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경 소설 <5화>
그녀와 나는 시간에 상관없이 길을 따라 달렸다. 배가 고프면 레스토랑이 나올 때까지 차를 몰고 가 끼니를 때웠고 화장실이 급할 땐 도롯가에 차를 세우고 바싹 마른 흙바닥에 작은 웅덩이를 만들었다. 도로에는 여전히 그녀와 내가 탄 차가 유일했고 이따금씩 화물을 싣고 달리는 대형 트럭과 마주칠 뿐이었다.
해가 떨어지자 사방에 빛이라곤 자동차 헤드라이트 불빛이 전부였다. 유령처럼 떠 있는 빛을 따라 얼마간 달리자 낡은 모텔이 나왔다. 그녀는 주차장에 아무렇게나 차를 세웠다. 내가 다시 차를 반듯하게 주차해놓고 내리자 그녀가 내 옆에 바싹 붙어서며 말했다.
으스스해. 영화에서 보면 꼭 이런 데서 살인 사건이 일어나곤 하잖아.
그렇게 말하고 그녀는 칼을 쥐고 나를 찌르는 시늉을 했다. 메마른 땅 위에 누워 있는 두 개의 그림자가 히치콕 감독의 영화 속 한 장면에나 나올 법한 기괴한 이미지를 만들었다.
먼저 모텔 문을 열고 들어가던 그녀가 하악, 하고 기침처럼 숨을 내뱉으며 뒷걸음질 쳤다. 이 일대에 서식하는 방울뱀이 그녀와 나를 향해 입을 크게 벌리고 있었다. 털이 붉은 여우는 며칠을 굶주린 듯 기가 죽은 모습으로 서 있었고, 칠면조는 암컷을 유혹하는 듯 꼬리 깃털을 부채처럼 펼치고 아름다움을 과시하는 중이었다. 벽에는 버펄로 머리가 모자처럼 단정하게 걸려 있었다. 곧 조악하게 만든 박제품이라는 걸 깨닫고 그녀는 나를 돌아보며 피식 웃었다.
여기 지하실 어딘가에 20년쯤 갇혀 지낸 여자가 있을 거야. 어쩌면 이미 박제됐는지도 모르지.
체크인을 하는 동안 그녀가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내내 끔찍한 말들을 농담처럼 던지던 그녀는, 그러나 잠자리에 들기 전 문과 창문이 잘 닫혔는지 거듭 확인했다. 그것만으로는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침대 옆에 놓인 의자를 끌어다 문 앞에 기대놓았다.
이곳에선 물을 자주 마셔야 해. 의식적으로.
나는 침대로 기어들려는 그녀에게 물병을 건넸다.
알아. 이미 여러 번 말했잖아.
그녀는 귀찮다는 듯 중얼거리고 물병 주둥이에 그대로 입을 대고 물을 마셨다. 이곳 사람들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탈수증으로 죽었다. 기온이 높아 땀을 많이 흘리지만 워낙에 건조한 지역이라 땀이 배출되는 즉시 증발돼버리는 바람에 수분을 빼앗기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말이야.
그녀가 다시 물병을 내게 건네며 말했다.
물을 안 마시는 거, 꽤 괜찮은 방법이겠다.
무슨?
자살 방법으로.
넌 여전하구나.
나는 한숨을 길게 쉬며 침대에 누웠다. 그녀가 아이처럼 웃으며 내 옆에 자리를 잡았다. 팔을 반으로 접어 베개처럼 베고 나를 빤히 들여다보던 그녀가 눈을 슬쩍 피하며 말문을 열었다.
아, 그 여잔 어때? G라고 했던가?
무심한 표정이었지만 그녀는 평소보다 높은 톤으로 말하고 있었다.
네바다 주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스트립 근처에서 저녁을 먹고 나오는 길에 싸움을 목격했다. 레스토랑 주차장 구석에서 남자 둘이 바닥에 쓰러진 누군가를 폭행하고 있었다. 그냥 지나치려다가 걸음을 멈췄다. 맞고 있는 쪽은 여자였다. 나는 차에서 총을 꺼내왔다. 만일 그들도 총을 가지고 있다면. 불길한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지만 발길은 이미 그들에게 향하고 있었다.
여자에게서 물러나.
총을 겨누자 그들이 양손을 높이 들며 저항할 의사가 없음을 표시했다.
꺼져버려.
그들은 한 발 한 발 뒷걸음질 치다 반대쪽으로 달렸다. 달아나면서도 여자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그들이 시야에서 사라진 뒤에 쓰러져 있는 여자에게 다가갔다. 바닥에 짙은 갈색 머리칼이 오염된 강물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괜찮아?
내 물음에 여자는 피에 엉겨 붙은 머리카락 사이로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나는 여자를 차에 태우고 집에서 가까운 바에 갔다. 함께 술을 마셨고, 여자를 데리고 집에 갔고, 자연스럽게 침실로 들어갔다. 그 여자가 G였다. G에 대해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 적당한 말을 고르고 있을 때, 그녀는 미간을 좁히고 나를 바라봤다.
너랑은 이제 안 해.
대답을 하기도 전에 그녀가 말했다. 그리고 내 품을 파고들며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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