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4.08.26 09:49 수정 : 2014.09.05 10:08

조수경 소설 <2화>


2.

2년 전, 그녀는 한국에서 불쑥 이곳으로 날아왔다. 내가 네바다 주에 이사 오고 몇 달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그녀를 다시 본 건 10년 만이었다. 그 10년 전에 그녀와 이별을 했고, 나는 곧바로 미국으로 건너왔다. 그 후에도 종종 연락을 주고받기는 했지만 갑작스러운 방문에 나는 반갑기에 앞서 조금 당황했다. 전화를 받고 그녀가 말한 곳으로 달려갔을 때, 그곳에 정말 그녀가 서 있었다. 라스베이거스 한복판에, 작은 가방 하나만 달랑 메고서.

짐은 그게 전부야?

가장 먼 곳을 여행할 때는 오히려 가방이 가벼운 법이지.

그녀는 눈썹과 어깨를 동시에 올렸다 내리며 수수께끼 같은 말을 지껄였다.

그녀를 데리고 가까운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비행기에서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는 그녀는 음식이 나오기가 무섭게 포크를 집어 들었지만, 몇 술 뜨지 못하고 주먹으로 가슴을 쾅쾅 두드렸다.

며칠 여행할 거야.

알약과 물을 삼키고 나서 그녀가 말했다.

같이 가줄래?

그녀는 무릎에 펼쳐둔 냅킨으로 입가를 닦아내며 내 눈을 응시했다. 나는 좋아, 하고 대답했다. 그때는 아직 일자리를 구하기 전이었다. 먼저 스트립을 돌아보고 마음이 내키면 그랜드캐니언까지 다녀올 수도 있었다.

아니, 그런 데 말고. 아무것도 없는 곳에 가보고 싶어. 이를테면 사막의 한가운데 같은.

그녀는 샴페인 잔을 비웠다. 사막의 한가운데라고? 나는 속으로 되물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지극히 그녀다운 선택이었다.

내일 당장 떠나자.

그렇게 말하고 그녀는 이제 막 생각났다는 듯이 덧붙였다.

참, 하룻밤 정도는 재워줄 수 있겠지?

나는 곧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 G가 짐을 챙겨 내가 살고 있는 집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G와 내가 서로를 사랑하는 건 아니었다. 그저 같이 살고, 같이 잠을 자고, 역할을 분담하고,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채워주는 효율적인 관계일 뿐이었다. 설령 G가 나의 연인이었다고 해도 그녀를 예전에 사귀었던 여자 친구라고 소개하면 그만이었다. 생각은 그렇게 하면서도 쉽게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머릿속에 뭔가 엉켜 있는 기분이었다.

사촌이라고 해. 같이 사는 여자한테는.

그렇게 말하고 그녀는 창가로 고개를 돌렸다. 그 뒤로 그녀는 별말이 없었다. 그녀를 데리고 집으로 가는 길에 나는 연거푸 담배를 피웠다. 내내 굳은 표정이었던 그녀는 현관문이 열리기 전까지 근육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활짝 웃는 연습을 했다. 나는 G에게 그녀를 ‘프렌드’라고 소개했다. 그녀는 G와 가볍게 포옹하며 상냥한 미소를 지었다. G의 혀끝에 달린 피어싱을 보고 귀엽다는 칭찬까지 해주었고, 그녀의 말에 G는 한동안 혀를 내밀고 바보처럼 웃었다. 그녀와 G, 그리고 나는 소파에 둘러앉아 맥주를 마셨다. 주로 그녀와 G 두 사람이 떠들었고 둘은 하나의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과장된 웃음을 터뜨렸다. 먼 곳에서 날아와 고단하다며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는 그녀를 G가 방으로 안내했다. 잘 자라는 인사를 건네고 그녀가 방문을 닫았을 때 G는 얼굴에 띄우고 있던 웃음을 곧바로 거두었다.

아직도 사랑해?

G의 물음에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맥주 몇 캔을 더 마신 뒤 G에게 이끌려 침실로 들어갔고 몇 차례 섹스를 했다. 그날따라 G는 유난히 큰 소리로 교성을 내질렀지만 내 신경은 온통 옆방에 쏠려 있었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그녀가 누워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자 몸은 수축되는 대신 한없이 팽창했다. 다음 날 아침 주방에서 그녀와 마주쳤을 때, 나는 그녀의 눈을 바로 볼 수 없었다. 그녀를 두고 밤새 외도를 하다 돌아온 기분이었다.




한겨레출판 문학웹진한판 바로가기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조수경의 <오아시스>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