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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병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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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이 김연아를 볼 때 떠올린 그 소녀
일부러 그 앞을 지나치곤 했지만 정면에서 마주하진 못했다. 코앞은 차량 통행이 빈번한 도로인데다, 건너편은 경찰이 통행을 제한하는 주한일본대사관인 까닭에 공연한 의심을 받는 게 싫었다. 그 소녀의 시선이 궁금하긴 했지만, 그래서 지레짐작으로 만족했다. 굳이 가서 봐야 아나, 그들의 입처럼 굳게 닫힌 철문을 향하고 있겠지…. 1004번째 수요시위를 앞두고 용기를 냈다. 건너편으로 건너가자 전경의 경계하는 눈초리가 따가웠다. 소녀의 시선과 마주한 순간 움찔했다. 예상과 달리 정면을 주시(분노)하지도, 비스듬히 하늘을 향(원망)하지도 않았다. 가지런하게 맞댄 무릎, 그러쥔 손과 다문 입술, 그리고 코끝을 스치는 시선. 나를 움츠러들게 한 것은 단정하지만 범접할 수 없는 그 단호함과 침묵이었다. 한이라면 오열, 염원이라면 기도, 분노라면 절규가 내연하겠지만, 그 소녀는 그저 고요했다. 주변엔 분노와 절규와 원망이 웅웅거리며 맴돌았지만, 그 단호한 침묵은 블랙홀처럼 모두 빨아들였다. ‘우레 같았다’는 유마의 침묵. 성속, 진위, 유무, 생사, 너와 나 등 그 모든 분별을 넘어 진리로 들어서는 이치(불이법문)를 우레처럼 웅변했다는 그 침묵이 떠올랐다. 지난달 초 일본인 마쓰바라 마사루 씨는 <문화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시상대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김연아씨를 볼 때 문득 그들이 떠올랐다. 그들에게도 저렇게 빛나는 청춘이, 아름다운 꿈이 있었겠구나. 그러나 그 꿈을 한 번도 펼쳐보지 못하고….” 66~67년 전 남태평양 트루크 섬에서 군무원으로 일했던 그였으니, 그가 말하는 이들은 거기 위안소에 끌려온 열예닐곱 조선인 처녀들이었다. 처절하게 유린당한 소녀의 꿈은 평생 그를 떠나지 않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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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14일 오후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1000번째 정기 수요시위’가 열린 서울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에서 ‘평화의 비’를 만져 보고 있다. 이 비석은 120㎝의 소녀상과 빈 의자가 일본대사관을 마주 보게끔 설치됐다.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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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작은 침묵으로 저 뻔뻔한 일본 정부를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전전긍긍 떨게 한 소녀. 그들과 한통속으로 굴었던 이 정부를 변화시키고 움직이게 했던 소녀. 지금도 그의 침묵은 우레보다 더 큰 울림으로 두 나라 국민과 세계인의 가슴을 촉촉이 적시고, 이 세상 어느 누구의 꿈도 짓밟지 말라고 절규한다. 나의 영원한 올해의 인물이다. 그 얼굴에 미소가 햇살처럼 번지는 날은 과연 올까. 국가기관에 대한 테러 모의조차 룸살롱에서 하는, 저 변함없는 폭력과 부도덕 속에서 도대체 기대나 할 수 있을까. 곽병찬 논설위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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