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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5.26 18:33 수정 : 2006.06.12 11:18

곽병찬 논설위원

곽병찬칼럼

석학 칼 포퍼는 일부 ‘한국적 자유주의자’들한테 체면이 완전히 구겨진 철학자 가운데 하나다. 시장의 자유방임과 파시스트의 절대권력을 함께 섬기면서도 자유주의자를 자처하는 이들이, 전생애에 걸쳐 자유방임과 전체주의를 비판했던 포퍼의 제자를 자처하니 말이다.

포퍼는 개인의 자유와 경제적 평등이 조화를 이루는 사회를 추구했다는 점에서 진보적 자유주의자로, 이성의 오류 가능성과 경험의 한계를 믿었던 점에서는 비판적 합리주의자로 분류된다. 기이한 자유주의자들이 포퍼에 열광한 이유는 하나다. 포퍼는 열린 사회의 적으로 전체주의를 꼽았는데, 이들은 지구상의 전체주의는 공산주의뿐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포퍼가 이 문제를 궁구하게 된 계기가 파시즘(혹은 나치즘)의 횡포였다는 사실을, 이들은 모른 척한다.

열린 사회에 대한 논의는 이성의 오류 가능성에서 출발한다. 뉴턴의 물리학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따라 수정되듯이, 이성은 언제나 잘못을 범할 수 있다. 그에게 문제는 이성의 오류를 어떻게 시정할 수 있을 것인지였다. 그 수단으로 그가 제시한 것이 관용과 비판적 토론이었다. 이를 통해 이성의 오류를 바로잡아 나갈 때 민주주의는 성숙한다. 그에게 민주주의는 최선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최악을 제거하는 장치였다.

반면, 이성의 무오류성을 전제할 때, 철학은 독단에 빠졌고 정치는 독재로 흘렀다. 기독교가 신의 계획과 선택을 믿듯이 전체주의는 역사적 결정론을 신봉한다. 신에겐 오류가 없듯이 독재자(이성)에게도 오류가 없다. 따라서 전체주의는 하나의 신념과 가치만 허용하고, 때론 하나의 인종만 인정한다. 따라서 이곳에선 회의와 비판은 있을 수 없다. 의심은 죄악이고 비판은 범죄다. 다른 가치와 신념은 공동체를 위협하고 병들게 하는 이단이고 병균이다. 증오하고 절멸시켜야 한다. 신국 일본, 위대한 게르만 민족이 그렇게 손쉽게 인종학살을 한 것은 그런 배경에서였다.

이런 사회를 이끌어가는 힘은 광기다. ‘위대한 게르만 민족의 영광을 위하여!’라는 목표를 위해선 합리적 의심과 사유는 제거돼야 한다. 근대화와 반공 혹은 악의 축 제거를 위해선 인권이나 주권도 포기돼야 한다. 닫힌 사회의 동원체제를 움직이는 것이 광기라면, 목표를 실현하는 데 동원되는 게 폭력이다.

그러면 우리 사회는 어떨까? 닫힌 사회의 광기와 폭력은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시대 등 역사 속의 유물로 사라진 걸까. 우리는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을 짧은 시간 안에 이룬 나라로 평가받고 있으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지금도 여전한 다른 신념과 의견, 다른 가치, 나아가 다른 지역에 대한 거부감과 편견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비판을 수용하지 못하고, 토론과 오류의 시정을 거부하며, 때로 다른 가치와 신념을 폭력적으로 억누르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황빠(황우석 지지자)와 박빠(박근혜 지지자)의 폭력은 바로 그 광기와 무관한 것일까. 여전히 강력한 공권력 무오류론은 국가주의의 병증이 아닐까. 정치와 장삿속이 결합해 증폭되고 있는 월드컵 열광을, 영국의 〈비비시 방송〉은 종교 집회에 비교했는데,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개최국 독일엔 ‘축구 없는 지역’(풋볼프리존)이 나타난다는데, 우리도 그런 걸 기대할 수 있을까?

포퍼는 이성의 독단과 함께 이성의 통제받지 않는 열광을 경계했다. 우리 주변에 나타나는 맹목적인 증오와 폭력, 획일화된 열광, 소통과 비판의 거부 등이 그것이다. 닫힌 사회의 광기 뒤엔 파시즘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논설위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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