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AS] 무릎을 치며 보는 ‘정윤회 파문’ 그때 그 사건들
최순실·박근혜 게이트 관련 보도가 쏟아지면서 특종이 특종을 묻어버리는 나날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티브이(TV)조선>이 입수해 지난 10일부터 공개 중인 <김영한 비망록>은, 청와대가 권력을 남용해 2014년의 ‘비선실세 국정농단 의혹’을 억누르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물증’입니다. 2년 전 ‘한 눈에 보는 정윤회 파문 총정리’를 선보였던 <한겨레>는 ‘김영한 비망록’ 국면을 계기로 다시 한 번 그 때 그 사건을 다뤘던 보도들과 최근 주요 보도의 갈피를 AS해 드립니다. ‘최순실’이라는 퍼즐조각이 맞춰진 지금, 과거 보도들이 쏙쏙 이해되는 ‘쾌감’을 느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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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회씨가 2015년 1월19일 낮 서울 서초동 서울지방법원에서 일본 산케이신문의 박근혜 대통령 세월호 참사 당일 행적 의혹 보도와 관련한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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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한 전 수석은 2014년 6월부터 2015년 1월까지 청와대 민정수석을 역임했습니다. 수석직을 내려놓은지 반 년 여 뒤인 2015년 8월21일, 간암이 원인이 돼 갑작스레 사망했습니다. “청와대 민정수석 당시 받은 극도의 스트레스 때문에 원래 있던 간염이 간암으로 발병했다”고 주변에서 수군거렸습니다.(▶유승민 “김영한 사표 던진 날 밤 함께 통음”) 청와대를 나온 뒤 그는 거의 매일 밤 괴로워하며 술을 마셨다고 합니다. (▶유승민 “내 친구 김영한 사망, 항명 표현에 속상해했다”)
■ 김영한은 누구? “공안검사 출신이 항명 스캔들”
뭐가 그렇게 괴로웠을까요? 김 전 수석은 사상 초유의 ‘청와대 항명 파동’ 주인공이었습니다. 김 전 수석의 상사가 바로 박근혜 정부에서 ‘왕실장’이라고 불린 김기춘 비서실장(2013년 8월~ 2015년 2월)입니다. 청와대 비서실 산하 9개 수석실 중에서도 민정수석실은 막중한 자리로 꼽힙니다. (▶관련기사 보기 : 하루새 뒤집어진 민정비서관…실세들 파워게임? ) 주요 국정을 조정하고, 민심 동향을 파악하며, 인사에서 고위공직자를 검증하는 일, 검찰 관련 업무나 사정 업무를 총괄하기 때문입니다. 특별감찰관실이 생기기 전엔 민감한 대통령 친인척 비리 문제도 민정수석실이 챙겼습니다. 그래서 이전 정권에서도 민정수석은 대통령과 가까운 인물이 맡았습니다.
그런데 김 전 수석은 2015년 1월9일, 여야가 합의하고 직속상관인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지시한 국회 운영위원회 출석을 거부했습니다. 당시 김기춘 비서실장이 출석해 “출석하도록 지시했는데도 할 수 없다는 취지의 행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김 전 수석은 운영위에 출석할 바에는 차라리 사표를 내겠다고 버텼습니다.
국회 운영위에서 김 전 수석이 질문받을 주제가 바로 2014년 말 ‘비선 실세(정윤회)의 국정 개입 의혹’이었습니다. 당시 청와대는 비선 실세의 존재를 부정하고,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으로 프레임을 짜 문건을 유출한 사람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며 위기를 넘긴 바 있습니다. 이 흐름을 주도한 것이 바로 민정수석실 산하의 민정비서관실이었습니다.
■ ‘정윤회 국정 개입 의혹’ 수습하던 김영한이 왜?
지금 다시 살펴보는 ‘정윤회 게이트’는 새삼 다르게 읽힙니다. 파문은 2014년 11월28일치 <세계일보>가 ‘정윤회씨가 김기춘 비서실장의 경질 등을 꾀하는 등 국정에 개입하는 실세’라는 내용을 담은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문건을 입수했다고 보도한 데서 시작됐습니다.
▶자세한 정윤회 파문을 보려면 : 한 눈에 보는 정윤회 파문 총정리 1탄
최순실씨의 존재가 확실히 드러난 지금, 과거 보도됐던 정윤회 파문과 그 대응을 돌아보면 비선 라인 내부의 치열한 갈등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정윤회씨의 애매모호하고 모순되는 대응이 특히 그렇습니다.
