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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삼산경찰서가 공개한 부평구의 한 어린이집에서 벌어진 보육교사의 어린이 폭행 장면. 인천지방경찰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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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The) 친절한 기자들]
당연히 통과될 것으로 예상했는데 부결…
반대한 의원 보다 기권한 의원이 더 많아
CCTV가 해결책일까? 근본적 방법 찾아야
“당장 반대한 국회의원들을 낙선운동 하겠다.”
‘어린이집 CCTV 설치 의무화’ 내용을 담은 법안(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이 부결되자 엄마들은 들끓었습니다. 인천 송도의 한 어린이집에서 여자아이의 뺨을 내리치던 교사의 영상이 아직도 생생했습니다. 여론에 힘입어 무난하게 본회의에서 통과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찬성 83표로 의결 당시 출석인원(171명)의 과반수인 86표에 미치지 못한 겁니다. 반대한 의원(42명)보다도 기권한 국회의원(46명)들이 많았습니다.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국회의원들(124명)은 더 많았습니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요. 법안이 부결된 지난 3일을 전후한 모든 맥락을 총정리해봤습니다.
■ 모두가 통과될 줄 알았던 법안
CCTV 설치를 규정한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은 지난 1월 일찌감치 여야가 본회의 상정에 합의한 사안이었습니다. 여야 어느 한쪽이 반대하는 사안이 아니었다는 얘기입니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1월초 당정협의를 열어 어린이집 CCTV 설치안을 내놨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도 1월22일 동의하는 당론을 냈습니다. 여야 의원들이 법을 검토한 끝에 상임위를 통과했기에, 본회의에서도 무난한 통과가 예상됐습니다.
막상 3월3일 열린 본회의에서 법안이 부결되자 가장 당황한 것도 의원들이었다고 합니다. 사죄는 여야를 가리지 않았습니다. 3일 본회의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오후 7시45분 박완주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변인이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여야가 합의하고 보건복지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가결된 법률안이 부결되어 유감스럽다”며 재입법을 약속했습니다. 신의진 새누리당 의원은 4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어 법안 부결에 대해 책임지고 아동특위 간사를 사퇴한다고 밝혔습니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학부모를 실망시켜드려 죄송하다”고 사과했습니다.
KBS는 “‘CCTV법’ 반대표 던진 의원들은 누구?…여당<야당”(새누리당 10표, 새정치민주연합 28표)이라는 보도를 내보내며 야권의 책임을 따지기도 했습니다. “민간어린이집연합회 등 어린이집 원장들의 조직적인 로비에 국회의원들이 넘어갔다”는 보도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민간어린이집연합회 등 이익단체들만큼이나 여론과 학부모단체 등이 좌우하는 ‘표심’에도 의원들이 민감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합당한 이유로 보이진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개정안이 당연히 통과될 것으로 믿었기 때문에 의원들이 하나같이 ‘나 하나쯤이야’하고 방심한 것이 부결된 이유라는 평이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아예 표결조차 불참해 버린 의원은 새누리당 74명, 새정치민주연합 48명이었습니다.
이날 본회의에서 영유아개정법안에 앞서 논의된 법안이 있었습니다. 국회의원을 포함해 공직자가 부정 청탁을 받기 어렵도록 하는 소위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안)입니다. 통과 직전부터 초미의 관심사였습니다. 만약 반대했다가는 ‘공공의 적’이 되는 분위기였습니다. 274명이 투표에 참여한 가운데 이 법이 통과(반대 4표, 기권 17표)되자 의원들이 점차 자리를 뜨기 시작했습니다. 본회의 표결 때 의원들이 자리를 뜨는 것은 낯선 일은 아닙니다. 연말에 법안 처리 과정이 밀려 있을 때면 7시간이 넘는 장시간 표결이 이어지기도 합니다. 의원들은 본회의 중간에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 표결에 참여하기도 합니다.
