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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이서희의 유혹의 학교
(7) 웰컴 투 마이 월드
▶이서희 결혼 전이나 후나 다른 남자(그리고 여자)가 많이 궁금한 여자. <관능적인 삶>이란 책의 저자. 법학도의 탈을 쓰고 영화와 인문학 주변을 맴돌다 졸업 후 프랑스에서 영화와 마음껏 놀았다. 결혼 후 미국에서 12년째 살고 있고, 장차 나와 당신을 함께 발견하고 이해하는 어른들의 학습놀이 공간 ‘유혹의 학교’를 열고픈 꿈을 갖고 있다. 지면으로 먼저 시작하는 ‘유혹의 학교’는 격주 연재다.
1980년대 어느 광고 음악에 관하여 희미하게 기억하고 있는 도시 전설이 있다. 배경 음악이 금지곡이 되었다는데 그 사연이 특이했다. <웰컴 투 마이 월드>라는 제목이 암시하듯, 듣는 사람을 유혹해 천국으로 안내하는 곡이라는 이야기였다. 물론 그것은 선풍기를 틀어놓고 자면 죽는다는 괴담처럼 근거 없는 이야기였다. 다만, 원곡을 부른 짐 리브스가 이 노래를 마지막 히트곡으로 남긴 채 비행기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는 뒷이야기는 야릇한 감상을 자아낸다. 마태복음 7장 7절을 배열만 바꿔서 인용한 뒤 근심 걱정은 버린 채 당신을 마음에 두고 세운 세상으로 들어오라는 가사가 반복되는데, 단순하고 몽환적인 멜로디가 주술처럼 아름다워 불길하기조차 하다.
두드리면 문이 열릴 거예요찾으면 발견할 거예요
구하면 얻을 거예요
나의 이 세계로 들어오는 열쇠를 말입니다.
나 여기서 기다릴게요
오직 그대만을 위해 활짝 팔을 젖히고 내가 처음 국제선 비행기에 몸을 실은 것은 대학을 졸업한 해 여름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지상에 두고 마침내 하늘에 오른 뒤, 한동안은 눈물범벅이 되어 있었다. 기약 없이 새로운 세상으로 떠나는 두려움과 그리운 얼굴을 오래도록 마주할 수 없으리라는 상실감에 압도되었다. 흐릿해진 시야로는 스크린에 맺힌 비행기 항로가 보였다. 간략해진 지구의 밑그림 위를 앙증맞은 비행기가 조금씩 이동하고 있었다. 다리를 쭉 펼 자리조차 없는 밀폐된 공간과 내가 이동하고 있다는 엄청난 거리와의 관계가 믿어지지 않았다. 손목에 차고 있던 시계를 한국 시각에서 프랑스 시각으로 맞추어 놓으려다 중간쯤에서 바늘을 멈추어 버렸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어느 시간대에도 속하지 않는 셈 치자고 생각했다. 허공에 붕 떠서 끊임없이 지나가고만 있다는 느낌은 고통이라든가 불안 등의 감상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느새 눈가가 말라버렸고 차츰 낯선 부유감에 나를 맡겼다. 파리에 도착하면 무언가 해결되리라 믿어 보면서. 그때 어릴 적 나의 금지곡이 되었던, 항공사 주제 음악을 생각했을 것이다. 다 들으면 반드시 죽는다는 그 노래 서울에 두고 온 연인과 공식적 이별을 한 것은 그로부터 1년 뒤였다. 한 사람을 5년 넘게 사귄 이후를 살아남는 일은 생각만큼 고통스럽지는 않았지만, 도무지 익숙해질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언제든 송화기를 들고 번호를 누르면 닿을 수 있던 사람이 갑자기 세상 저편에서 증발했다. 돌아갈 이유가 더 사라지니 내 몸은 조금 더 지상으로 붕 떠버린 기분이었다. 말을 타고 들판을 달리는 인디언들이 길을 멈추고 자신의 영혼을 기다려준다는 이야기를 떠올렸다. 미처 말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 영혼이 그들을 따라잡을 수 있도록. 하지만 차마 말로 달려갈 수 없는 먼 공간과 시간을 비행기로 건너온 나는 어떻게 된 걸까? 기다림만으로는 따라잡을 수 없는 격차 같은 것이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나도 모르게 스르르 분열되어버린 느낌 혹은 더는 어느 한 곳에 소속될 수 없을 것만 같은 불안, 어느 무엇도 나를 예전처럼 지상으로 굳건하게 끌어당기지 못한다는 중력의 상실감 같은 것이 찾아왔다. 달리다 너무 멀리 와버린 기분. 돌아갈 수도 멈춰 서서 기다릴 수 없을 만큼. 적응될 수 없는 시차에 갇혀, 서울도 파리의 시간대도 아닌 어딘가에 시곗바늘처럼 멈춰 있는 느낌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때 나는 한 남자를 만났다. 무작정 들어선 도시 구석의 작은 영화관, 중간 자리에 몸을 파묻고 앉아 있는데 이미 시작된 영화의 화면을 가로질러 그가 도착했다. 나와 멀지 않은 좌석, 같은 열에 자리를 튼 남자를 두고 생각했다. 저토록 아름다운 남자는 멀리서 바라보는 편이 좋을 거야. 평면의 백색 스크린 위로 쏟아지는 빛의 환영처럼, 카메라 렌즈의 외눈박이 시선으로 재구성된 삼차원의 세상처럼. 당시 영화관을 찾는 내 의식은 유령이 출몰하는 고성을 방문하는 여행자의 하룻밤과 비슷했다. 사랑과 복수와 죽음의 이야기를 매일 밤 되풀이하는 유령들과 한 시절을 보내다 보면 밤과 낮이 엉키고 이쪽의 삶과 저 너머의 시간이 경계를 풀고 흩어졌다. 휘몰아치는 총성을 뚫고 두 시간여를 지나 상영관을 나온 뒤, 놀랍게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극장 안 사나이와 마주쳤다.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느냐는 말을 선약이 있다는 말로 뿌리치고 나서는데, 그가 절박한 눈빛으로 말했다. 