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8.09 19:50
수정 : 2006.08.09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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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병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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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병찬칼럼
지난달 행복과 관련한 두 개의 지표가 발표됐다. 영국 정부의 두뇌집단인 신경제학재단(NEF)의 행복지수와 영국 레스터대학 에이드리언 화이트 교수의 세계 행복지도였다. 공교롭게도 두 연구에서 한국의 행복 순위는 102등이었다. 경제 규모는 세계 11위라지만 행복 순위는 바닥이었다.
두 지수는 산출 방식이 다르다. 엔이에프 행복지수는 국민의 생활만족도를 수명이나 소득 등 다른 객관적인 요인들보다 중시한다. 가난하지만 낙천적인 중남미 나라들이 10위권 안에 여덟이나 포함되고, 주요 7국(G7)의 영국·프랑스·미국이 하위권으로 밀려난 것은 이 때문이다. 화이트 교수의 행복지도는 건강·소득·교육 등 세 요소와 환경적 요인을 결합시켰다. 환경훼손이 심하고 에너지 소비량이 많은 나라는 점수가 낮았다. 덴마크·스위스·오스트리아 등 서유럽 나라들이 상위권에, 특히 가난한 부탄(1인당 국민소득 1500달러)이 8위에 올랐다. 한국은 엎어치나 메치나 같았다.
경제학자 폴 새뮤얼슨은 행복은 ‘소유를 욕구로 나눈 값’이라는 공식을 내놨다. 영국의 심리학자 로스웰과 인생상담사 코언은 이를 좀더 구체화했다. 행복은 인생관·적응력(개인적 특성), 건강·돈·인간관계(생존조건), 야망·기대·자존심(마음의 상태)에 의해 결정되는데, 생존조건은 개인적 특성보다 5배, 마음의 상태는 생존 조건보다 3배 더 영향력이 크다고 생각했다. 개인적 자질(5%), 생존조건(25%)이 아니라 욕망·기대·자존감(70%)에 의해 행복은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런 논의를 바탕으로 〈행복의 경제학〉의 저자 리처드 레이어드는 영국의 위기를, 시장 이데올로기에 빠진 정부와 사회가 국민을 무한경쟁으로 내몰아 스트레스에 찌들게 하고 낙오자를 양산한 탓이라고 진단했다. 영국 정부가 우울증 등 정신질환자에게 지출하는 장애수당은 연간 15조원에 이른다. 때문에 그는 국민정서를 살피는 공공투자를 확대하고, 도시를 인간친화적으로 개조하며, 사회적 연대와 통합을 회복하도록 권고했다. 노동당 정권의 ‘사회적 존경회복정책’은 이에 따른 것이다. 노동당은 국민정서를 해치는 행위도 정부가 규제하겠다고 ‘오버’하기도 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교통사고를 포함해 사고사율이 가장 높고, 이혼율도 최고 수준이고, 자살률은 선두를 다투는 우리가 행복을 운위하는 건 어불성설인지 모른다. 어려선 입시지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철 들어선 취직 때문에 피 말리고, 성년이 되어선 낙오하지 않기 위해 허덕이는, 이 무한경쟁의 틀 속에서 어떻게 행복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우리의 선진국형 병리 현상이 영국을 앞지른 지는 이미 오래됐다. 레이어드는 정부가 낙관과 희망의 비전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이른바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정체불명의 노선을 추진하다가 지지자들마저 절망 속에 빠뜨렸다. 보수언론 등 온갖 정치집단은 권력 장악을 위해 불만 바이러스를 무한대로 생산·유포했다. 특히 이들이 질러대는 짜증과 비관적 전망은 온 국민을 투덜이로 만들었다. 한편에선 욕망과 기대를 한껏 부추기고, 다른 한편에선 요람에서 무덤까지 경쟁을 재촉했다. 불만을 항구화하는 시스템이다.
덥다. 지독한 수재 뒤끝이어서인지 불쾌지수는 연일 상한을 친다. 열대야에 잠을 설친 새벽마다, 졸린 눈 비비며 이렇게 소망해 본다. 더위야 어떻게 하겠는가. 아침마다 터무니없이 속 뒤집는 이야기는 말고, 좋은 이야기 좀 들어보자. ‘굿 모닝’ 좀 해보자.
논설위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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