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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0.31 20:28 수정 : 2014.11.02 13:39

[토요판] 이서희의 유혹의 학교
(3) 때로는 느리게

▶이서희 결혼 전이나 후나 다른 남자(그리고 여자)가 많이 궁금한 여자. <관능적인 삶>이란 책의 저자. 법학도의 탈을 쓰고 영화와 인문학 주변을 맴돌다 졸업 후 프랑스에서 영화와 마음껏 놀았다. 결혼 후 미국에서 12년째 살고 있고, 장차 나와 당신을 함께 발견하고 이해하는 어른들의 학습놀이 공간 ‘유혹의 학교’를 열고픈 꿈을 갖고 있다. 지면으로 먼저 시작하는 ‘유혹의 학교’는 격주 연재다.

왜 어떤 남자들은 마음에 드는 여자를 앞에 두고 지나간 여자를 이야기할까.

“그때, 처음 같이 밥 먹던 날, 예전에 좋아했던 여자 이야기만 내내 하셨잖아요.”

“아, 그게….”

“밥 먹고 차 마시고 또 밥 먹고 차 마실 때까지.”

“나도 이해가 안 가는 일이었는데, 그때는 마음에 드는 여자만 앞에 있으면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되고는 했어.”

친구의 소개로 알게 된 대학 선배와 얼마 전 우연한 자리에서 다시 만났다. 우리의 대화는 1990년대 초, 모 여대 앞 카페 장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뒤였고 3월이면 시작될 대학 생활 안내를 명목으로 1년 선배가 될 사람을 소개받았다. 그는 부담 없고 친절했다. 하지만 말이 너무 많았다. 끊임없이 이야기를 늘어놓다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의견을 물었다. 그리고 내 반응을 충분히 살필 새도 없이 앞서 하던 이야기로 돌아갔다. 다행히 말재주가 있는 편이라서 지루하지는 않았다. 그의 다채로운 인생사는 한 번도 방문한 적 없는 이웃 나라의 풍물처럼 낯설고 신기했지만, 그 이상의 감흥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다.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이야기로 들렸으니까. 게다가 그는 얼마 전에 헤어졌다는 여자를 잊지 못함에 틀림없었다. 다른 이야기를 이어가다가도 그 여자에 관한 언급으로 마무리되기 일쑤였다. 지나간 그림자가 너무 짙게 드리워져 있다면 내 작은 빛으로는 어림도 없을 텐데.

지나간 여자만 얘기하던 남자선배

그때 갑자기 새로운 인물이 등장했다. 유리로 된 자동문이 열리면서 마르고 단단한 체구에 야구 모자를 쓴 청년이 들어왔다. 선배의 가장 가까운 친구로 근처에 있을 저녁 약속 전에 잠시 들른 것이라고 했다. 그에게는 내 또래 남자들에게서 풍기는 불안정한 느낌 같은 것은 없었다. 유려한 화술로 내 이야기를 끌어냈던가? 아니다. 그는 단지 나를 몇 차례 응시했을 따름이었다. 호기심에 번뜩이는 눈빛도, 무언가 절박한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눈빛도 아니었다. 의미 없이 떨어지는 눈초리라고 하기에는 은밀했고 명확히 규정짓기에는 모호했다. 제대로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다. 눈길을 멈출 줄 알되 필요 이상으로 머물지 않아야 한다. 섣불리 훑거나 번득이지 않고 시간을 잠깐 정지시키듯 짧지만 집중적으로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눈을 맞춘 뒤에는 자연스럽게 시선을 이동한다. 물론, 이와 같은 시선의 마법이 힘을 얻기 위해서는 좀더 치밀한 우연의 조합이 필요하다. 나와 함께 있던, 딴 여자 삼매경이었던 선배의 한마디가 한몫했다. 그가 화장실에 간 사이 내게 속삭였다.

“저 녀석, 아주 힘든 연애 중이야. 두 사람을 보면 너무 파괴적인 관계라서 옆에서 보는 게 버거울 정도거든.”

이제 막 교복을 벗은 여중·여고만 다녀온 여자애에게 그것은 진정, 촌스럽다 하여도 매혹적인 멘트였다. 파괴적 관계? 힘든 연애? 코웃음으로 넘겨버리고 싶었지만, 어쩐지 무시할 수 없었다. 훗날 깨달았다. 순진한 남자는 자신의 연애담을 스스로 이야기하고 능숙한 남자는 자신의 연애담을 들리게 한다는 것을.

유혹은 서사를 품고 있을 때 더 큰 힘을 발휘한다. 단, 그 이야기가 풍경처럼 흘러가서는 안 된다. 상대방이 들어와서 흔들리고 변화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느끼게 해야 한다. 유혹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진심으로 유혹당하는 자를 연기하는 편이 좋다. 상대가 얼마나 매력적인 사람인지 발견하고 재발견하고 있음을 현재형으로 느끼게 해줘야 한다. 나와 선배의 만남에서 나는 들어주는 자에 머물렀다. 그 역할에 익숙해질 무렵 새로운 인물의 더 흥미진진해 보이는 이야기가 시작됐다. 마치 기존의 극에 막이 내리고 새 무대가 시작되듯. 매혹적인 주인공이 나를 보고 있다는 상상은 나른해진 감각을 온통 깨워놓았다. 나는 더 이상 관객의 자리에 있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갑작스런 역할 변경을 이룰 만큼 적극적이거나 용감하지는 못했다. 오히려 움츠러들었다. 그에게로 쏟아지는 관심이 드러날까 조마조마했다. 일부러 지루한 표정을 짓고 그의 시선에 무심함으로 답했다. 잠시 후 그가 저녁 약속 장소로 자리를 옮겨야 한다고 했을 때에야 비로소, 너무 늦어버렸음을 아쉬워했다. 상대를 매력적인 개체로 인식하는 순간, 그의 반응을 살피고 두 사람 사이의 일치된 반응을 가슴 졸이며 찾게 될 때 만남은 하나의 사건으로 변모한다. 적어도 매혹당한 사람의 서사에서는 말이다. 하지만 적절히 움직이지 않는다면 사건은 일방적인 독백으로 끝나기 일쑤이다.

