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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병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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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병찬 칼럼] 광폭(狂暴) 행보
형무소로 아들의 납치살해범을 면회 가는 신애의 발걸음은 가볍다. 들꽃으로 작은 꽃다발까지 만들었다. 용서? 얼마나 아름다운 이름인가. 그러나 돌아나오는 신애는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되가져온 꽃다발은 팽개쳤다. “저는 이미 하나님에게서 용서를 받았습니다. 제 마음은 평화롭습니다.” 하나님에게 그럴 권리가 있나, 내 아들을 죽였는데 왜 하나님이 용서해? 이건 사기다. 어디에도 구원의 햇살은 없다. 집으로 돌아온 신애는 손목에 칼을 긋는다.(이청준 원작,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 배우 전도연에게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이 주어졌지만, 설정만을 보면 도저히 있을 법하지 않다. 신의 은총을 아무리 뒤집어썼다 해도 살인자가 죄 사함을 받았다고 능청 떠는 건 상식 밖이다. 소설과 영화를 살린 건 오로지 이청준의 치밀한 구성과 묘사, 영화 속 전도연의 뛰어난 연기뿐이라는 게 ‘벌레 이야기’ 혹은 ‘밀양’에 대한 소감이었다. 그 생각이 요즘 변했다. 그런 철면피한 현실은 바로 우리 옆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최근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와 만난 이명박 대통령은 이런 덕담을 건넸다. “광폭행보 하시느라 수고가 많습니다.” 딸랑이 언론들이 그런 표현을 썼을 때, 언젠 안 그랬나 하며 애써 무시했다. 그러나 대통령까지 나서서 ‘너그러운 가해자와 옹졸한 피해자’의 구도를 만드는 데는 참기 힘들었다. 아무리 권력이 좋다지만, 가해자가 피해자를 관용하고 피해자가 그 관용에 기대야 한다면, 그건 지옥이지 사람의 세상은 아니다. 그가 이 말을 할 때 염두에 둔 것은 전태일재단 방문 시도와 전태일 동상 헌화였을 것이다. 말로만 떠들며 피해자를 역시 옹졸한 자로 몰아버린, 쌍용차 희생자 분향소 방문이나 인혁당 유가족 면담 따위의 소문도 마찬가지다. 제 몸을 불살라 노예노동에 항거했던 전태일, 그 어머니를 한평생 사찰하고 연행하고 연금하고 투옥시킨 정권의 상속자가 바로 박 후보다. 한마디 사과도 반성도 없이, 불쑥 손을 내밀며 화해를 강요한 것은 피해자의 마지막 남은 자존감마저 짓밟는 일이었다. 거기에 대고 딸랑이들이 화해, 통합, 관용, 용서의 광폭행보라는 화관까지 씌운 것이다. 13대 대통령 선거 때 노태우 민정당 후보는 호남 첫 유세지를 광주로 정했다. 11월29일, 7년 전 그 학살의 거리에서 그는 흘러간 물로는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다며 화해와 통합을 외쳤다. 수백명을 학살하고 수천명을 투옥하고, 수만의 가족을 연좌로 묶어 사찰하고 밥그릇을 빼앗았던 신군부 2인자가 말이다. 어떤 넋 빠진 사람이 그걸 지켜보고 있을까. 결국 야유와 돌이 날았다. 당시 민정당이 동원한 건달들이 폭력사태를 유도했다는 주장도 있긴 하지만, 그날의 분노는 당연했다. 민정당은 그런 사태를 예상하고 있었다. 바로 전날 <동아일보>는 ‘대학생과 재야의 방해행위가 있더라도 이를 제압해 성공적으로 유세를 치르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왜 강행했을까. 의문은 바로 풀렸다. 김영삼과 갈렸던 영남 및 기득권 표가 결정적으로 결집하기 시작했다. 호남은 지역감정의 볼모로 몰렸고, 시민들은 다시 한번 폭도 혹은 분열세력으로 매도됐다. 광주 시민의 또다른 죽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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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찾은 박근혜…멱살잡힌 해고노동자=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가 28일 오전 서울 청계천 버들다리에 있는 전태일 동상에 꽃을 바치려는 순간 김정우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이 팻말을 든 채 동상 앞을 막아서고 있다. 쌍용차 해고노동자인 김 지부장이 ‘쌍용차 문제해결을 외면하며 전태일 정신을 말하는 것은 대국민사기극이다’라고 적힌 팻말을 든 채 동상 앞에 주저앉자 경호원이 멱살을 잡아 끌어내려 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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