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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7.21 20:44 수정 : 2006.07.21 20:44

곽병찬 논설위원

곽병찬칼럼

집중호우는 군사작전처럼 주도면밀했다. 우선 교통과 통신망을 봉쇄했다. 200년 주기의 폭우에도 견디게 설계했다는 영동고속도로를 끊고 차례로 국도 지방도로를 차단했다. 유선망과 이동전화 무선기지국도 파괴했다. 퇴로와 보급로 그리고 통신망이 봉쇄되자, 고립무원의 한계리·덕산리·가리산리 등 산간지역을 초토화시켰다. 여세를 몰아 인제·원통·진부 등 작은 도시를 수장시켰고, 수도 서울을 슬쩍 건드렸다. 그것으로 작전은 끝났다. 나머지 영월·단양·충주·여주 등 중소 도시들은 아예 손을 들고 하늘의 처분만 기다렸다.

이 과정에서 최선의 효율성도 과시했다. 도로건 마을이건 절개지를 먼저 노렸다. 연초에 전면 개통한 새 영동고속도로는 오대산 절개지 공격에 아무런 저항도 못했다. 국도 지방도의 절개지는 더 허약했다. 산간 계곡도 마찬가지였다. 그동안 수려한 골짜기마다 지방도가 뚫리고, 도로 인근엔 펜션이나 별장이 들어섰다. 이 과정에서 산은 뭉텅이로 잘려나갔으며, 곳곳에 절개지를 남겼다. 비용을 줄이려다 보니, 절개지는 대개 수직 가까이 깎아질렀다. 이 허약한 절개지들이 일제히 무너졌고, 거기서 쓸려나온 토사는 펜션·별장·농가를 덮쳤다.

절개지 공략은 이번에만 특별한 것은 아니었다. 영동 지역을 휩쓸었던 태풍 매미와 루사 때도 폭우가 노린 것은 절개지였다. 사람이 자연에 입힌 상처를 통해, 자연은 고스란히 되갚음을 한 셈이었다. 이런 상처를 가장 많이 남기는 게 도로 건설이다. 평지는 보상가가 비싼 탓에 도로는 주로 산을 뭉개거나, 하천 부지에 개설한다.

90% 이상이 산지인 백두대간 양쪽, 특히 우리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설악산·오대산 주변은 수많은 도로로 상처를 입었다. 이곳을 관통하는 1급 도로만도 영동고속도로 신구 구간, 오대산 동대와 청학산 사이를 넘는(진고개) 국도, 오대산과 남설악 점봉산 사이(구룡령)를 넘는 국도, 인제에서 양양으로 한계령을 넘는 국도, 필례 약수터를 지나는 옛 한계령 도로, 그리고 미시령과 진부령을 넘는 국도 등이 있다. 5월엔 동서를 꿰뚫는 터널까지 개통됐다. 구룡령까지 합치면 설악산에만 여섯 개의 국도가 산을 헤집어 놓은 것이다.

백두대간에 대한 폭력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건설교통부는 춘천~인제~양양 고속도로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이웃하고 있는 홍천과 인제 사이에 자동차 전용도로를 건설하는 중이다. 게다가 춘천과 홍천 사이에는 옛 국도, 잼버리 도로, 중앙고속도로가 나 있다. 모두 홍천~인제 자동차 전용도로와 연결된다. 잼버리 도로의 교통량은 하루 1천대도 안 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고속도로가 뚫릴 경우 기존 도로의 교통량은 43%나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럼에도 건교부가 이 고속도로 건설을 밀어붙이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건교부는 앞으로 춘천~양양 고속도로를 포함해 백두대간 관통 고속도로를 여덟 개나 더 계획하고 있다. 처음부터 밀리면 나머지를 추진할 수 없다. 예정가 1조원짜리 고속도로를 건설한다고 하면, 실제 공사비는 3조원에 이르며, 이 가운데 절반만 인건비·자재비로 들어간다고 한다. 나머지 돈은 어디로 흘러갈까.

지구가 지금의 안정 상태에 이르는 데는 45억년이 걸렸다. 인간은 200여년만에 이 안정성을 뿌리째 흔들었다. 대한민국에선 그것이 불과 40여년 만에 진행됐다. 상처입은 백두대간의 몸부림은 안정성을 되찾기 위한 것이다. 연이은 수재는 그 몸부림의 결과일 뿐이다.


논설위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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