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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이서희의 유혹의 학교
(10) 우정의 탄생
나에게는 나이가 스무살가량 많은 친구가 있다. 그는 남자이다. 나의 프랑스 유학 시절 담당교수였고 한때의 기피 대상이기도 했다. 그는 젊고 매력적인 이국의 여성을 마주하면 제자라도 호감을 드러내는 이름난 바람둥이였다. 그에 관한 첫인상은 좋지 않았다. 마흔을 훌쩍 넘긴 중년 남자가 이십대 중반의 여성들에게 눈길을 던지는 모양새가 불편했다. 그것도 여러 명을, 여기저기서. 젊은 여성의 꽁무니를 뒤쫓아 다닌다는 말은 그의 명성에 주석처럼 달렸다. 문화의 차이인가 싶어 혼란스럽기도 했다. 다행히 그는 상대 여성에게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호의를 강요하는 일은 없었다. 낯 뜨거운 과시도 없었다. 어떻게 아느냐고? 나의 단짝이었던 언니가 나와 동시에 그의 지속적 관심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2년여에 걸쳐. 둘이 주고받은 정보에 따르면, 그는 손 한번 잡으려 한 적도 없었고 무례한 행동을 저지른 적도 없었다. 따뜻한 시선과 끊임없는 찬사, 어쩌다 보내는 이메일이 전부였다. 호감을 느끼는 제자라고 해서 좋은 점수를 주는 일도 없었다. 수업 평가는 다른 교수들보다 까다로울 정도였다.
사랑하는 딸을 사고로 잃은 뒤
나는 그의 연락을 무시하기도 하고 딱 잘라 단둘이 만날 의사가 없음을 밝히기도 했다. 내게 다가오는 남성에 대한 거절의 표시였다. 거부 대상인 그가 나의 담당교수임을 의식할 만큼 부담스러운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는 거절당한 남자답게 물러설 줄도 알았다. 일정한 시간이 흐르면 예전 모습으로 돌아왔지만.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 조금은 나약해지고 조금은 수줍어지는 모양새로, 슬며시. 연정을 표시할 때의 그는 나와 수평한 관계의 남성일 뿐이었다. 아니, 기꺼이 무릎을 꿇는 예찬자가 되었고 정중한 태도를 유지하는 일도 잊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논문을 준비하며 그의 수업을 목요일마다 들었다. 그는 내게 제안을 했다. 수업 전, 목요일마다 함께 점심을 먹자는 것이었다. 그 시간 동안 논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지만, 차츰 사적인 대화가 끼어들기 시작했다. 그는 꽤나 현명한 인생의 선배였고 적절한 조언자였다. 따스한 위로를 줄 때도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함께 학교로 걸어 들어가는 일은 목요일 오후의 일상이 되었다.
유독 기억나는 그와의 오후가 있다. 보슬비가 내렸고 날씨는 쌀쌀해서 우리는 모두 외투를 입고 있었다. 내가 처음으로 어느 잡지에 글을 싣게 되었다는 것을 알고 그는 그 책을 꼭 가져와 보여 달라고 했다. 작은 꼭지에 불과하다고 거듭 강조했음에도, 시작은 마땅히 축하받아야 하는 일이라고 그는 우겼다. 한글을 읽지도 못하는 외국인이 내 손가락이 가리키는 지면을 바라보며 내 이름을 찾아내려 애썼다. 그의 권유에 따라 샴페인 한잔씩을 마시기도 했다. 조금 알딸딸해진 상태로 거리를 나와, 기분이 좀 좋아진 김에 그를 내 우산 밑으로 초대했다. 키가 매우 큰 선생님은 비를 맞는 것쯤은 아무렇지 않다고 사양하다가, 마침내 내 우산을 받아 쥐었다. 함께 조금 걷던 중 내가 팔에 끼고 있던 잡지를 땅에 떨어뜨렸다. 구정물이 튀겨 엉망이 된 책을 그는 부리나케 주워 들고는 자신의 외투 소매로 오물을 닦아냈다. 당황한 나는 그의 손에서 잡지를 뺏어내려고 했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이건 당신의 첫 글이 실린 소중한 책이라고. 외투는 빨면 되는 일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다음해 봄 그는 자신의 사랑하는 딸을 사고로 잃었다. 나는 그때까지 그토록 슬픔과 분노로 범벅이 된 인간을 본 적이 없었다. 추락사였다. 아이는 즉사했다. 그는 그때 내게 자주 전화를 걸었다. 신에 대한 분노와 아이를 잃은 슬픔을 두서없이 털어놓는 허약한 사내의 목소리가 수화기 저편에서 들렸다. 조용히 듣는 일밖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흐드러진 슬픔의 봄이 지나고 여름이 왔다. 나는 방학을 맞아 한국에 돌아갔다 오는 길에 향을 사서 그에게 전했다. 며칠 뒤 긴 이메일이 왔다. 매일 아침이면 향불을 피워놓고 기도를 올린다고. 죽은 딸아이의 얼굴이 연기처럼 떠오른다고. 그런데 자꾸만 딸아이 얼굴에 당신의 얼굴이 겹쳐 보인다고. 그 뒤로 선생님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철없는 소년의 모습에서 어른의 모습으로. 예전에 종종 보이던 가벼운 질투 같은 것도 말끔히 사라졌다. 그리고 몇 년 뒤 그는 아름다운 이국의 여성을 아내로 맞았다. 그녀는 나보다도 다섯살은 어렸다.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이미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미국 땅에 살고 있었다. 여전했을 그의 모습이 떠올라서 웃음이 났다. 안도의 웃음이기도 했다. 그의 존재방식은 끊임없이 아름다운 것을 발견하고 예찬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그가 유혹에 실패했는지 아닌지를 판가름할 수 없다. 나는 수많은 여성들 중 그에게 조금 특별하지만 아주 특별한 존재는 아니었고, 그는 거기에 걸맞은 유혹을 내게 걸어왔다. 그는 딱 그만큼의 유혹으로 다가왔으나 그 ‘그만큼’에 정성을 다했고 나는 내 식으로 ‘그만큼’의 유혹에 응답했다. 차츰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어느덧 슬픔을 나누는 행위까지 이어졌다. 그렇게 우정이 탄생했다. 그가 시도했던 각각의 유혹은 특별했고 유일했다고 믿는다. 다만, 아내가 된 단 한명의 그녀에게 그 특별함은 지극했으리라 짐작한다.
