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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눈을 확장한 다양한 기계들이 법과학에 사용된다. 지난 8일 필자가 방문한 서울과학수사연구소의 엑스레이 촬영장비 위에 3D 프린터로 구현해 만든 인체의 골격 모형이 늘어서 있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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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하리하라 눈을 보다
(19) 국과수 부검현장(하)
그렇게 한동안을 서늘한 부검실에서 상념에 잠겨 있다가 다시 두 겹의 문을 지나 밖으로 나왔다. 형광등 달린 지붕 대신 보이는 눈에 들어오는 파란 하늘이 낯설었다. 문밖에서는 공기조차 살아 숨쉬는 듯 파란 5월의 하루가 흘러가고 있었다. 단지 두 개의 문으로 나누어진 안과 밖의 시간은 전혀 다른 속도로 흘러가고 있었다.
우리는 누구나 현재를 살아간다. 지금까지 인류가 경험한 시간은 멈추거나 되감는 법이 없었기에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찰나를 느끼며 살아가는 데 익숙하다. 하지만 단 하나, 예외가 있다면 그건 바로 죽은 자인 것이다. 죽음 이후에도 인간의 시간은 어긋난다. 물리적 육체는 여전히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모해가지만, 그의 인간으로서의 삶의 시간은 죽음의 순간에 영원히 고정된다. 익숙해서 낯선 느낌은 거기서 왔다. 인간은 누구나 언젠가는 죽을 수밖에 없기에 죽음 그 자체는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꼭 자연스러운 것은 아니며, 더군다나 이곳에서 자신을 보아주길 기다리는 주검들은 하나같이 모두 ‘부자연스러운’ 죽음의 사연들을 간직한 채 과거에 머물러 있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억지스러운 죽음 이후 어긋나버린 육체와 삶의 시간의 괴리를 추적해 무엇이 이를 어긋나게 했는지 알아내기 위한 노력들이라는 사실이었다.
첩보영화의 클리셰는 어떻게 가능한가
철학자들은 존재와 인식에 대해서 다양한 관점들을 제시하지만, 어쨌든 직관적으로 보기엔 일반적인 사물은 나와 따로 떨어져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익숙하다. 내가 지금 아무리 딸기가 먹고 싶다고 해도 눈앞에 있는 사과가 딸기로 보이진 않으니까. 그렇게 세상은 내 눈에 비치고 보여진다. 하지만 망막 위를 흘러가는 빛의 입자들이 의미 있기 위해서는 의식적으로 ‘보는’ 행위가 필요하다. 매일 걷는 집 앞 거리 가로수에서 초록색 잎사귀 사이로 튀어나온 초록색 송이들이 눈에 띈다. 자세히 보니 송알송알 맺힌 듯 잔뜩 피어난 은행꽃이다. 이렇게 잔뜩 핀 것을 보니 어제도 그제도 있었을 성싶은데 왜 난 의식하지 못했을까. 또한 존재하는 것을 의식하는 것조차도 부족한 때가 있다. 하늘이 어두워지고 먹구름이 끼는 건 누구나 알 수 있지만, 아이들은 그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하늘이 보여주는 신호를 읽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보는 것은 눈이 물리적으로 활동하고 있음을 뜻하며, 의식하는 것은 뇌의 인식적 기능이 제대로 수행되고 있음을 뜻한다. 나아가 이들이 가진 의미를 읽어내는 것은 뇌가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현재의 증거를 바탕 삼아 미래를 예측하는, 고차원적인 사고를 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읽어내는 것이 단순히 보는 것보다 더 나아간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어쨌든 읽어내기 위해서는 일단은 볼 수 있어야 한다. 한 치 앞도 구별할 수조차 없는 어둠 속에서 상대의 표정을 읽어낼 수는 없다. 살인 사건을 조사하는 것은 어둠 속에서 상대를 읽어내는 것과 비슷하다. 이미 사건은 흘러간 과거가 되었고, 피해자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해줄 수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사는 동물들이 모두 볼 수 없는 건 아니듯이-박쥐는 빛이 아니라 초음파로 세상을 ‘본다’- 사람에게는 어둠 속에서 볼 수 있는 제3의 눈을 만들 능력이 있다. 부검실을 나와 찾아간 국과수 내 또다른 공간에서 그런 눈을 만날 수 있었다. 인간이 지닌 생물학적, 일시적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낸 물리적이고, 연속적이며, 수학적인 눈을.
평소에는 한산했던 건물이 오늘은 안팎으로 분주하다. 오늘 이곳에서는 국제적으로 중요한 회의가 열릴 예정이다. 이 회의에 참석하는 이들은 모두 각 국가에서 요직을 맡고 있는 인물들이기에 경비는 오싹할 정도로 삼엄하다. 건물 주변에는 검은 옷을 입고 조용하지만 민첩하게 움직이는 사람들로 분주하고, 건물 입구마다 금속 탐지기와 레이저 스캐너가 설치되어 있다. 시간이 다가오자 창문이 검게 코팅된 방탄차량들이 속속 건물 입구에 들어선다. 그중에서도 특별히 크고 육중해 보이는 자동차의 뒷문이 열리고 차량의 주인이 몸을 드러낸 순간, 어디선가 총탄이 날아와 그의 가슴팍을 뚫고 지나간다. 그리고 이어지는 몇 발의 총성. 순식간에 건물 주변은 아수라장이 된다. 분명 총탄은 날아들었지만, 정작 이를 발사한 사람은 보이지 않자 사람들은 더더욱 패닉 상태에 빠져든다. 순간, 차량 뒤에서 제정신을 유지하고 상황을 살피던 유난히 날카로운 눈매의 검은 옷의 남자가 어딘가를 향해 총을 발사한다. 그의 총구를 떠난 총알은 그가 조준한 곳으로 정확히 날아갔고, 그 총알이 움직임을 멈추자 어디선가 날아오던 의문의 총탄들도 더 이상 날아오지 않았다. 날카로운 눈매의 사나이가 쏜 총탄에 살인자가 죽었기 때문이었다.
첩보영화의 흔한 클리셰다. 몰래 숨어서 조준사격을 하여 사람들의 공포감을 극대화하는 암살자가 등장하고, 하필이면 주인공이 엄청난 시력의 소유자여서 총알의 움직임을 간파당하고 역으로 사살당하는 장면 말이다. 이는 영상으로는 너무나 익숙하게 접해서 충분히 가능할 것도 같지만, 음속보다도 빠른 총알의 속도로 인해, 현실에서는 허공에 총알이 날아오는 궤적 따위가 그려지는 법이 없다는 것을 고려해 본다면 거의 불가능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눈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인간이 만들어낸 눈까지도 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3차원의 이미지와 수학적 수치를 동시에 찍을 수 있는 적외선 파노라마 스캐너로 본다면, 총탄이 날아오는 방향과 각도를 계산해 암살자의 위치를 추적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헬리캠, 적외선 파노라마 스캐너…부검실을 나와 또 다른 공간에서
인간의 생물학적 한계 극복하는
물리적이고 연속적이며 수학적인
제3의 눈들을 만날 수 있었다 거실바닥에 아기처럼 웅크린 채
빨간 액체 흘리고 누운 젊은 여성
범죄현장 사진만 보면 머리 맞아
살해된 걸로 생각할 수 있지만
보는 것과 읽어내는 것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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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양천구 신월동에 있는 서울과학수사연구소에서 활용중인 범죄 현장 특수촬영장비인 파나소닉사의 ‘신웍스’(scene works·앞) 및 3차원 촬영 장비인 리글(Riegl)사의 레이저 스캐너(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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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희 과학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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