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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단체 및 인권단체 활동가들로 꾸려진 ‘성소수자 차별 반대 무지개 행동’과 ‘무지개 농성단’이 7일 오후 서울시청 1층 로비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서울시민 인권헌장 선포를 촉구하고 있다. 이들은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발언과 관련해 박원순 시장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이곳에서 이틀째 점거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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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the) 친절한 기자들]
서울시의 서울시민인권헌장 공표 거부와
박원순 시장 “동성애 지지할 수 없다” 발언 후
성소수자를 둘러싼 논쟁의 사실관계 재정리
동성애와 성소수자를 둘러싼 논쟁이 뜨겁습니다. 서울시가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 금지’ 조항이 포함된 서울시민 인권헌장 공표를 거부하고, 박원순 서울시장이 “동성애를 지지할 수 없다”고 발언한 사실이 대변인을 통해 확인(▶관련 기사 : 박원순 서울시장 “동성애 지지할 수 없다”)되면서 확산한 논쟁입니다. 성소수자 단체들은 지난 6일부터 서울시청 1층을 점거하고 사흘째 농성중입니다.
탑게이 홍석천 씨가 활발하게 방송활동을 하고 있고, 김조광수 감독과 김승환 씨가 공개 동성 결혼식을 했으며, 국가인권위법 제2조 3항에 버젓이 ‘성적 지향 등을 이유로 한 차별 행위가 평등권 침해’(관련 링크 : http://bit.ly/1w3Q2OV)라고 규정되어 있는 2014년 한국 사회에서 이런 파문이 일어날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습니다. 그것도 인권 변호사 출신의 박원순 시장이 서울시정부의 수장인 사회에서 말이죠. 곳곳에서 뜨겁게 일고 있는 논쟁과 관련해 사실 관계를 다시 정리해야겠다 싶어진 이유입니다.
박원순 시장의 발언 이후 SNS에는 다양한 견해가 쏟아져 나왔는데요. 박 시장의 “동성애를 지지할 수 없다” 발언이 왜 문제냐는 의견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박원순 시장이 개인적으로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을 자유가 있는 것 아닌가”, “그렇게 치면 이 세상 사람 모두가 동성애를 지지해야 한다는 것도 인권 유린이다”, “개인은 다양한 이슈에 다양한 정치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 특정 이슈에 대해 진보라면 다른 이슈도 진보여야 한다는 전제 자체가 인간에 대한 통찰 부족과 개인의 다면성을 거부하는 전체주의 발상”이라는 의견 등이 있었습니다.
한 인간의 성적 지향은 선천적인 요인과 후천적인 요인이 합쳐져 하나의 지향을 이루게 됩니다. ‘성적 지향’이란 다른 사람에 대한 감정적, 정서적, 또는 성적 이끌림을 기술할 때 쓰는 개념입니다. 동성애가 됐든 이성애가 됐든 양성애가 됐든 성적 지향은 인간의 선천적인 성 정체성의 일환이지만, 한 개인이 ‘만족스럽고 충분히 낭만적인 관계를 찾을 수 있는 집단’ 속에서 나타나는 관계의 결과이기도 합니다.⑴ 그러니 한 인간의 성적 지향은 누가 지지하거나 지지하지 않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지지한다고 해서 성적 지향이 더 확대되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이 지지하지 않는다고 해서 성적 지향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런 비유가 정확할지 모르겠지만, 왼손잡이가 비슷한 사례입니다. 왼손잡이는 타고나는 성향이지만, 오른손잡이로 태어난 LA 다저스 류현진 선수가 삶의 과정에서 필요에 의해 왼손잡이가 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왼손잡이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던 20세기 중반의 한국 사회에선 왼손잡이 아이가 태어나면 억지로 오른손잡이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아이가 왼손잡이라는 사실이 바뀔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강요에 의해 왼손잡이라는 사실을 숨길 수는 있겠지만 말이죠. 이때 다른 사람이 “나는 니가 왼손잡이인 걸 지지할 수 없다”는 말이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다시 “동성애를 지지할 수 없다”는 말로 돌아와, “나는 이성애를 지지할 수 없다”는 말이 과연 성립할 수 있는가를 되물어보는 건 어떨까요. 이 말이 성립할 수 없다면, 앞의 “동성애를 지지할 수 없다”는 말도 성립할 수 없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인권 변호사 출신인 박원순 시장이 이런 사실을 몰랐거나 아니면 정치적으로 민감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그런 사실을 외면하고 “동성애를 지지할 수 없다”고 발언했다면 반인권적이라는 지적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성 소수자의 ‘소수성’이 단순히 “물리적 숫자가 적은 이들”이기 때문에 서울시민 인권헌장의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금지’ 조항 삽입에 반대표를 던진 17명의 시민위원(찬성표는 60명이었습니다)이 “상대적인 소수자 아니냐. 찬성이 다수라고 해서 표결을 강행한 것은 민주주의의 폭력”이라고 반론하는 분도 계셨습니다.
이 역시 소수자의 ‘소수자성’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입니다. 숫자가 적다고 해서 무조건 ‘소수자’가 되는 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소수자란 “육체적 문화적 특질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불평등한 차별대우를 받아 집단적 차별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집단을 소수자로 명명하는 것은 이들에 대한 구조적 차별이 현존함을 밝히는 행위”로 이는 단순히 숫자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구조적 권력관계에 의해 억압받고 있다는 사실에 기인합니다. 여성, 흑인, 동남아시아 출신 이주노동자, 동성애자 등이 대표적인 소수자인 건 구조적 권력관계가 이들을 억압하기 때문입니다.⑵
특히 성소수자의 ‘소수’란 수적 ‘다수’보다는 ‘정상’의 대립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소수자는 “‘정상적인’ 성관계라고 생각되는 성적 지향과는 다른 성적 지향을 가진 집단으로서 이로 인해 사회적으로 구별되고 차별받는다”는 것을 드러내는 이름입니다. 그러니 여기서 소수성은 사회가 ‘정상’과 ‘비정상’으로 구분한 권력관계의 구조 속에서 함께 논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니 “인류의 절반이나 차지하는 여성이 왜 소수자냐”와 같은 의견의 오류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소수자성에 내재한 권력 개념을 이야기한 것은, 위에서 예로 든 “박원순 시장이 개인적으로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을 자유가 있는 것 아닌가”, “그렇게 치면 이 세상 사람 모두가 동성애를 지지해야 한다는 것도 인권 유린이다”라는 반응에 대한 반론을 펴기 위함입니다. 광범위한 표현의 자유를 펼쳐두고 한 개인에게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을 자유’를 보장하라는 의견은 사상의 자유시장을 보장하라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시장에도 사회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와 규제가 필요한 것처럼, 사상의 시장도 제도와 규제가 필요합니다. 사상의 시장에 진입조차 할 수 없었던 ‘사상의 사회적 약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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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단체가 박원순 서울시장과의 면담을 요청하며 6일 오전 서울시청 점거 농성에 들어갔다. 박승화 한겨레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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