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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외눈박이 괴물 키클롭스. 원래 눈이 있어야 할 자리는 빈 채로 남고 이마 가운데에 하나의 눈이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맨 위 작은 사진은 관상용으로도 인기 있는 익시아. 익시아의 잎에 든 사이클로파민이라는 치명적인 독성 알칼로이드는 태아 단안증의 원인이 된다. 요한 하인리히 빌헬름 티슈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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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하리하라 눈을 보다 ② 단안증
“밤이 깊어지자 오디세우스는 조심스레 일어났다. 외눈박이 거인 키클롭스 폴리페모스는 그가 권한 포도주에 취해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오디세우스는 잠든 거인의 얼굴을 바라보며 이를 갈았다. 그와 부하들이 이곳에 붙잡혀 있던 며칠 동안 식인 거인은 그의 부하들을 디저트로 먹어치웠기 때문이었다. 오디세우스는 불타는 장작을 집어들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일격에 거인을 죽이기에는 무리였다. 게다가 거인을 죽이면 동굴 앞을 가로막은 바위 덕에 그들도 꼼짝없이 굶어 죽을 터였다. 그는 거인을 죽이지는 않으면서도 그에게 치명상을 입힐 곳을 찾았다. 오래 생각할 것도 없이 공격 부위가 정해졌다. 그의 미간 사이에 붙어 있는 단 하나의 커다란 눈. 그는 망설임 없이 그 눈꺼풀에 불붙은 장작을 찔러넣었다.”(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 중에서) 좌뇌·우뇌 분리되지 않는완전전뇌증의 결과가 단안증
내부적인 뇌의 이상은
표면적인 눈의 이상으로 연결
뇌와 눈은 그만큼 밀접하다 키클롭스 등 외눈박이 거인들의
이야기는 허구의 상상물이지만
이런 선천적 기형은 실제 존재
태아 상태에서 죽거나 얼마 못 살아
키클롭스처럼 자라지는 못한다 익시아를 먹고 눈 하나로 태어난 새끼양들 그리스 신화에는 다양한 신과 요정, 반인반수, 괴물들이 등장하는데, 그 중에서도 널리 알려진 것은 외눈박이 거인 키클롭스(cyclops)들이다. 사람을 비롯해 눈을 가진 대부분의 생명체들은 두 개의 눈을 가진다. 그래서 눈이 하나밖에 없다는 데서 오는 희귀함과 기괴함은 키클롭스들을 흉측하다는 이유로 제 아비로부터도 버림받고 지하에 갇힌 괴물이자 제우스에게 천둥 무기를 만들어준 괴짜 장인이며, 인육을 즐기고 산 채로 인간의 골수를 빨아먹는 식인 괴물로 다양하게 변주시켰다. 다른 문화권에서도 마찬가지로 하나의 눈을 지닌 존재들은 모두 잔인하고 난폭한 도깨비나 오니, 혹은 다양한 괴물의 형상으로 등장한다. 마치 눈이 하나인 존재들은 모두 잔인한 성품의 괴물로 여기자고 합의라도 한 듯 말이다. 그래서 여기에서 파생된 단어가 태풍의 일종인 사이클론(cyclone)이다. 태풍도 키클롭스처럼 눈이 하나뿐인데다, 지나간 자리마다 폐허를 남기는 잔인한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키클롭스를 비롯해 외눈박이 거인들의 이야기는 모두 허구의 상상물이지만, 실제로 하나의 눈을 가지고 태어나는 경우도 존재한다. 눈이 하나뿐인 선천성 기형을 단안증(cyclopia syndrome)이라 하는데, 이미 17세기 발간된 포르투니오 리체티의 <자연 속에서 찾은 괴물의 원인과 다양성>에 단안증을 가진 채 태어난 아이의 그림이 등장할 정도다. 단안증은 사람뿐 아니라 두 개의 눈을 가진 동물이라면 나타날 수 있는 현상으로, 이미 19세기 이전에 단안증을 가진 양, 소, 말, 고양이가 발견되어 의학 서적에 등재되었을 뿐 아니라, 최근에는 눈이 하나인데다 몸마저 하얀 단안증 알비노 상어가 발견되어 화제가 된 적도 있다. 1950년대, 미국 서부의 목장주들은 경악했다. 임신한 암양들이 스무 마리에 한 마리꼴로 눈이 하나밖에 없는 새끼 양(주 ➊)을 낳았기 때문이었다. 이런 기이한 사건은 전무후무했기에 당국에서는 즉시 역학조사에 들어갔다. 그렇게 밝혀진 비극의 원인은 익시아(corn lily)였다. 붓꽃과에 속하는 익시아는 꽃이 예뻐서 관상용으로도 인기 있는 꽃인데, 이 익시아의 잎에 든 사이클로파민(cyclopamine)이라는 치명적인 독성 알칼로이드는 태아 단안증의 원인이 된다. 이를 모른 채 임신한 어미 양들은 익시아의 푸른 잎을 뜯어먹었고, 눈이 좌우로 발달하는 특정 시기(임신 14일 전후)에 먹은 경우 단안증을 가진 양을 낳게 된 것이다. 이 경우에는 익시아라는 외부 요인(주 ➋)으로 인해 단안증이 대량 발생했지만 단안증의 대부분은 유전자 이상, 곧 주로 소닉 헤지호그(sonic hedgehog)에 속하는 유전자들의 이상으로 나타난다. 인체의 외부는 좌우대칭형이다. 소닉 헤지호그 유전자군은 처음에는 하나의 통으로 발생하는 신체의 기관들을 좌우대칭으로 분화시키는 데 결정적인 구실을 한다. 그래서 이 유전자에 이상이 생기면 원래는 양쪽으로 갈라져야 하는 눈이 하나만 생기게 되는 것이다. 좌우 분리에 문제가 생기므로 단 하나밖에 없는 눈은 얼굴의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이 아니라, 중심에 자리를 잡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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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안증을 가진 알비노 상어(위)와 일반적인 상어(아래). 내셔널지오그래픽 방송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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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희 과학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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➊ http://www.learner.org/courses/biology/archive/images/1717.html ➋ 사람의 경우에도 모체가 당뇨병을 앓고 있거나 알코올 중독자인 경우, 에테르, 클로로포름, 아세톤, 페놀 등의 화학물질에 노출되는 경우 단안증의 발생 비율이 다소 올라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➌ 자연계에서 단안증이 나타나는 비율은 1만6000건의 출산당 1회로 알려져 있는데, 유산된 태아로 범위를 넓히면 250건 중 1의 비율로 껑충 뛰어오른다. 단안증을 지닌 개체들의 대부분이 출생 이전에 사망하기 때문이다. ➍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수정 후 14일 이전의 배아만을 쓰는 이유가 바로 이 시기 이후에는 신체 각 부위가 분화되기 때문이다. ➎ Richard Langton Gregory, ‘Recovery from Early Blindness A Case Study’, http://www.richardgregory.org/papers/recovery _blind/recovery-from-early-blindness.pdf 이은희 과학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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