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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11.01 18:31 수정 : 2006.11.01 18:31

곽병찬 칼럼

수첩은 될수록 사용하지 않았다. 연락처는 외우거나 언제든 없앨 수 있는 종이 낱장에 적어야 했다. 일반 전화 사용도 피했다. 불편하더라도 공중전화나 교환을 이용했다. 자취방은 물론 학교 연구실에서 이야기할 때도 라디오건 티브이건 볼륨을 높였다. 조직원의 수칙이 아니다. 오래 전 일도 아니다. 불과 20~30여 년 전 대학생들의 몸에 밴 습관이었다. 낮이고 밤이고, 엿듣거나 엿보는 쥐와 새가 들끓었고, 문제가 생겨 누군가 달려가면 엉뚱한 친구들까지 줄줄이 엮이었던 탓이었다.

그러나 이런 습관도 학생을 온전히 보호해주지 못했다. 그들에게 일단 찍히면 어떤 식으로든 꼬투리가 잡히고, 꼬투리가 잡히면 제 아무리 잘 도피해도 붙잡히기 마련이고, 붙잡히면 무엇이든 뒤집어썼다. 그들은 없던 일을 만들고, 없던 조직을 창조하는데 도사였다. 물고문 전기고문이 아니더라도 몽둥이와 협박·모멸이면 됐다. 그렇게 신출귀몰하고, 주도면밀하며, 창조적이고, 역동적이었던 그들이 한동안 침묵하고 있어야 했다. 음지에서 양지를 지향한다는 것은 그저 대외용 구호일 뿐인데, 시대의 변화는 그들을 음지에 있게 했다.

그러나 처박혀 있을 그들이 아니다. 공명이 동남풍을 기다리듯, 그들은 절치부심 북풍을 기다렸다. 마침내 북풍은 핵폭풍으로 밀려왔고, 그들의 전격전은 화려하게 펼쳐졌다. 주도면밀함은 조조의 대군을 수장시킨 공명의 화공 못지 않았다. 어설픈 세작 한두 명을 바탕으로 개시한 전격전은, 그동안 마지못해 모시던 대통령과 청와대를 일거에 궁지로 몰아넣었다. 눈엣가시 같았던 시민사회 단체나 386인사들을 공공의 적으로 내몰았다. 주한미군의 독극물 방류 사건을 밝힌 것도 간첩혐의에 포함시켰고, 효순이 미선이 추모 촛불집회도 북의 지령에 따른 것으로 만들었다. 하나를 귀띔하면 열을 써 제끼고, 꼬리를 보이면 몸통을 그려보이는 언론과 정치권이 있으니, 전격전은 곧 바로 총력전으로 전환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예전의 기량이 아니다. 아니 기량은 그대로인데, 20~30년 전 수준에 머물러, 녹슬었다. 우선 수첩에 주로 의존하는 게 그렇다. 세작 혐의자의 수첩에 적힌 이름과 간단한 메모 그리고 단편적인 진술이 거의 전부다. 그래서 아무리 그림 잘 그리는 언론도 이들의 활약상을 이렇게 전할 수밖에 없었다. “공안 당국은 구속된 386 인사들이 학생운동과 이후 사회활동 과정에서 정치권 시민단체 관계자와 빈번히 접촉해온 점에 주목해 이들의 연루 여부에 대해 집중 추궁하고 있다.” 수첩에 적혔거나 명함이 발견되면, 일단 조직원이나 포섭 대상자가 되는 것이다. 수사선에 올라있다는 정치권 재야단체 간부 10여명, 5개 시민사회단체 간부는 이렇게 포착됐다.

이렇다보니, 혐의를 입증할 증거는 별로 없고 수사 방향만 선명하다. 비공개가 원칙인 그들의 대장까지 전면에 나서서, 간첩단 사건으로 성격을 규정하고, 정보기관에도 세작이 있는 것처럼 떠벌였다. 수하들은 언론과의 접촉을 통해 ‘경천동지’ ‘핵폭탄급’ 따위의 수사를 나열하며 여론몰이에 나섰다. 함구령은 말뿐이다. 인생 역전에 대한 조급함 때문일까. 제시하는 밑그림도 고작 친목회 수준이다. 선배들이 보기에도 딱할 것 같다.

그러나 썩어도 준치다. 아무리 시대에 뒤떨어져도 언론계 정치권엔 안보 장사꾼이 득실대고, 세간엔 맹목적인 공포와 증오가 만연해 있다. 게다가 이들의 양심은 ‘아니면 말고’로 다져졌으니, 두려울 게 없다. 조심해야 한다. 수첩·전화·친구 등등. 그들이 다시 움직이고 있다.

곽병찬 논설위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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