영유아보육법은 이날 논의된 79개의 법안 가운데 76번 법안이었습니다. 거의 본회의 마무리 때 논의된 셈입니다. 71번이었던 김영란법은 이날 오후 3시 본회의가 시작된 뒤 표결 순서가 앞당겨져 오후 5시15분께 처리됐습니다. 하지만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은 순서대로 하다보니 오후 7시께가 되어서야 논의됐습니다. 71번에서 76번으로 가는데 2시간 정도 걸린 셈입니다.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이 논의될 때까지 10여차례 이상의 표결(일괄투표 포함)이 있었습니다. 점점 의원들이 자리를 떴습니다. 끝까지 남아 영유아보육법 개정안 표결에 참여한 것은 171명이었으니, 100여명이 자리를 비운 셈입니다. 다른 일정이 있었을 수도 있고, 긴 본회의에 지쳤을 수도 있습니다. 섣불리 찬성이나 반대, 기권으로 이름을 올리기보다 불참을 택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 본회의 길어지고… 바뀐 개정안 모르고…
남아 있던 의원들이 바뀐 법안 개정안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법안 발의 초기 인터넷으로 실시간 전송돼 스마트폰에서도 볼 수 있는 ‘네트워크 카메라’가 주로 거론됐습니다. 하지만 거부감을 갖는 의원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네트워크 카메라 조항은 본회의 직전 열린 법사위 검토 과정에서 삭제됐습니다. 국회 보건복지위 소속의 한 의원실 보좌관은 “논의된 개정안에는 네트워크 TV가 아닌 폐쇄회로 CCTV로 바꿔 정보유출 피해 우려를 최소화했다. 보육교사의 처우를 개선하는 내용도 일부 포함돼 있었는데, 의원들이 내용을 잘 몰랐던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신의진 새누리당 의원도 “CCTV 법안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고 나머지 중요한 안전 대책이 많았는데 안타깝다”고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밝혔습니다.
막상 부결되자 심지어 표결에 앞서 ‘반대 토론’을 펼친 정진후 정의당 의원조차 당황했다는 후문입니다. 국회 관계자에 의하면 “찬성 여론이 높아 당연히 통과될 것으로 보고 우려해서 반대 의견을 피력했던 것인데 막상 부결되자 놀란 듯 보였다”고 전했습니다. 11일 심상정 정의당 원내대표는 “법안 반대 입장을 낸 것은 (아동학대에 대한) 절박한 심정을 가볍게 여겨서가 아니라 근본적인 대책을 촉구하기 위한 취지였다”며 “4월 개정안에는 보육교사 1인당 아동 수 제한 등 근본적 해법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 CCTV 반대하면 ‘공공의 적’
지난 10년간 4번이나 CCTV 설치 법안이 국회에 발의됐습니다. 발의자는 여야를 가리지 않았습니다. 우윤근 원내대표(새정치민주연합), 안민석 의원(새정치민주연합), 박인숙 의원(새누리당), 홍지만 의원(새누리당) 등이 과거 비슷한 안을 내놨습니다.
가장 먼저는 2005년 우윤근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현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이 ‘국공립 어린이집에 CCTV를 의무화하는’ 내용을 핵심 골자로 하는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을 냈습니다. 예산소요는 당시 26억8800만원이었습니다. 하지만 보육교사들과 아이들의 자기정보통제권을 위협하고, 감시장치로 악용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일며 무산됐습니다. 반대는 여야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2013년 박인숙 새누리당 의원이 의무화 법안을 제기했을 때도, 같은 당의 신경림 의원과 김희국 의원이 보육교사의 인권과 부작용을 우려했습니다.
올초 폭행 사건이 터지고 정부의 관리감독 책임이 불거졌습니다. 정부는 황급히 ‘CCTV 의무화’를 해결책으로 제시했습니다. CCTV에 반대하면 ‘공공의 적’이 되는 분위기가 조성됐습니다. 폭행 사건이 터졌을 때부터 ‘CCTV 도입’을 해결책으로 제시했던 <조선일보>는 2년 전 비슷한 법안 논의 과정에서 CCTV 100% 의무화에 반대했던 의원들을 겨냥한 보도를 여러 차례 내보냈습니다. <조선비즈>는 2013년 유사안 발의 당시 반대했었던 의원들을 각각 “이화여대 간호학과 출신”(신경림 새누리당 의원), “한국여성단체연합 대표”(남인순 새정치연합 의원), “민주화 운동을 했다”(김성주 새정치연합 의원)고 쓰며 비판했습니다.
항의가 쏟아지면서 신경림 새누리당 의원은 공식 해명 보도자료까지 냈습니다. “CCTV 필요성엔 공감하지만 CCTV를 설치하고도 아동학대 문제가 일어나는 만큼 보육교사의 인성과 자질 검증, 아동학대 예방교육, 보육교사의 처우와 보육환경의 개선 등 본질적인 접근을 해야한다”고 반대한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채널A, TV조선 등 종편에 ‘반대론자’로 단골로 이름이 오르내렸던 남인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도 ‘보육 환경 개선이 먼저’라는 입장이었습니다. 하지만 ‘CCTV 설치를 반대하는 것 아니냐’는 시비가 이어지자 22일 기자회견을 열어 찬성 의견을 공개적으로 밝혔습니다. 법안에 보육교사의 처우 개선책을 함께 담는 전략으로 돌아섰습니다. 그래서 2월24일 보건복지 상임위에서 확정된 개정안 안에는 CCTV 의무화 말고도, 보조교사를 둘 것을 의무화하는 내용이 추가됐습니다.
