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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자연과 축제는 특별한 계획 없이도 하루를 꽉 채운다. 펜션 레이지마마에서 아이와 제주에 한달살이하는 가족들(가운데 사진)과 게스트하우스 계란후라이에서 만난 한달살이 여행자들. 왼쪽부터 김세중, 이유리, 김석훈씨.(오른쪽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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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 제주에서 한달 살기
3박4일 여행으로는 아쉬움이 더 크다. 그렇다고 삶터를 완전히 옮길 엄두는 나지 않는다.
양쪽의 아쉬움을 털기 위해 딱 한달, 제주살이를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빈둥거림의 행복을 누리는 최고의 시간과 장소다.
“이게 공벌레예요.” 제주시 조천읍 대흘리에 있는 펜션 ‘레이지 마마’ 앞마당에 들어서자마자 5살 유환이는 방문객의 손바닥에 공벌레를 한 움큼 털어주었다. 한달살이 전문 숙소인 이곳 분위기는 투숙객 대부분이 아침 일찍 나가면 비어버리는 다른 곳과는 좀 달랐다. 10명 남짓한 아이들은 눈뜨자마자 마당에 모여 오전 내내 마당에서 벌레 잡고 뛰고 구르며 자기들끼리 놀았다. 유환이는 엄마와 제주도에서 한달 살기 위해 서울에서 왔다. 유환이와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은 다음날도 또 그다음날도, “별다른 일정 없이 빈둥거리며” 하루를 보낸다. 긴장하는 생활의 버릇을 털기엔 일주일 휴가는 모자란다. 그렇다고 아예 옮겨 사는 것은 무리다. 1년에 딱 한달을 제주에서 보내는 ‘제주 한달살이족’들이 늘어나고 있다.
아이 있는 가족들 방학 때 몰리고
30~40대 독신들
휴직이나 퇴직 후 찾아와
한달살이용 임대시장 성장
게스트하우스 호핑족도 많아 6살, 5살 아들을 둔 이주영(35)씨는 2년 전 나온 책 <제주도에서 아이들과 한 달 살기>(전은주 지음, 북하우스)를 보고 별러왔던 계획을 올여름 드디어 현실로 옮겼다. “아이가 생기고 한번도 낮잠을 자본 일이 없어요. 첫째와 둘째를 차례로 어린이집에서 데려오면 도서관, 미술학원 보내고 운동시키고 늘 프로그램을 짜서 살았죠. 1년에 한달만이라도 스케줄 없이 살고 싶었어요.” 마침 이씨의 친구 김정희(37)씨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6살 딸과 4살 아들을 데리고 한달 동안 레이지마마에 살러 온 김정희씨는 “맛집과 관광지만 찍고 들르는 여행과는 달리 한달살이는 아이도 어른도 자유로움을 느끼는 여행 방식”이라고 말한다. 2012년 9월 제주로 이주한 레이지마마의 주인 이연희씨는 올 7월 한달살이 경험을 모아 책 <엄마랑 아이랑 제주에서 한달>(미디어 윌)을 냈다. 지난해부터 제주에는 한달살이 전문 숙소가 급히 늘어나고 있다. 2013년 2월 장사가 되지 않아 비어 있던 펜션을 빌려서 한달살이용 숙소로 개조한 레이지마마가 문을 열었다. 6가구가 살 수 있는 이곳은 적어도 석달 정도 전엔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고 했다. 2013년 여름 제주시에 지어진 씨앤하우스는 24가구 8층짜리 소형 아파트 건물이다. 김현철씨는 1년치 월세를 미리 내는 제주도 풍속을 좇아 값싸더라도 편히 임대해볼 생각으로 이 건물을 지었다. 그런데 임차인들이 죄다 한달살이만을 원했다. 한달씩 임대해온 것이 벌써 1년, 올해 9월까지 한달살이 예약이 모두 찼다. 그는 올겨울 아예 한달살이용 전문 숙소를 새로 지을 계획이다. 한달살이는 제주 임대 시장의 풍속도를 바꾸어놓았다. 네이버 카페 ‘제주도 좋은 방 구하기’(http://cafe.naver.com/landjeju1) 공동 운영자인 소망공인중개사 김미경 소장은 “6월이 되면 제주도에 한달 살 집이 있는지 묻는 전화가 하루 10통 넘게 온다. 공인중개사들은 이를 ‘효리 효과’라고 부르는데, 가수 이효리씨나 장필순씨 등의 제주살이를 보며 갖게 된 ‘우리도 한번쯤 제주에서 살 수 없을까’라는 로망이 ‘한달살이’라는 방식으로 표현되는 듯하다”고 했다. 아이를 데리고 제주에서 한달을 살려면 임대료를 포함해 최소 150만~200만원 정도 든다고 한다. 올해 아이를 데리고 한달 살러 내려온 이주영·김정희씨는 벌써 내년 한달살이를 위한 적금을 다시 붓기 시작했다고 한다. 한달살이는 일생에 한번이 아니라 매년, 가끔의 방식으로 정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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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한달살이하는 가족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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