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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0.28 09:09 수정 : 2014.10.28 09:09

이주란 소설 <7화>



홍대에서 구로는 멀지 않았다. 장례식장에는 S의 가족들과 고교 동창들 몇, 그리고 대학 동기들과 두세 명의 선배들이 있었다. 나는 영정사진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고 절을 하지 않았다. 우리들은 S의 고교 동창들이 모여 있는 자리로 가 앉았다. 그러니까…… 술을 안 마시자니 미치겠고 마시자니 어딘가 우스운 모습일 것 같아서 다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누군가 장례식장에서는 이렇게 행동해야 한다면서 유쾌한 발언들을 쏟아내기 시작했고 듣던 사람들은 몰래 소주를 갖다 마셨다. 그러다가 어떤 선배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근데 너 오늘 뭐야? 예쁘다?

친구 생일이라서 밖에 있다가 급하게 오느라고.

앞으로 그렇게 입고 다녀. 훨씬 낫다.

카디건이랑 치마가 예쁜 것 같아. 색도 튀고.

동기도 끼어들었다.

근데 저 가봐야 하는데……. 오늘 제일 친한 친구 생일이라서 홍대에서 술 마시고 있었거든요. 원래 저는 아웃백 싫어하는데 친구가 가자고 해서. 거기서 술 마시고 있는데 갑자기 문자 와서 급하게 이러고 온 거예요. 집이 김포니까 들렀다가 올 수도 없고.

나는 정말 화려했고 옷차림에 대한 해명을 계속했다.

지금은 그런 생각이 든다. 친구들에게 S에 대해 얘기하면서 맥주를 퍼마실 시간이면 집에 가서 옷을 갈아입을 시간이 충분했을 텐데. 나는 왜 그 옷차림으로 많은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갔을까……. 왜 굳이 아웃백에 있었다고 했지? 아마도 나는 선미의 생일과 집이 먼 편이라는 사실이 확실한 알리바이가 되어줄 거라는 걸 알았을 것이다. 사람이 죽어도 내 것을 포기하지 못하는 그런 쓰레기 같은.

몰래 마신 술 때문인지 내 목소리가 커지자 S의 부모님이 나를 쳐다본 것 같기도 했다. 늘 진행자 역할을 도맡았던 동기를 주축으로 우리 쪽에서 S의 고교 시절 그는 어떤 사람이었나를 물으면 대답이 들려왔고, 그러면 그쪽에서 그의 대학 시절 에피소드나 연애사를 물어왔다. 우리는 S의 별명이 마법사라고 말해주었고 왜냐는 질문에 순수한데 노인 같잖아요, 라고 늘 그를 무시하던 동기가 대답했다. 순수한데 노인 같다는 게 뭐냐는 질문에는 대답하지 못했다. S는 그냥 마법사 같았던 것이다.

영원히 살 것 같았는데.

밖으로 나와 담배를 피우면서 대학 동기가 말했다. 나는 혹시 이 모습을 S의 부모님이 볼까 봐 더 구석으로 움직였다. 다시 안으로 들어왔을 때 S의 가족들은 울고 있었다.

술에 취해 홍대 앞에서 놀고 있던 친구들이 내가 늦어지자 자꾸만 연락을 해왔다. 11시가 다가왔을 때 다들 일어나는 분위기여서 나도 함께 일어났다. S의 고교 동창들은 밤을 새우겠다고 말했다.

아, 예.

선배 하나가 건성으로 대답했다. 검은 뿔테 안경을 쓴 S의 고교 동창생이 우리에게 말했다. 그 사람들이 마지막엔 종이랑 펜을 뺏었다고 하더라고요.

나는 택시를 타고 홍대입구역으로 가면서 선미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 홍대 아냐, 거기 아냐.

그럼?

아이, 큰일 날 뻔했네. 멀리 갈 뻔했네.

어딘데.

동교동. 동교동.

멀리도 가셨네.

빨리 와. 군만두 지금 나왔어.

아직도 술이야?

이미 노래방까지 갔다 왔거든.

친구들은 중국요리 주점에 있었다. 내가 술을 마시면서 시작한 장례식장 이야기가 길어지자 누군가 그만하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S의 장례식장에서 고교 동창들에게 말하지 못한 S에 대한 모든 것을 오래 떠들었다. 그리고 덧붙였다. 그 선배가 자꾸 예쁘다고 해서 민망해 죽는 줄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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