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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통수가 없으면 볼 수 없다. 뒤통수를 한대 맞았을 때 눈앞에 번쩍하고 빛이 나는 느낌이 드는 이유가 있다. 안구는 얼굴 앞쪽에 있지만, 시각피질은 뒤통수 쪽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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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하리하라 눈을보다
(12) 인공망막
▶ 하리하라 본명 이은희. 생물학을 전공해 연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으나, 우연히 인터넷 블로그에 썼던 글들이 <하리하라의 생물학 카페> 등 책으로 묶여 나오면서 과학언론학으로 전공을 바꾸었다. 현재는 과학작가이자 강연자로 살고 있다. ‘하리하라’라는 인터넷 아이디를 필명으로, 세상에 퍼져 있는 과학에 대한 선입견과 오해를 걷어내는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다. <한겨레> 토요판에서 격주로 ‘인간의 눈’과 본다는 것의 의미를 탐구한다.
미래의 반군 지도자 존 코너를 제거하기 위해 혹은 그를 보호하기 위해 과거로 날아온 터미네이터. 그의 눈에 비친 세상은 수천만 화소의 총천연색 고화질 화면이 아니라 온통 붉은색 음영으로만 이루어진 어두운 세계다. 액체에서 고체로 자유자재의 성상 변화가 가능한 로봇을 만드는 사회에서 색을 구별하는 능력을 구현하지 못할 리는 없을 테니 이는 의도가 있을 터. 아마도 터미네이터는 사람처럼 가시광선이 아니라, 적외선을 이용해 사물을 본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일 듯하다. 하지만 적외선은 이름 그대로 붉은색 너머에 있을 뿐이지 붉은색이 아니며, 보는 것은 적외선을 이용하더라도 얼마든지 다채로운 색으로 변환 가능할 터인데도 굳이 붉은색 명암만으로 세상을 보도록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혹시 터미네이터의 눈이 붉은색인 이유도 이 때문이던가?
여담은 이쯤 하고, 시야의 색이 어떠하든 간에 터미네이터의 시각은 자신의 목적에 가장 부합하는 시각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의 목적은 공격 대상이자 혹은 보호 대상인 존 코너를 찾아내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어두운 곳에서도 항온 포유동물인 사람을 찾아내는 데 적합한 열 감지 센서와 개인을 식별하는 데 유용한 얼굴 인식 센서를 가지고 있다. 터미네이터는 먼저 사람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본다. 그러나 그의 시야에서 보이는 얼굴은 하나의 수치에 가깝다. 사람의 얼굴에서 피부의 색이나 결을 생략하고 얼굴의 길이와 너비, 눈과 코의 위치, 광대뼈와 턱뼈의 각도 등 진한 메이크업이나 변장을 통해서도 바뀌지 않는 얼굴의 패턴을 인식해 눈앞의 상대가 목표물과 부합하는지만을 빠르게 판단한다. 존 코너가 아니라면 그에겐 의미가 없으니까.
‘고양이 눈’과 ‘매의 눈’은 어떻게 다른가
시각이란 생물체가 외부의 정보를 받아들이는 정보의 창구이며, 눈은 세상을 생명체 내부와 연결시키는 창임과 동시에, 자신이 보고자 하는 것만을 보도록 특화된 필터다. 눈이라고 해서 모두 같은 눈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는 능력을 모두 갖추면 좋겠지만, 문제는 이 지구라는 환경 자체는 물론이거니와 거기서 살아가는 거의 모든 생명체는 늘 제한된 자원을 가능한 효율적으로 이용해야 한다는 숙명을 떠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즉, 눈이라는 하나의 투자 대상에 내가 가진 에너지원과 신경망을 너무 많이 투자해버리면 다른 감각기관과 운동기관에 투자할 자원이 그만큼 줄어들기 마련이다. 또한 자연은 자신의 생존에 적합하도록 자신의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분산투자한 개체를 선택했기에 생물체의 눈은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가장 적합한 투자의 결과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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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명한 이들의 인체에 내장하는 생체 칩 인공망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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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피질은 뒤통수 쪽에 존재
실명한 사람 뒤통수 쳐 불 번쩍하면
시각피질 기능이 조금 남아있고
인공망막 삽입으로 볼 수 있단 뜻 연구자들의 첫 과제는 소형화
각각 장치 분산하는 시도 하기도
인공망막 기술로 보이는 세상은
질감과 색감 풍부한 3차원 아닌
흑백과 점으로만 이뤄진 2차원 눈과 뇌는 다시 연결될 수 있는가 인류는 오랜 세월 빛이 잘 드는 산과 들에서 빛이 풍족한 시간에 활동했기에 우리의 눈은 거기에 맞게 진화되었으며, 시각은 여타 다른 감각에 비해 월등히 발달했으며, 현대 인류는 외부에서 입력되는 정보의 80%가량을 시각적 정보에 의지하는 형태가 되었다. 시각 정보가 감각에서 차지하는 비율의 80%라는 것은, 시각을 잃는다는 것은 우리가 세상과 소통하는 통로 다섯 중 넷이 막힌다는 것과 다름없다. 즉, 인간은 오감(五感)을 가지고 있으나, 그중 사감(四感)이 두 눈에 할당된 셈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빛이 점점 희미해지고 사라져간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마지막 빛 자락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애를 써 왔다. 