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란 소설 <4화>
나는 덥고 취한 채로 버스를 탔다. 강아지랑 산책을 하겠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이왕 마신 술이어서 누군가를 불러 한잔하다가 다시 친구를 만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가끔 보는 친구 두 명에게 연락을 했다. 그들은 모두 친척 집이라면서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대답했다.
누가 자꾸 쳐다보는 것 같아 뒤를 돌아보니 고교 동창 여자애가 대각선 뒤에 앉아 있었다. 나는 얼른 눈을 끔뻑거리면서 약간 바보 같은 표정을 짓고 자연스럽게 다시 고개를 돌렸다. 우리는 서로 반가워하지 않았고 그간의 시간에 대해 묻지 않았다. 말하자면 아는 척을 하지 않은 것이다. 만났지만 인사를 나누지 않은 것은 우리로서는 올바른 일이었다. 옆 차선을 달리는 트럭이 60번 버스를 들이박는다면 우리는 같은 해에 태어나 초․중․고를 함께 다닌 뒤 같은 해에 함께 죽었을 사이였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요즘 어디에서 일하느냐고 물어보면 대답해줄 수 있었는데. 나는 두 정거장 먼저 내려 집까지 걸어갔다.
일찍 왔네.
응.
어쩐 일이래?
나는 샤워를 하고 거실에 드러누웠다.
세수를 안 한 것 보니 다시 나갈 모양이군.
언니가 말했다.
나는 방에서 강아지랑 놀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전화를 받았을 때는 오후 9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선미인 줄 알았는데 낮술을 같이한 친구였다. 누군갈 만났느냐고 묻기에 조금 잤다고 대답했다.
선미는 연락 왔어?
아니.
그럼 일단 나와. 남자 친구 같이 왔어.
응.
나는 선미한테 연락을 해볼까 하다가 하지 않았다. 무언가 바쁜 일이 생겼겠지. 나는 양치를 다시 하고 화장을 고쳤다. 원피스의 허리 부분이 꽉 껴서 담이 올 것만 같았지만 어차피 다른 옷이 없었다. 언니와는 몸매 차이가 커서 옷을 같이 입기 힘들었다. 현관에 서서 거울을 봤더니 어쩐지 어깨며 가슴이 더 커 보였다. 많이 먹어서 그런가, 생각하면서 샌들을 신었다.
역시 다시 나가는군.
금방 올게.
천천히 와.
엘리베이터가 17층에 있기에 걸어 내려갔다. 내려왔는데 친구가 보이지 않아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휴대폰을 다시 봤다. 친구가 집을 물었을 때 내가 106동이라고 대답한 문자를 확인하고는 걷기 시작했다. 술이 덜 깼나. 106동은 예전에 살던 덴데.
106동 앞에 흰색 중형차가 서 있었고 나는 저건가 보다, 하고 뒷자리에 올라탔다.
안녕.
안녕하세요.
동갑이라며.
내 말에 친구와 친구의 남자 친구가 호탕하게 웃었다.
내 친구들 다 이래. 완전 쿨하지?
뒤에서 보니까 조수석에 앉아 있는 친구의 어깨가 어쩐지 한번 으쓱한 것 같았다. 나는 내 성격이 쿨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해 반박하고 싶었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그게 웃기려고 하는 말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다반사여서 가만히 있었다.
먹자골목은 우리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별다른 대화가 오가지 않았는데도 금세 도착했다. 도착은 금방 했지만 무엇을 먹을지, 어떤 술집에 갈지를 정하지 못해 차에서 내려서 골목만 세 바퀴를 돌았다. 어서 갈 곳을 정해야 했다. 그리고 그것을 정하는 것은 어쩐지 내 몫인 것만 같았다. 나는 피자와 소주를 파는 곳에 가자고 말했고 그들은 쉽게 동의했다.
피자랑 소주?
친구의 남자 친구가 되묻기에 지난 설에는 전집에도 갔었다고 말해주었다.
누구랑?
친구가 물었고,
형진이.
내가 대답했다.
못 살아.
아까 연락을 했을 때 거절한 친구였다. 친척 집에서 저녁을 먹고 연락하겠다고 하더니 10시까지 저녁을 먹는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늘 내가 먼저 연락하는 것 같아. 문득 그런 생각도 들었다.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