유혹은 종종 모럴을 무시하고 그 경계를 위태롭게 움직이는 행위이다. 아니, 애초에 금기를 넘나들고 경계를 위협하는 성질을 품고 있다고 해야 할까. 인간 대 인간의 매력이 오가는 자리가 안정적일 수는 없다. 지나친 안전함과 명백함의 추구가 우리를 서로에게 둔감하게 만들기도 한다. 존재와 존재의 만남은 ‘떨림’인데, 우리는 자주 그 떨림을 잊거나 인지조차 못하거나 무시한다. 만남의 감수성에 둔해졌기 때문이다. 유혹은 그 떨림을 인지하고 때로는 증폭하고 의미 있게 만들려는, 정성을 다하는 행위이다. 나와 상대, 그리고 우리가 함께 공존하는 현재를 위해서. 밀란 쿤데라는 그의 저서 <소설의 기술>에서 지식의 진보와 문명의 발달과 함께 단순한 사물이 되어 버린 인간을 언급한다. 그리고 구체적 존재로서 잊힌 그들을 발견하는 데에 소설의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앎이야말로 소설의 유일한 모럴인 것이다.” 나는 여기서 소설 대신 유혹이란 단어를 집어넣는다. 상대를 발견하고 탐색하고 알아가는 것, 그것이 유혹의 유일한 모럴이라고. 그러나 살아 있는 눈앞의 인간을 발견하는 유혹의 행위에는 까다로운 조건들이 전제된다. 섬세하고 예민하고 위태로운 것은 유혹의 감각뿐만이 아니라 유혹의 존재 또한 그러하다. 유혹은 금세 유혹이 아닌 것이 될 위험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젊은 여자들 밝힌다고 소문난스무살 위 대학시절 담당교수
나에게 호감으로 접근했지만
거기에 과시나 권력은 없었다 끊임없는 찬사와 놀랄만한 배려
마음을 열고 슬픔을 나누기까지
손 한번 잡으려 하지 않았지만
그에게 매혹의 신비를 발견하다 ‘희롱’이 되지 않기 위해선… 성공하든 실패하든, 사회의 관습을 존중하든 넘어서든, 돈과 지위와 젊음과 아름다움의 지원을 받든 아니하든, 상대를 향한 강요나 압박은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희롱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상대의 욕망에 대한 배려와 존중, 수평적 관계 인식이 필요하다. 권력을 통해 누릴 수 있는 욕망에 길들여지는 순간, 채울수록 더 넓어지는 결핍의 노예가 된다. 특별한 개인으로서의 인간은 지워지고 아귀 같은 공허만 남는다. 나는 더 알고 싶고 남김없이 빠져들고 싶은 상대 앞에 설 때마다 두려웠다. 나의 존재에 대해 확신할 수 없었고 이는 나를 겸손하게 만들었다. 매혹 앞에서 나는 당신의 처분을 기다리는, 한없이 미약한 존재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매혹의 신비이다. 그토록 강력한 척 무장했던 당신을 해제하는 것, 상대의 반응에 예민해질 만큼 섬세하고 나약해지는 것, 우리가 함께 그 미미함을 건너 굳건히 나아가는 일이다. 나는 젊고 아름다운 아내 앞에 한없이 나약해졌을 그의 모습을 상상한다. 그는 적어도 아낌없이 낮아질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것이 용기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지난가을, 어느 영화제에서 우리는 다시 만나 오후의 차를 나눴다. “선생님, 이제 저도 마흔이에요”라고 내가 운을 띄우자 그는 “아, 이런. 나는 어느새 예순입니다”라고 대답했다.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었다. 우리는 서로를 마주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조금은 쓸쓸했으나 그 쓸쓸함이 어딘가 넉넉했다. 바닷바람은 온화했고 햇살은 눈부셨고 그 풍경에 깃든 모든 조화에 감사의 마음이 들었다. 태양은 언제나 저렇게 자신의 존재를 다해 빛을 비추고 바람은 기압의 차를 따라 움직이고 파도는 달의 부름을 따라 달려가고 나와 그는 마음을 다해 웃는다. 우리는 이제 정성을 다하는 법이란 존재의 자연스러움을 발견하고 함께 누리는 일이라는 걸 어렴풋이 깨닫는다. 그는 그답게 빛나고 있었고 나 역시 그러했기를 바란다. 적어도 나는 행복했고 그 행복함에 편안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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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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