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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윤서인씨 유튜브 영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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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AS]
만화가 윤서인, 고 백남기씨 유족 명예훼손 혐의로 징역 1년 구형
“만평으로 만화가가 감옥에 간 사례는 과거 군사정권에도 없었다”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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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윤서인씨 유튜브 영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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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윤서인씨 페이스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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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81살 생일날 선물로 받은 서예 작품을 이승만 대통령(가운데)과 부인 프란체스카(왼쪽 둘째)씨가 살펴보고 있다. e영상역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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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매일신문’은 1950년 8월29일 1면 머리기사의 본문에 ‘이 대통령’을 ‘이 견통령’으로 오식(활판에 활자를 잘못 꽂음)해 무기정간 조치를 당하고 사장 이상조가 2개월간 구속되었다. 이 사건으로 이상조는 신문에서 손을 떼게 되었고 10월1일자로 천주교 대교구장 최덕홍 주교에게 인계되었다. 주간은 사임하였다.
또 1953년에는 전북 이리에서 발행되던 ‘삼남일보’ 7월11일자 기사 제목과 충북 청주에서 발행되던 ‘국민일보’ 7월23일자 기사에서 ‘대통령’을 ‘견통령’으로 오식하여 두 신문은 8월 12일 무기 정간 처분을 받았으며 담당자들이 구속돼 구류 처분을 받은 일이 있었다.
-강준만 <한국대중매체사>
1955년 3월 14일에 일어난 ’동아일보’ 오식 사건에 대한 정부의 대응도 졸렬했다. 동아일보는 기사 제목에서 이승만의 이름 앞에 괴뢰라는 단어가 첨가된 실수를 윤전기가 돌아가기 시작한 지 10분 뒤에서야 발견하였다. 발견 즉시 윤전기를 세웠지만 이미 인쇄된 신문은 가판대에 나간 상태였다. ‘동아일보’는 신문 회수 소동을 벌였지만 300부 가까이 회수하지 못했다.
이 실수로 인해 ‘동아일보’의 업무 관련자 3명이 구속되었으며, 이들에게는 국가보안법 및 형법상 명예훼손 혐의가 적용되었다. 이들은 20여일 만에 풀려났으나 징계 해직 형식으로 신문사를 떠났고, 불구속 기소된 주필 겸 편집국장 고재욱은 사임했다가 7개월 뒤에서야 주필로 복귀할 수 있었다. 신문은 한 달간 정간을 당했는데, 당국이 ‘동아일보’에 보낸 정간명령서는 그 실수를 ‘반민족적인 중대 과오’로 규정했다. 정부는 4월 16일 정간을 해제하며 “이 대통령 각하께서 이것이 직접 자신에 관련된 것임에 관대히 조처하라는 분부가 있었으므로” 봐준다는 식의 담화를 발표하였다.
-강준만 <한국대중매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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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에 실린 고바우영감. 국립중앙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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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저기 온다.”
“귀하신 몸 행차하시나이까?” “어흠”
“저 어른이 누구신가요?” “쉬”
“경무대서 똥을 치는 분이요.”
1958년 1월23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이 4단 만화 <게재번호 1031>에 담긴 위의 대화는 경무대의 똥지게를 지는 사람도 권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중략) 김성환 화백은 이 만화를 게재한 뒤 사흘간 문초를 당하고 즉결(심판)에 넘어가 벌금 450환을 낸다.
-국립중앙도서관 디지털컬렉션 <고바우 현대사 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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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민청학련 사건 공판 당시 김지하 시인.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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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협정반대운동’에 참여했던 김지하는 재벌, 국회의원, 고급 공무원, 장성, 장차관 등을 ‘오적’이라 지칭하며, 그 치부를 신랄하게 비판한 담시 오적을 1970년 5월에 <사상계>를 통해서 발표했다.
박정희 정부는 '오적'의 유포를 막을 요량으로 <사상계>의 시판을 중단했다. 일단 이 선에서 마무리된 듯했던 '오적'이 다시 문제가 된 것은 야당인 신민당의 기관지 <민주전선> 6월 1일자에 '오적'이 실렸기 때문이다. 6월 2일 새벽 1시50분쯤 중앙정보부와 종로경찰서 요원들에 의해 <민주전선> 10만여 부가 압수되고, 6월 20일 김지하 시인 및 <사상계> 대표 부완혁, 편집장 김승균, <민주전선> 출판국장 김용성 등이 반공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되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오적필화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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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3월 출간된 시집 <노예수첩>(풀빛출판사), 역시 금서로 묶인 까닭에 초판은 희귀본이 됐다. 한겨레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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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다카사키 소지 교수가 ‘노예수첩’을 일본 시사잡지 <세카이>(세계·이와나미서점 발행)에 갖다 줘 1977년 6월호에 전격적으로 실리게 됩니다. 하지만 나는 ‘세카이’에 시가 실린 사실을 몰랐기에 평상시처럼 출근하다가 1977년 6월13일 오전 9시께 대한성서공회가 있는 종로서적 건물 입구에서 체포됐어요. 남산의 중앙정보부 5국 지하실로 끌려갔죠.
심문 첫날 정보부 요원들이 군홧발로 다가오더니, “다시는 글을 못 쓰게 해주겠다”면서 내 오른손을 짓밟아대는 바람에 오른손 엄지손가락이 부러졌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이 엄지를 제대로 못 씁니다. 정보부 사무실 벽면을 쳐다보니, 커다랗게 ‘양성우 국제간첩단 사건’이란 조직표가 붙어 있었습니다. 이미 그들은 나에 대한 기획수사를 오래전부터 해온 것입니다. 대한성서공회에서 내가 만난 일본인 교수와 미국인 여교수, 그리고 감리교 선교사 등 외국인들의 이름과 함께 그들이 나와 식사하는 장면, 다방에서 차 마시는 사진이 조직표 이름 옆에 붙어 있었죠. ”
-[길을 찾아서] “다시는 글 못 쓰게 해주겠다며 내 오른손 짓밟아” <한겨레, 2015년 1월 18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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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4일치 자유경제원 한컷만화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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