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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8.30 19:17 수정 : 2006.08.30 21:23

곽병찬 논설위원

곽병찬 칼럼

먹이와 함께 들어온 이물질이 조개의 속살에 상처를 낸다. 조개는 즉각 콘키오린을 내어, 이물질을 감싼다. 콘키오린이란 조개가 먹이로 흡수한 것 가운데 미네랄 등의 칼슘 성분을 화학처리 해 만든 물질. 놀란 조개는 콘키오린을 내고 또 내어 수백 수천번씩 이물질을 감싼다. 이렇게 해서 생성되는 것이 진주다. 다른 광물성 보석과 달리 진주는 한 생명체가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에서 창조되는 것이다.

이런 진주의 생성 과정은 종종 예술 창조행위를 상징한다. 예술이란 집단 혹은 개인의 상처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탄생하는 것이니 적절하다. 그것은 글로 옮겨지면 서사가 되고, 운율에 얹혀지면 음악이 되며, 색채와 형태로 전환되면 회화가 된다. 화려하게만 보이는 인상파 회화의 바탕엔 존재의 순간성이란 한계가 깔려 있고, 세잔이 엄격한 기하학적 도형에 기댄 것은 모든 이런 존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었다. 고흐의 작품은 세상과의 불화, 가난, 정신병증 등 운명적인 상처가 빚어낸 것이었으며, 스페인 내전의 상처 속에서 피카소의 작품들이 탄생했고, 이중섭의 작품 역시 감당하기 힘든 시대와 개인의 고통 속에서 태어났다.

허튼 사설이 길어졌다. ‘광주 비엔날레’(9월8일부터)가 다시 무료한 모습으로 우리 눈앞에 다가오는 탓이다. 김홍희 총감독의 말대로, 총칼로 난자당했던 광주가 그 상처를 예술적으로 치유하고 극복하려 한다는 광주 비엔날레의 출범 취지는 세계인의 눈길을 끌고도 남았다. 파편화된 채 의미연관을 상실한 현대예술로 하여금 예술 창조행위의 근본을 돌아보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조개의 상처와 진주, 예술가의 내상과 작품, 광주의 5·18과 비엔날레, 거기서 무언가 새 상상력을 얻고자 했을 것이다. 그러나 광주비엔날레는 4회를 지나면서 시들해졌다. 왜 그럴까?

다음은 이런저런 논의의 결과였을 것이다. 한 책임자는 ‘이제 광주 비엔날레가 아니라 대한민국 비엔날레가 되어야 한다’고 단언했다. 비엔날레가 1980년 광주에 발목이 잡혀 발전하지 못했으니, 광주 비엔날레가 예술 본연의 순수성을 되찾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요컨대 광주 비엔날레에서 광주를 지우자는 것이다. 그럴듯하다. 비엔날레가 광주의 기억에 묶이고, ‘80년 광주’라는 소재주의에 빠지는 등 자폐 증상을 보이는 것은 극력 말려야 할 일이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였다. 일부 설익은 소재주의에 대한 요청이 있긴 했지만, 역대 기획자들은 일관되게 비엔날레에서 광주의 기억을 지웠다. 그 결과 4회부터는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게 탈색시켰다.

광주는 아시아가 밟아온 현대사를 뭉뚱그려 보여준다. 아시아는 식민체제 아래서 가혹한 수탈과 처절한 저항을 경험했고, 해방 이후 이데올레기의 골육상잔을 치렀으며, 근대화의 도정에선 독재로부터 민주주의와 인권을 지키기 위해 오래도록 싸워야 했다. 그런 아시아는 이제 세계 경제의 새로운 엔진으로 떠오르고, 전망을 상실한 서구 중심의 문화에 새로운 대안으로 떠올랐다. 광주의 5·18은 이 모든 과정을 농축했다. 승자는 한없이 나른하고, 패자는 좌절뿐인 후기자본주의. 권태와 절망, 퇴폐와 일탈이 뒤엉킨 이 시대에, 광주는 민주주의와 인권, 공동체에 헌신하는 모습을 충격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예술은 상처에서 돋아나는 새살과도 같다. 그런 상처와 새살이 없다면, 누가 후발 비엔날레를 주목할까. 억압에 대한 저항, 생명의 공동체와 연대의 정신이야말로 광주 비엔날레를 영원히 빛내줄 에너지다. 누가 그걸 지워버리고 있는가.

곽병찬 논설위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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