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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이서희의 유혹의 학교
(2) 경계에 대한 존중
▶이서희 결혼 전이나 후나 다른 남자(그리고 여자)가 많이 궁금한 여자. <관능적인 삶>이란 책의 저자. 법학도의 탈을 쓰고 영화와 인문학 주변을 맴돌다 졸업 후 프랑스에서 영화와 마음껏 놀았다. 결혼 후 미국에서 12년째 살고 있고, 장차 나와 당신을 함께 발견하고 이해하는 어른들의 학습놀이 공간 ‘유혹의 학교’를 열고픈 꿈을 갖고 있다. 지면으로 먼저 시작하는 ‘유혹의 학교’는 격주 연재다.
“마음에 드는 여자를 앞에 두고 아무 짓도 하지 않는 놈이 남자냐?”라는 말을 들은 날이 있다. 나는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그의 아파트를 뛰쳐나왔다. 온몸을 압박하는 공포감에 무작정 거리를 걸어나갔다. 몸을 숨길 곳을 찾고 싶었지만, 날은 화창했고 거리는 사람들로 붐볐다. 나는 결국 지하철역 옆 대로 한복판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울기 좋은 곳은 때로는 좁은 방구석보다 익명의 사람들 틈이란 걸 그때 알았다. 쏟아내듯 울어버리고 벌떡 일어나 주위를 둘러봤다. 그제야 내가 있는 거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파리의 17구, 21세기가 막 시작되던 여름이었다.
가난한 유학생으로 산다는 건 그만큼 더 많은 위험에 노출되는 일이었다. 행사 관련 통역 일을 몇 차례 맡으면서 출장 온 남성들이 외국을 방문하는 일, 그것도 파리라는 도시에 머무는 일에 어떤 환상과 해방감을 느끼는지 목격했다. 중년의 남성이 나이 어린 아르바이트생을 상대로 벌이는 일은 가벼운 로맨스를 의도했으나 실체는 성급한 성추행에 가까웠다. 문제는 나에게는 명백하나 남들의 시선으로 어떻게 해석될지 자신할 수 없다는 데 있었다. 지레 겁을 먹고 미리 수치심에 시달렸다. 나는 그의 첫번째 성추행을 눈감아주었다. 정확히 말하면, 거부했고 사과를 요구했고 그가 한 사과가 진심 어린 것이었다고 믿어버렸다.
그해 여름, 파리에서 생긴 일
우리는 제법 호흡이 잘 맞았고 함께 일하는 내내 아무 문제도 벌어지지 않았다. 성추행의 시도는 가벼운 해프닝으로 끝나는 듯했고 언급하는 일조차 무의미해 보였다. 나는 그를 용서했고 그와 좋은 친구가 되었다고 믿었다. 일 때문에 파리를 몇 차례 방문하는 그를 별 대가 없이 돕기조차 했다. 사건이 벌어진 날은 함께 술도 마셨고 잠시 가져올 물건이 있어서 아파트에 올라가야 한다는 그의 말에 아무런 의심 없이 따라가기까지 했다. 그가 입맞춤을 시도하는 순간까지 나의 상상력은 단 한 번도 그의 욕망에 닿지 못했다. 그는 단 한 번도 내 욕망의 대상인 적이 없었다. 욕망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상대를 두고 미리 방어하는 일은 생각만큼 자동적으로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완력으로 나를 끌어안는 상대를 밀쳐내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을 때는 모든 것이 한 발짝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정중한 사과는 다시 반복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들은 말은, 자신은 수컷이니 들이댐은 당연하다는 말이었다. 경계를 침범하는 일에 너무나도 당당하면 침범당한 자는 위축되기도 한다. 그 뻔뻔함에 화가 나면서도 공포를 느꼈다. 도망치듯 방을 빠져나가 길을 걷는데 아득함이 사라지자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죄책감이었다. 그를 의심하지 않은 죄, 아무 생각 없이 그와 술을 마신 죄, 그를 따라 아파트까지 올라간 죄. 그리고 지금은 그 순간을 또 다른 죄책감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때 제대로 대응했어야 했다. 그의 행동이 엄연한 성추행이라는 것을 어떤 식으로든 그에게 알렸어야 했다. 어리석은 죄책감으로 나를 괴롭히던 에너지를 다르게 사용했어야만 했다. 이후로도 그의 끊이지 않는 성추행 소문이 바람처럼 흘러들었다. 나는 씁쓸한 기분으로 소식을 외면했다. 어쩐지 공범이 된 기분이었다.