나도 너처럼 낯선 이방인이야. 낯선 이에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느냐고 묻는 것도 처음이고. 내 이름을 묻는 그에게 먼저 그의 이름을 물었다. 그리고 내 연락처를 주는 대신 그의 연락처를 물었다. 이주일 뒤 나는 이사를 했고 짐을 혼자 정리했다. 전화선을 개통한 기념으로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싶었지만, 제일 먼저 떠오른 사람이 얼마 전 헤어진 연인이었다. 그에게 전화를 걸지 않기 위해 한참을 버티다가 미처 풀지 않은 가방을 뒤졌다. 그곳에는 까맣게 잊고 있던 극장 안 사나이의 전화번호가 있었다.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지 않기 위해 다른 이의 번호를 눌러본 경험이 있다. 바로 그때였다.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심정이었다. 벨이 두 번 울리기도 전에 끊기고 상대편 목소리가 들렸다. 바로 어제 일이라도 되는 듯, 극장에서 만나 전화번호를 준 사람을 기억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 내 이름을 불렀다. 우리는 바로 한 시간 뒤 파리 14구의 어느 카페에서 만날 약속을 잡았다. 함께 저녁을 먹었고 그가 얼마 전 주인과 안면을 텄다는 근처 바를 찾았다. 그곳에서 그는 내게 흥미로운 제안을 했다. “하늘에 누각을 짓는다는 표현을 아니? 무너질 것을 뻔히 알면서도, 허공에 기반을 두고 헛된 일을 시도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야.” 처음 국제선 비행기 타던 날
두려움과 상실감에 눈물범벅
어릴 적 나의 금지곡 되었던
항공사 주제음악을 생각하다 나를 기다리던 극장 안 사나이
약속 있다고 눈빛을 외면했지만
그에게 결국 전화를 걸고 말다
함께 공중누각을 짓기로 하는데 낭비되고 낭비하여 아름답다 그는 뉴욕의 어느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학생이었다. 방학을 맞아 3개월 예정으로 파리 체류를 결정했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헤어진 연인과의 온전한 이별을 완수하고자 하는 것도 있었다. 각각 5년과 3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보낸 연인을 각자의 고국에 두고 우리는 파리에서 공중누각을 짓기로 했다. 3개월이라는 제한된 시간이 있다. 그는 떠날 것이다. 어쩌면 더 고통스러운 이별을 맞이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 고통은 예정된 것이 아니니, 걱정은 3개월 뒤로 미뤄두기로 했다. 그와 나는 리스트를 만들었다. 여행자의 리스트를. 파리라는 도시의, 그리고 기약할 수 없으나 끝날 것이 분명한 삶의 방문자로서의 리스트를. 매일같이 우리는 그 리스트 중 무언가를 시도했다. 완수할 때도 있었지만 그렇지 못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정성을 다했다. 함께 있는 시간에, 서로에게, 우리의 리스트에. 때로는 평범한 연인처럼 질투와 의심에 휩쓸려 다투기도 했고 뜬눈으로 밤을 새우기도 했다. 다툰 다음날 아침 그의 전화를 받고 아파트를 뛰쳐나왔는데, 만나기로 한 장소의 지하철 계단 끝에 올라서자마자 광장 저편 긴 팔을 활짝 펴고 우뚝 서 있는 그의 모습을 발견했다. 나를 위해 열린 팔, 나를 마음에 두고 지은 누각, 비록 언젠가는 무너지겠지만, 나는 그곳을 향해 달려갔다. 돌이켜 보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 중 한 조각을 그와 함께 보냈다. 우리는 곧 사라질 것이 명백해 더욱 매혹적인 연인 역할에 충실할 수 있었다. 내가 될 수 있는 가장 매력적인 여자가 되어 누군가의 앞에 서는 일은 즐거웠다. 부단히 그의 마음을 읽고 상상하고 그것을 맞추고 가끔은 넘어서고 의외의 즐거움을 끌어들였다. 그 역시 두 팔을 활짝 연 채,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여는 열쇠를 건네주었다. 그의 노랫소리에 홀려 기꺼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한여름의 독립기념일, 축제의 불꽃이 쏟아지던 밤, 그와 함께 넘치는 인파 속을 흘러가며 생각했다. 무너지는 것조차 황홀하구나. 너와 내가 지은 천공의 누각도 저 불꽃처럼 산산이 부서져서 아름다울 테구나. 정중한 두드림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 마지막 역시 정중한 몸짓의 인사와 함께 마감했다. 이별의 가장 정중한 몸짓은 때로 한바탕의 흐느낌이 되기도 한다. 그와 헤어진 곳은 공항이었다. 이번에는 내가 지상에 남아 있고 그가 창공을 가로질러 떠나갔다. 그가 떠난 도시 구석마다 미처 그를 따라잡지 못하거나 내가 보내지 못한 그의 조각들과 마주쳤다. 생각만큼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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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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