정씨는 문건 파문 이후 인터뷰에서 “나는 사실상 ‘잘린 것’이다” “대통령으로 모시고 싶던 꿈이 지금은 멀어졌다”(▶[중앙시평] “나는 떳떳하니 모든 걸 조사하라”)고 했습니다. 정씨는 청와대의 ‘정윤회 문건’이 작성(2014년 1월6일)된 지 두 달이 지난 때이자, <시사저널>이 ‘정윤회가 박지만 미행을 지시했다는 의혹’을 보도(2014년 3월22일)한 직후인 2014년 3월27일 최순실씨(2014년 2월 최서원으로 개명)와의 이혼 조정에 들어갑니다. (▶관련 보도 보기 : 정윤회 “언론으로부터 아내 지키려 이혼”) 그해 5월 이혼이 확정됐고 7월 언론에 이혼 사실이 공개됐습니다. 7년간 야인으로 살며 “아내가 강남에 빌딩을 가지고 있다. 아내의 수입으로 생활한다”고 했는데, 이미 이혼한 전 아내의 재산을 거론하며 생계수단이라고 한 것은 의구심을 자아내는 대목입니다. 또 7년간 문고리 3인방이 “연락이 없어 섭섭하다”고 했지만 최근까지 이재만 비서관과 전화통화를 했다는 정황이 곧바로 드러났습니다.
정씨와 친분이 깊고 세월호 사고가 났던 2014년 4월16일 함께 있었던 역술인 이씨는 2014년 10월31일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정씨는 조용한 성격으로 명석하고 치밀하다. 십수년간 박 대통령에 대한 충정이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가 보좌하던 시절엔 박 대통령이 실수한 적이 없었다. 그를 비선 의혹을 받게 할 것이 아니라 차라리 대통령 비서실장을 시키면 지금보다 훨씬 잘 할거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혼 뒤인 2014년 8월3일 일본 산케이신문 지국장의 ‘사라진 7시간’ 보도 사건에 연루되고, 2014년 11월 말엔 <세계일보>의 ‘정윤회 문건’ 파문을 겪으면서 언론 등을 통해 “나는 야인”이지만 “박 대통령에 대한 충정은 변치 않았다”고 호소했던 정씨의 심리는 무엇이었을까 돌아보게 됩니다. (▶관련 최근 기사 보기 : 정윤회 문건 십상시 모임, 최순실이 실제 주최?)
■ “최순실이 진짜 실세” 하지만 증거가 없었다
당시도 최순실씨가 진짜 실세라고 지목하는 국내 언론 보도들이 나왔으나, 최씨가 공적인 직책을 맡은 적 없고 이렇다 할 물증도 없어 수그러들고 말았습니다. 대통령이 강하게 부인하고 나선 까닭도 있습니다. (▶박 대통령 “정윤회·박지만 갈등설 말 안 돼…실세는 靑진돗개”)
최근 불거진 ‘비선 논란’의 핵심인 정윤회(59)씨와 함께 정씨의 전처 최순실(58·최서원으로 개명)씨의 역할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 최순실씨는 박 대통령이 국회의원이 되기 전인 1990년 육영재단 이사장 시절 ‘박근혜 이사장의 측근’으로 정윤회씨보다 먼저 등장한다. (…) 이를 종합하면, 정윤회씨가 박 대통령과 연결된 것도 최순실씨의 남편이라는 점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한겨레, 2014년 12월4일치, “정윤회 전처 최순실, 10·26 이후 박 대통령 ‘말벗’”)
정윤회 관계보다 더 주목해봐야 하는 것이 박 대통령과 부인 최씨의 관계라는 것이다. 딸 승마와 관련, 박 대통령이 직접 문화체육관광부 실무자를 문책한 것에 전 부인이 관련된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정씨는 “내가 관여했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고 (최씨가 관련되었는지 여부는)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대통령의 패션에 최씨가 관여되어 있다”는 ‘풍문’이 관련 업계에 광범위하게 유포되어 있는 것은 확인된다. 한 인사의 전언.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최순실을 아는 주변에서 ‘어떻게 자신이 입고 다녔던 것과 똑같이 옷을 만들어 주느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단적으로 ‘저도의 추억’ 사진 때 입고 나온 옷과 목 칼라까지 똑같은 옷을 (최순실이) 전에 입고 다녔다는 것이다. 정윤회씨와 그런 남녀 사이라면 왜 그 전 부인과 박 대통령이 옷을 똑같이 입느냐, ‘박 대통령이 (최씨의) 아바타냐’라는 말이 나왔다.” (경향신문, 2014년 12월6일, 정윤회·최순실 실세설…아니 땐 굴뚝의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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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2015년 1월28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 극장에서 ‘문화가 있는 날’ 행사의 하나로 영화 <국제시장>을 관람하기에 앞서 주연배우 황정민(맨 오른쪽)씨가 휴대전화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 무렵 박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당일 행적 의혹 보도와 관련해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이 검찰에 소환(2015년 1월19일)됐다. 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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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가 보도한 ‘정윤회 문건’.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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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런 이유 외에 다른 말도 나오고 있다. 우선 김기춘 비서실장과의 불화설이다. 주요 업무에서 그가 배제됐다는 얘기가 여권 주변에선 나오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을 보좌하는 방식에 대해 김 실장과 이견(異見)이 있었던 것 같다”고도 했다. 또 김 수석은 ‘정치적 거래에 이용당할 수 없다'는 생각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여야가 정호성 제1부속·안봉근 제2부속 비서관 등 이른바 ‘핵심 비서관’을 출석시키지 않는 대신, 김 수석 출석에 합의한 것에 기분이 상했다는 것이다. (조선일보, 1월10일)
