이 발견됐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도보 여행자들에 의해 발견된 시신은 이미 오래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이 부근에서는 간혹 있는 일이었다. 이곳뿐만 아니라 애리조나나 뉴멕시코, 텍사스 주에서도 이따금씩 일어나는 일이었다. 이곳의 기온은 사람을 죽이기에 충분할 만큼 뜨거웠다.
후안, 왜 그래?
G가 내 턱을 끌어당겼다. 헤이즐넛 빛깔 눈동자에 정염의 기운이 촉촉하게 감돌았다. G는 내 이름이 발음하기 어렵다며 끝 자인 ‘환’ 자만 불렀는데, 그마저도 제대로 발음하지 못했다. 앵커는 다음 뉴스를 전했다. 연예계 소식이었다. 연인이 세상을 떠난 뒤로 노숙 생활을 시작해 화제가 됐던 유명 배우가 거리에서의 삶을 청산하고 집으로 돌아갔다고 했다. G가 다시 한 번 내 턱을 세게 당겼다.
아냐, 아무것도.
고개를 저으며 웃어 보이자 G는 내 몸 위로 천천히 올라타며 길게 혀를 내밀었다. 혀끝에 달린 은색 피어싱이 반짝였다. G가 내 몸 구석구석을 정성껏 애무하는 동안 나는 천장에 매달려 빙글빙글 돌아가는 팬을 바라봤다. 쉼 없이 움직이는 물체 위로 그녀의 얼굴이 겹쳐졌다.
그녀는 아직도 사막을 여행 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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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경(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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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경
1980년에 태어났다. 201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젤리피시>가 당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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