안경과 콘택트렌즈의 도움으로 흐릿해진 세상을 또렷하게 바라보고, 각막 이식술과 수정체 치환술로 눈을 가리는 스스로의 장벽을 제거하고, 그 밖의 다양한 안과적 처치들을 통해 우리는 좀더 또렷한 세상을 좀더 오래 눈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지만, 그 모든 것도 결국 망막과 시신경이 제 기능을 했을 때의 이야기였다. 특히나 망막은 빛을 전기 신호로 바꾸어주는 스위치를 넘어 외부의 물리적 존재인 빛이 내부의 심리적 심상으로 재현되도록 변성시키는 곳이기에 시각적 정보 수집의 핵심 경로인데, 문제는 이곳에 존재하는 광수용체 세포들은 한번 손상되면 다시 되살릴 수 없다는 것이다. 망막색소변성증이나 황반변성으로 인한 시력 손상이 영구적으로 이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따라서 파괴된 망막세포를 되살리거나 혹은 망막의 기능을 대신할 기계적 장치, 즉 인공망막을 이용해 눈과 뇌를 잇는 변환 장치를 복구하고자 하는 열망은 꽤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 인공 망막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먼저 망막만 복구한다면 눈과 뇌의 연결이 다시금 복구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필요하다. 망막세포의 소멸이 단순히 눈과 뇌의 연결 통로가 끊기는 것을 넘어 뇌의 시각피질에 영구적인 기능 결핍을 불러일으킨다면 인공 망막을 삽입해도 소용없을 수 있기 때문이다. 1967년 영국의 브린들리와 르윈의 무선 시각피질 자극기의 개발은 그래서 의미를 지닌다. 이 장치를 통해 시각피질에 전기적 자극을 주자, 실명한 환자는 깜깜한 어둠 속에서 빛나는 인광(phosphene)을 느꼈다고 대답했다. 뒤통수를 한 대 맞았을 때 눈앞에 번쩍하고 빛이 나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게 바로 인광이다. 이는 비록 눈은 얼굴 앞쪽에 모여 있지만, 시각피질은 뒤통수 쪽에 존재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뒤통수를 물리적으로 세게 자극하면 그 결과로 이 부위의 신경이 자극되어 전기적 신호를 만들어내게 되는데, 이들은 ‘시각’ 영역을 담당하는 신경들이므로 자신들의 주특기인 ‘보이는 것’으로 이 자극을 표현해내기 때문이다.(그렇다고 일부러 뒤통수를 가격하진 말자. 강도를 잘못 조절했다가 시각피질에 영구적 손상을 입으면 진짜로 실명할 뿐 아니라 목숨도 위태로울 수 있으므로.) 따라서 실명했는데도 인광이 보인다는 것은 눈으로 들어오는 자극이 없기에 시각피질이 활동을 정지하고 있을 뿐, 그렇다고 이 부위가 기능을 완전히 상실하지는 않았다는 의미가 된다. 그렇다면 망막이 손상되었더라도 시각피질은 살아 있으므로 인공 망막이 의미가 있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생체 내에서 망막은 물리적인 에너지인 빛을 받아 각각의 정보에 대응해 이를 시신경세포가 전달할 수 있는 전기적 신호로 변환시키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망막의 기능을 대신할 인공 망막 역시도 빛을 받아들이는 화상 획득 장치, 이 빛이 가진 정보를 파악해서 전기적 신호로 바꾸어주는 신호 전환 장치, 이 신호를 시신경에 전달하는 시신경 자극 및 전송 장치, 그리고 기계이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움직이게 하는 전원공급 장치 등이 반드시 필요하다. 꼭 필요한 장치가 이토록 많다는 것은 이들이 차지하는 물리적 부피가 일정 수준 이하로는 내려갈 수 없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우리의 눈은 평균 직경이 겨우 24.4㎜에 불과할 정도로 작은 편이다. 따라서 일단 인공 망막을 연구하는 이들이 해결해야 할 첫번째 문제는 소형화 문제였다. 무조건 작게 만드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당장 소형화가 어렵다면 장치를 분산시키면 어떨까. 실제로 인공 망막이나 인공 눈을 연구하는 이들은 각각의 장치들을 분산시켜, 빛을 받아들이고 신호를 전달하는 장치, 전원 공급 장치 등은 눈 밖으로 빼고, 신호를 전달하는 장치만을 내부로 넣어서 부피의 부담을 줄이는 방법으로 소형화 불가의 문제를 피해가곤 한다. 또한 각각의 장치를 통합시키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도 있다. 어차피 망막이 빛을 감지하는 것이라면 빛이 지닌 광에너지를 동력원으로 이용하여 거추장스럽고 무거운 전원 공급 장치를 떼어버리려는 시도를 하기도 한다. 현재 아르고스II 가격은 미화 10만달러 그래서 등장한 다양한 인공 망막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아르고스II’다. 이름부터 의미심장한 아르고스!(그리스 신화 속 아르고스는 100개의 눈을 가지고 있어서, 심지어 잠을 잘 때도 몇 개의 눈은 늘 뜨고 있는 존재로 등장한다.) 마치 비디오카메라가 달린 선글라스처럼 생긴 아르고스II는 영상을 시각피질의 신경세포들이 인식할 수 있는 전기적 신호로 바꾸어 전달하는 장치로, 임상실험을 통해 빛의 감지, 물체의 형태 빛 움직임 감지, 커다란 문자 인식 등이 가능하다는 것이 증명되어 2013년 최초로 미국 식품의약청(FDA)의 승인을 받았다. 이 밖에도 다양한 형태를 갖춘 인공 망막들이 개발 및 개량되고 있기에 이들의 도움을 받아 어둠 속에서 다시 빛을 찾은 이들을 거리에서 볼 수 있는 날도 그리 멀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다만 현재까지의 기술로는 인공 망막을 통해 보이는 세상은 질감과 색감이 풍부한 3차원이 아니라, 흑백과 점으로 이루어진 2차원 세상이다. 즉, 새롭게 만들어진 눈은 새로운 시야를 제시한 셈이다. 물론 앞으로 해당 분야의 기술이 더욱 발전한다면 우리가 보는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하는 정교한 인공 망막이 개발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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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희 과학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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