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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경 소설 <오아시스> ⓒ이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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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경 소설 <6화>
대답 안 하기 게임 해.
배가 고파 들른 스테이크 하우스에서 주문한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며 그녀가 말했다. 창 너머로 메마른 땅 위에 석양이 뒤덮이는 풍경을 바라보다가 그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한쪽 얼굴에도 태양빛이 내려앉고 있었다. 도시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검붉은 빛이었다. 이곳의 모든 생물과 무생물이 지니고 있는 빛을 태양이 모조리 빨아들인 것만 같았다.
내가 먼저 시작할게. 첫 번째 질문. 솔직히, 나 여기 왔다는 전화 받고 귀찮았지?
당황하긴 했지만 귀찮은 건 아니었다. 순간적으로 억울한 마음이 들어 물음에 답하려는데 그녀가 검지를 길게 뻗어 내 입을 막는 시늉을 했다.
기억 안 나? 이 게임은 대답이 금지돼 있다는 거.
룰은 잘 알고 있었다. 대답 안 하기 게임은 십여 년 전 우리가 즐겨하던 놀이였다. 물론 그녀가 고안한 것이었다. 그녀의 질문은 그녀답게도 늘 자학적인 면이 있었다. 질문을 해놓고 대답을 듣지 않겠다는 태도 역시 그랬다. 그 질문이란 것에는 이미 스스로 만들어놓은 해답지가 첨부되어 있었고, 대답을 하지 못하는 상대방을 보면서 자신의 해답지에 오류가 없음을 확인하는 것과 같았다. 그렇게 함으로써 스스로를 비극에 몰아넣는 것이 그녀가 이 게임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었다.
네 차례야.
그녀가 턱 끝으로 나를 가리켰다.
집에서 재워달라고 한 거, 일부러 그런 거지? 내가 다른 여자랑 사는 거 보면서 괴로워하려고.
아직도 이런 놀이를 하고 있는 그녀에게 화가 나 나도 모르게 공격적으로 말했다. 그녀는 아주 짧은 순간 미세하게 미간을 찌푸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이내 만면에 거짓된 미소를 띠며 그녀가 물었다.
고등학교 동창들이랑 경포대로 여행 갔을 때, 다른 여자랑 잤지?
너야말로 그때 하루 종일 연락 안 되던 날, 그 강사 새끼랑 잤지?
야, 그건…….
대답은 금지돼 있다며.
그녀가 내 말을 무시하고 다시 뭔가 설명을 덧붙이려고 할 때,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그녀는 말없이 고기를 썰었다. 칼질을 할 때마다 반쯤 익힌 고기에서 핏물이 흘렀다. 나는 눈동자만 위로 굴려 그녀를 훔쳐봤다. 눈 밑이 푹 꺼졌고 피부는 푸석푸석했다. 그녀는 매일 밤 악몽을 꾸는 듯했다. 잠결에 그녀는 매일 같은 사람의 이름을 애타게 불렀다. 고함을 지를 때도 있었고 흐느껴 울기도 했다. 그렇게 잠에서 깨어나면 가방에서 알약을 꺼내 물도 없이 삼키거나 어두운 방 한쪽에 놓인 의자에 정물처럼 앉아 있었다. 나는 손을 뻗어 그녀의 고기를 썰어주었다.
그런데 말이야.
기분이 조금 나아졌는지 그녀가 입을 열었다.
방금 서빙한 사람, 아까 낮에도 본 사람 아냐?
응?
아까 우리 낮에 맥도널드 들렀을 때. 그때 본 사람들 기억나? 빨간 머리에 얼굴엔 주근깨투성이고 뻐드렁니를 한 사람들. 저길 봐.
나는 그녀가 가리킨 쪽을 슬쩍 돌아봤다. 과연 그녀가 말한 것처럼 빨간 머리에 주근깨가 잔뜩 박힌 사람들이 일하고 있었다.
저 사람, 분명 맥도널드에서 본 사람이야. 저기 저 사람도. 다른 레스토랑에 가도 저 사람들이 일하고 있을 것만 같아. 내가 미쳐가는 걸까?
그녀는 두려운 얼굴이었다. 그녀를 안심시킬 수 있는 말을 찾으려고 나는 마음이 조급해졌다.
아! 왜 그런지 알 것 같아.
감탄하듯 내지르는 말을 듣고 그녀는 불안한 눈동자를 나에게로 옮겼다.
지금까지 미국 인구의 70퍼센트가 백인이라는 말을 믿지 않았거든. 어딜 가든 멕시칸, 흑인, 아시아인이 넘쳐나니까. 이제 보니 그 70퍼센트는 모조리 사막에 살고 있었군. 저희들끼리 이곳에서 결혼하고 애를 낳고, 그 애가 또 이곳에서 난 아이와 결혼하고, 다시 아이가 태어나고……. 닮을 수밖에. 그냥 그런 것뿐이야.
나의 설명을 듣고도 그녀는 두려운 마음을 풀지 않았다. 주방에서, 카운터에서 지루한 표정으로 일하고 있는 비슷한 생김새의 사람들을 바라보며 그녀가 중얼거렸다.
미쳐가고 있는 거야,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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