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경 소설 <4화>
그녀와 나는 사막으로 떠났다. 정해놓은 코스도 목적지도 없이 남동쪽으로 차를 몰았다. 그녀는 조수석에 깊숙이 몸을 기대고 앉아 창밖으로 보이는 돌산을 가리키며 저쪽으로, 저쪽으로, 하고 외쳐댔다. 그녀는 꽤 들떠 보였고 나는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운전을 하는 동안 나는 이따금씩 그녀의 옆모습을 훔쳐봤다. 그녀가 웃을 때마다 눈가에 가느다란 주름이 파였다. 10년 전에는 없던 것이었다. 그 미세한 주름이 그녀가 걸어온 아득한 길처럼 느껴져 나는 담배를 꺼내 물었다.
미르는?
문득 그녀가 기르고 있다는 고양이가 떠올랐다. 가끔 통화를 할 때면 그녀는 고양이 얘기를 빼놓지 않았다. 어떤 날은 수화기 너머로 고양이의 가냘픈 울음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그녀는 5년 전에 고양이와 가족이 되었는데, 고양이가 창밖으로 달아나거나 어느 날 돌연하게 죽어버리지는 않을까 불안해했다. 나에게도 고양이 사진을 몇 장 전송해주었는데, 옅은 회색 털에 호숫빛 눈동자를 가진 생명체였다. 사진을 볼 때면 고양이를 감싸고 있는 가느다란 팔이나 고양이가 베고 있는 하얀 맨다리 쪽에 눈길이 더 오래 머물렀다. 그녀는 돌봐야 할 대상 때문에 집에 일찍 들어가게 된다고 말했는데, 그 애틋한 가족을 두고 어떻게 이 먼 곳까지 여행을 왔나 싶었다.
미르도 데려왔지.
응?
그녀는 아무 말 없이 가방을 뒤적거렸다. 가죽으로 만든 작은 주머니를 꺼내 끈을 풀고 안에 있는 것들을 털어냈다. 그녀의 손바닥에 작은 돌멩이가 수북이 쌓였다. 대부분은 회색이었고 옥색이나 옅은 분홍색 돌도 섞여 있었다.
미르야.
그녀가 손을 내 쪽으로 뻗었다. 털이 북슬북슬하던 고양이가 반짝거리는 메모리얼 스톤으로 변해 있었다.
미르가? 갑자기 왜?
그녀는 입술을 굳게 닫아버리고 손바닥에서 빛나는 작은 돌멩이들을 가만히 쓰다듬었다.
죽기 전에 다 삼켜버릴 거야. 그럼 영원히 함께할 수 있겠지.
미르를 도로 주머니 안에 집어넣으며 그녀가 중얼거렸다.
같은 필름을 반복해서 돌리는 것처럼 창밖으로 비슷한 풍경이 계속 이어졌다. 바싹 마른 흙과 자갈, 빛바랜 풀, 그리고 간간이 보이는 돌산이 전부였다. 도로 위에 달리는 차라고는 그녀와 내가 탄 차가 전부였다. 창밖으로 다리를 내밀고 있던 그녀가 갑자기 자세를 바꾸며 차를 세우라고 소리쳤다.
이제부터는 내가 운전할 거야.
나를 끌어 내리고 그녀는 어깨를 한 바퀴 크게 돌렸다. 내가 아는 그녀는 운전에 영 재능이 없었다. 그녀가 국제면허증을 소지하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지만 나는 순순히 조수석에 올라탔다.
길이 하나야! 이 넓은 곳에 길이 이거 하나뿐이라고!
그녀는 비명 같은 웃음을 내지르며 속도를 올렸다. 중앙선을 마음대로 넘나들며 클랙슨을 길게 울려댔다. 창문을 활짝 열자 뜨거운 바람이 몸을 밀치고 들어왔다. 그녀에게 세상 모든 길은 미로였다. 몇 년을 살면서도 그녀는 서울에서 종종 길을 잃곤 했다. 학교 앞에서 헤맬 때도 있었고 부모님이 계신 고향 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미국으로 떠나온 뒤에도 그녀는 쭉 연희동 부근을 벗어나지 않았다고 했다.
적어도 여기서 길 잃을 일은 없겠다.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할 필요도 없고.
그녀는 혼잣말처럼 말했다. 한 손으로는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칼을 쉴 새 없이 귀 뒤로 넘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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