이런 전례가 있으니 다른 반대하는 의원들도 몸을 사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공중파에서 어린이집 CCTV 설치 의무화 법안을 반대하는 국회의원을 인터뷰 할 때는 모자이크 처리에 음성변조를 해야 했을 정도였습니다. 조선일보가 지목한 세 사람은 모두 본회의에서 이번 영유아보호법개정안에 찬성표를 던졌습니다.
■ CCTV 반대하면 어린이집 원장 편?
‘CCTV 설치 의무화’를 반대하는 쪽에서는 무엇보다 정부가 CCTV만 설치하면 다 해결될 것처럼 정국을 몰아가고 있다는 점을 꼽습니다. 근본적인 원인으로 꼽히는 보육교사의 열악한 근무 환경 해결과 국공립 어린이집 확대 과제는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사건이 발생한 인천 송도의 어린이집은 보건복지부의 평가인증을 우수한 점수로 통과했고 CCTV도 설치돼 있던 어린이집이었습니다. CCTV는 아동학대 예방책이라기보다는 사후 처벌 근거에 가깝습니다. 처벌만 있고 보육환경 개선은 없다면, 보육교사들의 사기는 저하되고 오히려 갈등이 늘어날 수 있습니다. ‘밭 매준 공은 있어도 애 봐준 공은 없다’는 속담처럼, 보육은 단일한 기준으로 성과를 평가받는 ‘업무’와는 다릅니다. 완벽한 답이나 ‘정석’도 없고, 가정마다는 물론 한 가정 내에서도 양육자간 보육 방식이 제각각이라 갈등을 빚기도 합니다. 어린이집 학대 고발이 줄을 이었던 지난 1월말, 경남 창원에서는 말을 듣지 않는 26개월 아이를 11차례에 걸쳐 구석에 따로 앉혀놨던 보육교사가 불구속 입건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스마트폰에서도 바로 아이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지켜볼 수 있어 편리한 CCTV(‘네트워크 카메라’)의 경우, 보육교사 뿐 아니라 아이들의 사생활이 노출될 위험도 큽니다. 지난해엔 어린이집에서 엄마들을 위해 공개하는 사진들을 특정한 의도로 모아둔 ‘수상한’ 카페 (▶관련 글 : 어린이집 개인정보 무방비 노출 )가 적발되기도 했습니다. 디지털에 한번 확산된 개인정보는 유포도 빠르거니와 완벽한 삭제도 어렵습니다. 내 아이의 얼굴과 행동 패턴이 다른 엄마는 물론, 알 수 없는 누군가에게 유출될 위험은 늘 존재합니다.
하지만 이런 우려의 목소리들은 대체로 ‘CCTV 의무화 여론’을 거스르지 못했습니다. CCTV 의무화가 유일한 대안도 해결책도 될 수는 없지만 나름의 존재 이유는 분명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말 못하는 아이, 믿지 못할 어린이집에 지칠대로 지쳐있던 엄마들은 ‘그나마 CCTV라도 있었기에 나중에라도 밝혀지는 것 아니냐’는 의견입니다.
보육교사의 기본권이 침해될 수는 있겠으나, 자기 방어가 불가능한 0~5살 아이들의 인권이 더욱 보호해야 할 권리라는 주장입니다. 또 이미 CCTV를 설치한 환경에서 일하는 편의점 근로나 경비원 업무 등의 경우도 존재하기 때문에 굳이 보육교사들이 CCTV와 함께 일하지 못할 이유가 뭐냐는 반론도 나옵니다.
CCTV가 반드시 교사에게 나쁘게 작용하는 것만도 아닙니다. 오히려 안전사고 책임 논란에서 시시비비를 명확히 가려낼 수도 있습니다. <중앙일보>에 따르면, 전국보육교사총연합회에서는 이번 개정안을 지지했다고 합니다. 원장이 교사 겸직을 하면서 자기는 아이들을 돌보지 않고 다른 교사들에게 아이들을 나눠 맡기는 등 부정을 저지르는 경우가 많은데, CCTV를 통해 그런 부분이 투명하게 드러나 고쳐질 것이라고 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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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 CCTV. 연합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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