우리는 관계 속 자신이 맡은 역할에 비통해지고는 한다. 의도했던 대사가 아님에도 터져 나오는 말에 후회할 때, 혹은 매력적인 상대를 두고 어처구니없이 대응하는 자신을 바라볼 때. 나는 좀더 멋지고 재치 있고 매력적인 사람이 되고 싶지만 현실은 어긋난 트랙을 달리는 기차처럼 멀어진다. 많은 경우 트랙이 어긋나는 순간은 자신을 과시하고 드러내는 일로 상대를 유혹하려 할 때이다. 과장된 자기방어 기제가 드러날 때도 있다. 거부당할까 두려워 제3자를 향한 관심으로 자신을 가장하기도 하고 평소보다 쿨하고 무심한 사람인 척 굴어버리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은 만남의 중심에 자신의 존재를 지나치게 무겁게 설정했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유혹은 상대의 입장이 되어 바라보는 데에서 시작해야 한다. 상대방이 당신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역할에 만족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 늦었다고 생각해도 여유는 잃지 않는다. 모든 반응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자신감은 자신을 과시할 때 쓰이는 것이 아니라 실패했다고 느끼는 순간, 다시 일어설 때 필요하다. 유혹은 끝을 바라보고 가는 길이 아니라 현재의 가능성에 집중하는 행위다. 아직 유혹하지 않았음은 언젠가 유혹할 수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사는 일은 짙은 허무와 다투는 일이다. 사람을 만나는 일도 마찬가지다. 사랑에도 생로병사가 있고 상처는 관계의 시작과 함께 받게 된다. 모든 관계는 상처로 마무리되는지도 모른다. 다만, 삶과 사랑에서는 결과로 모든 것을 말할 수 없다. 언젠가 돌아설지라도 빛나는 순간을 함께 공유했다는 것만으로 의미는 충분하다. 유혹은 그 순간을 채우는 빛이 되기도 한다.

늦었다 해도 여유 잃지 말고
모든 반응에 일희일비 말 것
자신감은 과시할 때가 아니라
실패 뒤 일어설 때 필요한 것 

마법 같은 시선과 슬쩍 흘린
연애담으로 나른한 감각 깨운 그
너무 늦어버렸다 아쉬워했지만
지금은 결국 반쯤 성공한 관계로

2년 뒤 동호회 모임에서 마주치다

유혹의 이야기는 아주 서서히 진행되기도 한다. 나는 그를, 저녁 약속이 있다며 나가버린 상대를 다음해 학교 도서관에서 마주쳤다. 그날 아침 아빠의 가방에서 슬쩍해 온 펜과 똑같은 모델을 그 역시 쓰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몇 달 뒤에는 대규모 집회가 열리던 날의 어느 거리에서 그를 만났다. 땀에 젖은 그에게서 꽤 좋은 냄새가 났다. 그의 힘든 연애가 끝이 났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그로부터 얼마 뒤였다. 나는 대학 입학 후 몇 달 지나지 않아 사귄 남자와 “힘든 연애” 중이었다. 그리고 2년이 지난 어느 겨울날 우리는 모 동호회 모임에서 마주쳤다. 인생을 사는 소소한 재미는, 이미 끝난 줄 알았던 이야기가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음을 깨달을 때에 있기도 하다. 고백하자면 나는 그를 마주치지 않을 때도 가끔 그의 존재를 떠올린 적이 있다. 더 덧붙이자면 그가 활발히 활동하는 동호회임을 가입 전에 알고 있기도 했다. 사람들 틈에서 그를 발견한 나는 그와 눈을 맞춘 뒤 다가가 말을 걸었다.

“아, 오랜만이네요. 저, 기억하세요?”

이서희
나의 유혹은 반쯤 성공했다. 그는 예상대로 멋지고 매력적인 상대였다. 다만 유혹은 그 과정을 통해 관계의 성질이 어디까지 나갈 것인가 깨닫게 한다. 두 사람 모두에게 명백한 드러남일 때도 혹은 시차를 둔 깨달음일 때도 있다. 사랑에 빠지는 일은 유혹하는 자에게나 유혹당하는 자에게도 필연적인 일은 아니므로. 대신 유혹의 과정 덕분에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관계의 적정 지점을 함께 찾았다. 그는, 내게 지나간 여자는 물론 진행 중인 사랑에 관해서도 이야기하는 남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도 나도, 내가 그의 마음에 들지 않아서, 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연재 1회에 등장했던 친구의 탄생 과정이다.

이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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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토요판] 이서희의 유혹의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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