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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0.20 09:38 수정 : 2014.10.21 10:18

이주란 소설 <달의 나이> ⓒ이현경



이주란 소설 <1화>



나는 늘 새벽이 문제다. 잠이 오지 않는 어떤 새벽이면 문득 S에 관한 생각이 나는 것이다. 생각이 많아져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그러는 것은 아니고 아, 잠이 안 오네, 하는 순간 갑자기 그렇게 되는 것이다. 내가 가끔 대학 동기에게 그런 새벽에 대해 이야길 하면 이상해하는 것 같다. 그것에는 나도 동의한다. S는 진짜 볼 수는 없는 사람이다. 나는 가끔 S가 보고 싶다. 물론 늘 그런 것은 아니고 대부분의 날에는 야한 생각이나 하다가 잠들곤 한다.

나는 매년 선미의 생일을 기억하지 못했다. 아예 모른 것은 아니었고 7일, 8일, 9일 중에 있다는 것은 알았다. 5일은 지나서인 것 같고 10일까지는 안 간다고 기억한 후 늘 그렇게만 기억했다. 나는 아마도 우리가 매년 서로의 생일을 축하할 정도로 친해지진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나는 매년 여름이 끝난 것 같으면 아, 이제 곧 선미 생일이구나, 하는 정도로 기억을 해서 9월 첫 주엔 꼭 연락을 해 만날 약속을 잡곤 했다.

올해엔 정말 확신을 하고 물었다.

7일이지?

야. 봄부터 얘기했잖아. 기억을 좀 해봐.

기억해서 연락한 거야.

내가 생일을 바꿀게.

화를 낸다.

추석 전날이잖아.

다음 날! 다음 날!

올해에도 나는 선미의 생일을 기억하지 못했다. 내가 선미에게 생일을 묻고 틀리고, 묻고 틀리고, 마지막에 정답을 말하고 나면 선미는 내게 말하곤 했다. 기억력이 딸리면 찍기라도 잘해야지.

우리는 추석 다음 날 만나기로 했다.

우리 외에 고향 친구들 일곱 명이 더 온다고 선미한테 전해 들었다.

추석 전날 고향으로 내려갔는데 달리 할 일이 없었다. 그날은 그냥 집에 있는 반찬으로 저녁을 먹고 일찍 잤다. 다음 날엔 엄마와 대형 마트에 갔다. 언니가 장을 보라고 카드를 주었는데 엄마는 그게 미안했는지 계속 물건들을 집었다가 놓았다.

그냥 사. 언니가 내는 거잖아.

아니야.

결제 문자가 갔는지 집에 돌아오자 언니가 말했다.

왜 이렇게 조금 샀어. 더 사지.

이거면 됐지 뭐.

엄마가 말했다. 언니가 카드를 받아가자 엄마가 어쩐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예상보다 덜 나온 만큼의 돈을 주었으면, 하고 바란 모양이었다. 나는 중간에서 장을 보는 데 보탤 돈도, 엄마에게 줄 용돈도 없다는 게 부끄러워 괜히 강아지에게 장난을 걸었다.




이주란(소설가)





이주란

1984년 경기도 김포에서 태어났다. 2012년 <세계의문학> 신인상에 단편소설 <선물>이 당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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