완력으로 나를 끌어안는 그를 밀어내고 소리 질렀을 땐
모든 것이 한발짝 늦고 말았다
그의 사과는 반복되지 않았다 중학교 때 버스 안에서 처음
남자의 몸에 욕망을 느낀 순간
5분간 아무 접촉 없었는데도
나는 왜 민감하게 반응했을까 어릴 적 언니와 나눠 쓰는 방은 가족 누구라도 함부로 열고 들어설 수 있는 공간이었다. 내가 개인으로서 존중받을 수 있는 사적 공간이란 어디에도 없었다. 공간은커녕 내 몸조차도 호기심에 들춰지고 까발려지는 세상이었다. 아이스케키를 하는 남자아이의 행위는 짓궂은 관심의 표현으로 해석되었다. 당한 여자아이는 적당히 소리 지르고 한번 꼬집는 정도로 사태를 마무리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내가 화가 나서 소리를 질러대도 주변 사람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은밀하든 노골적이든 각종 성희롱을 받는 일은 일상이 되었다. 그렇게 나와 나의 친구들은 경계에 관한 인식조차 제대로 배우지 못하며 성장했다. 내 몸을 알고 내 욕망에 익숙해질 공간적 시간적 여유는 주어지지 않았다. 몸은 성숙했으나 철저히 외면당한 채 정신은 성숙한 여성이 아닌 소녀의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천진하다 못해 무지한 여자아이로 남아 있는 것이 매력적인 여성이 되는 길인 줄 알았다. 그것이 힘겨운 버티기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한참이 흐른 뒤였다. 주도권을 잃은 채 욕망의 대상이 되는 것이 즐거운 일이 아님을 알기까지 청춘의 빛나는 시간을 낭비했다. 가끔은 생각한다. 나는 그때 가장 아름다운 몸을 두고도 행복하게 누리지 못했다고. 사용법을 모르는 채로 남아 있는 것이 “좋은 여자”가 되는 길이라고 믿었다고. 내 욕망은 검열되기도 전에 삭제되었다. 몸 또한 해석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왜곡된 해석에 길든 몸을 다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길은 멀리 돌아가는 여정이었다. 종종 욕망은 험난한 지형 속에서 실종되기도 한다. 내가 최초로 남자의 몸에 욕망을 느낀 순간을 기억한다. 중학교 때였다. 이사를 갔고 만원 버스에 올라 학교를 향하는 길이었다. 나는 버스 앞문 쪽에 가까스로 자리 잡고 있었다. 잠시 후 내 뒤에 한 남학생이 올라탔다. 짧게 깎은 머리에 희고 갸름한 얼굴을 한, 수줍은 인상의 소년이었다. 동네 서점에서 몇 차례 마주친 적 있는, 그가 읽던 소설을 어쩐지 따라 읽고 싶었던 골똘한 눈빛의 남자. 우리는 이리저리 밀리지 않으려고 애타게 손잡이에 매달렸다. 같은 손잡이에 의지하던 터라 그가 나를 뒤에서 감싸 안는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필사적으로 거리감을 유지하려는 그의 노력이 등 뒤에서도 또렷하게 느껴졌다. 흔들리는 버스 안, 몸과 마음이 까무룩 잠겨서는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의 냄새가 좋았고 품 안에 잠긴 듯 아늑한 기분이었다. 5분이 넘지 않은 시간 동안 우리의 몸은 단 한 차례도 부딪치지 않았다. 비로소 상황에서 벗어났을 때에는 내 몸의 반응을 이해할 수 없어 당황스러웠다. 둘 사이의 좁은 공간이 남기고 간 감각이 한동안 등 뒤에서 어른거렸다. 뒤늦게 깨달은 사실은 우리 둘 사이에 또렷이 자리 잡은 경계와 거리에 대한 의식이 나를 욕망에 민감하게 했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가까이 있으나 분리되어 있다는 인식, 경계를 짓고 있는 개체라는 인정, 하지만 그 경계가 출렁이는 순간 유혹이 탄생한다는 것이었다(오해하지 마시라. 그 이후 수백 번은 벌어졌을 만원 버스와 지하철의 경험 중 단 한 번도 이와 유사한 느낌을 받아본 적은 없다. 의도했든 의도치 않았든 불시에 벌어진 접촉은 불쾌감을 동반했다). 곳곳에 경계인식장애인들 들끓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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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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