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경 소설 <7화>
사막의 한가운데에서 그녀는 점점 우울에 빠져들었다. 머리 위에 떠 있는 태양보다 더 뜨거운 것이 그녀 내부에 자리 잡고 있어 정신과 육체 모두를 바싹 말려버리는 것만 같았다.
화석이 되어버린 관계.
오래전 그녀와 헤어지고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한때는 분명 가슴속에서 살아 움직이던 대상이었으나 이제는 그저 화석으로 남아버린 존재. 흔적은 또렷이 남아 있으나 과거의 시간 속에 존재할 뿐 더 이상 현재의 삶에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는 사람. 하지만 그녀와 여행을 하는 동안 나는 다시 그녀를 구원해줄 사람은 오로지 나뿐이라는 믿음에 사로잡혔다. 그녀를 설득해 플로리다 주까지 가보기로 했다. 수분이 가득한 공기와 파란 바다, 신선한 해산물 같은 것들이 그녀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믿었다.
창밖으로 끝도 없이 펼쳐지던 사막은 이제 옥수수 밭으로 변해 있었다. 달려도 달려도 온통 옥수수 밭뿐이었다. 조수석에 앉은 그녀는 따분한 듯 선글라스를 코까지 끌어 내렸다 다시 올려 쓰기를 반복하더니 발을 올려 발가락으로 글러브 박스를 열었다.
와, 이거!
그녀가 감탄하며 상체를 글러브 박스에 바짝 붙였다.
이거, 진짜 총이야?
총을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면서 오랜만에 그녀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누굴 쏴본 적 있어?
아직은.
그녀는 총부리를 내 머리에 대고는 입으로 빵, 하는 소리를 냈다. 그러고는 방향을 틀어 총을 제 관자놀이에 대고 한동안 생각에 잠겨 있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다시 글러브 박스 안에 집어넣었다.
마약은 해봤어?
갑자기 그녀는 호기심 많은 어린아이가 되어 재미있는 이야기를 기대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대마초, 코카인, 매직 머쉬롬 조금씩. 왜, 뭐가 궁금한데?
어떤 기분이야?
글쎄……. 예전에 뉴욕에 살 때, 친구 중에 제시란 녀석이 있었거든. 제시가 자기 사촌 중에 매직 머쉬롬을 재배하는 놈이 있다면서 한번 가자는 거야. 그래서 갔지. 제시랑 제시 사촌, 그리고 나까지 셋이서 그걸 먹고는 뒷마당에 있는 수영장으로 뛰어나갔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해가 쨍쨍 내리쬐는 환한 대낮이었는데, 셋 다 뭘 봤는지 알아?
뭔데?
불꽃놀이. 펑. 펑. 펑.
그녀는 그게 어떤 기분일지 상상해보는 듯 눈을 가늘게 뜨고 먼 곳을 바라봤다. 그러다 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나저나 넌 이제 미국 사람 다 됐구나.
그녀가 탄식하고 있을 때, 멀리에서부터 비행기 한 대가 낮게 날아왔다. 옥수수 밭에 약을 뿌리는 비행기였다. 비행기가 지나가고 얼마 뒤에 검은 먹구름이 몰려왔다. 먹구름이라고 하기엔 너무 낮게 떠 있었고 게다가 아주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그것은 순식간에 차 앞 유리를 뒤덮었다. 딱. 딱. 따닥. 따다닥. 따다다닥. 우박이 떨어지는 것처럼, 혹은 누군가 돌멩이를 던지는 것처럼 뭔가 차 유리에 부딪혔다. 그건, 메뚜기 떼였다. 나는 차를 세웠다. 앞 유리는 시야가 막힐 만큼 금세 까만 메뚜기 떼로 뒤덮였고, 옆 유리에도 저희들끼리 엉겨 붙은 작은 곤충이 버글거렸다. 메뚜기들은 유리에 달라붙어 다리를 느리게 움직였다.
차 돌려.
응?
차 돌리라고! 돌아가자고!
그녀는 거의 비명을 질러댔다. 나는 와이퍼를 작동시켰다. 와이퍼가 밀어낸 자리에 끊임없이 메뚜기 떼가 날아들었다. 차를 돌리고 속도를 올렸다. 제법 많은 메뚜기 떼가 떨어져나갔지만 일부는 와이퍼에 낀 채로 유리창에 누렇고 끈끈한 액체를 남겼다. 그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
재앙 같아.
그녀는 메뚜기 떼가 살갗에 들러붙기라도 한 것처럼 자꾸만 손으로 몸을 털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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