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란 소설 <5화>
친구가 얼큰한 것을 좋아해서 내가 해물 짬뽕탕을 주문했다.
이걸 먹은 다음에 피자를 먹는 거지.
왜 아냐.
친구의 남자 친구는 우리가 만담을 하듯이 대화를 하면서 쿵짝이 잘 맞아 보이는 게 좋았던 것 같다.
나는 외국에 8년 있다가 온 지 얼마 안 돼서 친구가 별로 없어.
친구의 남자 친구가 말했다.
나는 한국에서 쭉 살았는데도 그래.
내가 말하자 둘이 또다시 호탕하게 웃었다.
너희는 둘 다 웃음소리가 크구나. 그게 닮았네.
나는 부러웠다.
우리가 언제 만났었지?
몰라. 한 7, 8개월쯤 된 것 같은데.
친구와 나도 오랜만에 만난 사이였다. 그사이 친구는 독립을 하고 연애를 시작했고, 나는 대출을 받아 시작한 인터넷 쇼핑몰을 말아먹고 머리카락이나 기르며 지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몸의 털들이 계속 자라기에 그거나 기르자, 하고 생각해버린 것이다. 어느 정도 기르면 잘라버리던 것들을 이제는 소중하게 생각했다. 그러니까 그게 무엇이든지, 어쨌든 뭐라도 하면서 살아야만 했다. 사는 이유가 있어야 사는 것 같으니까.
소주를 세 병 마셨을 때 고등학교 때 좋아했던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저녁때 내가 만나자는 걸 거절한 두 명 중에 한 명이었다. 어쩐지 얹혔던 속이 내려가는 것 같았다. 술집 이름을 알려주고는 휴대폰을 봤는데 선미에게선 아직도 연락이 없었다.
그 오빠는 다시 안 만나지?
응.
잘했어. 왠지 느낌이 안 좋았어.
무슨 느낌?
설명하긴 어려운데 뒤가 구릴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어.
그러니까 그게 뭔데.
설명하긴 힘들다니까?
나는 사실 그 오빠를 다시 만나고 있었다. 다시 사귀는 것은 아니고…… 그냥 가끔…… 아니 자주 둘이서 술을 마시곤 하면서 지내는데…… 또 무슨 지적을 받을까 싶어서 아니라고 해버렸다.
5분도 안 돼서 그가 왔다. 그는 방송국 피디가 되고 싶어 했었고 지금은 소셜커머스 업체에서 홍보를 하고 있었다. 나는 가끔 혼자서 그걸 안타까워했는데 그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지난겨울 쇼핑몰을 오픈했을 때 나는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서 축하 인사를 받았었다. 다 빚인데 뭐, 하고 말했지만 어쨌든 사장님 소릴 들었던 것이다. 지금은 정말이지 빚만 남아 있는데도 용기가 있어 부럽다면서 치켜세우는 사람들이 많다. 낮술을 함께한 친구는 6년간 몸담았던 신문사를 그만두고 대기업 홍보팀에서 일하고 있었다. 친구와 그는 같은 전공을 한 데다 같은 일을 하고 있어서 대화가 잘 통했다. 자신들이 하는 일에 대한, 그러니까 자신들만 알 수 있는 얘기를 속 시원히 터놓고 할 수 있게 돼서 기분이 좋은 것 같았다. 술병이 쌓여가면서 목소리가 커졌고, 홍보! 접대! 하면서 그래도! 그래도 돈을 많이 벌고 일도 좋다는, 그런 얘길 계속했다. 친구의 남자 친구는 나와 잔을 부딪치면서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나는 짬뽕탕에 들어 있던 우동 사리가 위에서 불어가는 것을 느끼면서 아니지, 지금 똥을 쌀 순 없지, 토를 하기에도 아직 이르지, 하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그가 친구의 남자친구를 계속 칭찬하길래 그에게 접대가 생활화된 것 같다고 말했다가 두 배로 돌려받았다. 어쩐지 나는 그 핀잔을 받아치지 못했다. 종종 그를 만날 때마다 나는 마음 한구석이 조금 설레었는데 그는 아닌 것 같았다.
몇 시까지 놀 거야? 내일 차례 지내?
그가 모두에게 물었다.
아, 그러고 보니까 선미는?
친구가 내게 물었다.
그러게.
선미 왜?
오늘 생일이야.
그럼 전화해봐.
자기가 하겠지.
내가 말하자,
하여튼 싸가지 없기는.
그가 말했다. 그는 이미 내게 무안을 주면서 나를 제외한 모두를 웃기는 것으로 콘셉트를 잡은 것 같았다.
우리는 고교 시절 추억들을 안주 삼아 술을 마셨다. 친구의 남자 친구는 고국에서 남녀공학을 나온 여자 친구의 친구들이 하는 얘기가 재밌었는지,
이런 술자리라면 정말 좋다!
하고 그 자리를 후하게 평가해주었다. 그때 남자 셋이 술집으로 들어왔다. 친구와 같은 반이었고 그와도 친분이 있는, 나만 모르는 동창들이었다. 그들은 근처에 자리를 잡았고 우리 쪽으로 와 짧은 인사를 주고받았다. 나도 그 셋의 중간쯤, 말하자면 세계 병맥주들이 인테리어로 쌓여 있는 천장에 가까운 선반을 보면서 안녕, 하고 흘리듯이 말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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