대표적인 게 검찰 수뇌부와의 소통 문제다. 박근혜 정부 들어 검찰에 대한 협조 요청 사항이 많았는데, 김기춘 실장이 보기에 김 수석이 성에 차지 않게 일을 한 것이다. 검찰 관계자도 “김영한 수석이 검찰총장과 가끔씩 통화를 하나 부담을 주는 언행은 되도록 피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김기춘 실장이 검찰 수뇌부에 직접 전화를 걸어 업무를 지시하는 장면이 목격되기도 했다. (…) 김 수석이 보고서를 들고 대통령 집무실을 찾아가도 문고리 3인방으로부터 “보고서만 거기에 놓고 가세요”라는 말을 듣고는 해 좌절감을 많이 느낀 것으로 알고 있다는 게 한 지인의 전언이다. 그러다보니 김영한 수석으로서는 자신이 책임지지 못할 말을 해야 하는 국회에 출석하는 게 참기 어려웠을 수 있다. 특히 자살을 한 최 경위 문제에 대해서는 김 수석이 일체 아는 게 없는데 청와대와 문고리 3인방을 방어해야 한다는 게 자존심상 허락하지 않았을 수 있었다. (한겨레, 2015년 1월11일, ‘항명 파동’ 김영한 수석이 사표 던진 진짜 이유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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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9월24일 당시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이 청와대에서 열린 장·차관 워크숍에서 신발을 벗고 의자에 다리를 올린 채 박근혜 대통령의 모두발언을 듣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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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ㄴ씨를 인사 조치하라”고 지시했던 ‘대통령 측근’은 누구일까. 이에 대해 여권 인사는 그가 누구인지 실명을 밝히진 않았다. 다만 “ㄴ씨를 청와대에서 내보내라고 지시한 ‘대통령의 측근’은 정윤회씨와도 오래 전부터 가까운 사이다”라고만 언급했다. 이 인사는 “ㄴ씨가 박 회장 미행 사건에 대해 내사를 벌이자 이를 중단시키기 위해 ㄴ씨를 인사 조치했던 것으로 보인다. 내사를 통해 자칫 정씨가 곤경에 처할 수도 있다고 판단한 ‘대통령 측근’이 내사를 중단시켰던 것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시사저널, 2014년3월22일, ‘박지만 “정윤회가 날 미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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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2016년 6월2일(파리 현지시각) ‘K브랜드’ 홍보 행사에서 샤이니 민호(오른쪽)와 함께 붕어빵을 시식하고 있다. 이 행사는 CJ그룹이 한류 확산과 산업화 지원을 위해 매년 미국·일본 등지에서 개최하는 컨벤션 및 콘서트로, 한불 수교 130주년을 기념해 유럽에서는 처음으로 파리에서 개최됐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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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지나치게 강대하다” “견제 수단이 생길 때마다 길을 들이도록”
(법원의 숙원사업인 상고법원을 협상 수단으로 활용하라면서) “판사의 성향에 트집잡히지 않도록 치밀하게 준비하라”
“국가적 행사 때 법원도 국가안보에 책임있다는 멘트가 필요하다”
“변협회장 선거에 애국단체의 관여가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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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동포유학생 간첩조작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자백>에는 당시 공안검사였던 김기춘이 등장한다. 최승호 감독은 1970년대 간첩조작 사건의 재일동포 피해자를 취재하기 위해 김포공항에 갔다가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우연히 마주쳤다. 엣나인 필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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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항소심 공소유지 대책 수립” “박사모 등 시민단체 통해 고발” (2014.7.5)
“만만회 고발” (2014.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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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은 총리 후보자의 잇따른 낙마로 “만만회가 인사를 움직인다”는 의혹이 제기된 2014년 6월 이후 적극적으로 당과의 접촉을 늘렸다. 6월25일 새누리당 지도부를 7개월 만에 청와대로 불러 공개회동을 했고, 7월14일에는 새누리당 전당대회에 방문했다.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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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카드뉴스 <박근혜 어록>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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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정치권 일각에서는 청와대 권력의 핵심이라 불리고 있는 ‘기춘대원군’ 김기춘 실장과 비선라인의 관계에도 주목하고 있다. 아무리 비선 측 힘이 크다 해도 무언가 일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청와대 공식라인인 김 실장을 통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비선라인과 김 실장 간에 상부상조하는 암묵적 협력관계가 유지되고 있다는 추측이 힘을 얻고도 있다. (월요신문, 2014년 7월2일, ‘존재 불확실 ‘만만회’, 언급만으로 정치권 들썩’)
“박 대통령은 가족의 정치 개입 논란을 차단하기 위해 가족과 철저히 거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 여권 인사들의 설명이다.” (한국일보, 9월10일치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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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 회장이 2014년 12월15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으로 ‘정윤회 문건 유출’과 관련 조사를 받기 위해 들어서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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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홍성담씨는 2014년 8월 광주비엔날레에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박근혜 대통령을 뒤에서 조종하고 있는 그림 ‘세월오월’을 출품했다가 전시를 거부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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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담 배제 노력, 제재조치 강구” (2014.8.8)
“문화예술계의 좌파 책동에 투쟁적으로 대응할 것” (2014.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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