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영 소설 <3화>
내 방에 제일 많이 들렀던 J에게 물어봤다. 이러저러한 책을 여기서 본 적 있느냐고.
응. 본 것 같아.
그는 심지어 나보다 더 자세하게 책 표지를 묘사했다. 하지만 제목은 확신하지 못했다.
Their Earth 아니었나?
There?
이거.
그가 검지를 세워 방바닥에 알파벳 다섯 개를 그렸다. 그리며 말했다. 부장 새끼가 얼마나 치졸하게 사사건건 뻰찌 먹이는지. 무조건 안 된다는 거야. 내가 하는 일은 무조건 틀려먹었다 이거야. 너는 그 무거운 대가리를 뭣하러 달고 다니느냐. 그게 예쁘기나 하면 장식품이나 되지, 별 쓰레기 폐기물 같은 걸 달고 다니면서 거울 볼 때마다 자살하고 싶지 않냐. 네 거기엔 뭔가 창의적이고 짜릿한 발상과 테크닉은 하나도 없고 그저 남들 다 아는 거, 다 아니까 말할 필요도 없고 아니까 기본인 응? 기본적으로 다들 하잖아. 꼴리면 꼴리니까, 아니면 할 때 됐으니까 안 하면 남들한테 꿀릴 것 같고 막 그러니까 의무감으로 낄낄낄. 너 30분 이상 해본 적 있어? 없지? 5분도 못 하지? 넌 새끼야, 평소에 하는 거 보면 딱 견적 나와. 도대체 인내도 발상도 없고 재미도 감동도 없고 그렇다고 새끼가 하라는 대로 하는 것도 아니고 뭐라고 하면 반사적으로 아 그게 아니고, 라는 말이나 씨불이고 넌 대책도 대안도 없이 무조건 아닌 놈이지. 아니야? 잠자리든 술자리든 앉은 자리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딱 5분짜리인 주제에 이렇게 시간 낭비, 돈 낭비, 자원 낭비 해가지고 어디 웹 사이트 긁어서 5분 만에 만든 애들 리포트 같은 걸 뭐라도 했다고 들이밀면서 내 속 뒤집어놓는 게 네 특기이자 장기이자 삶의 이유 아니냐 이거야. 아니야? J의 부장이 J에게 쏟아낸 악담을 들으며 나는 움츠러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J의 입을 빌려 내게 쏟아붓는 비난처럼 들렸으니까. 나는 짜릿한 발상과 테크닉은 없고 기본적으로 남들 다 아는 것들을 굳이 시간 낭비, 돈 낭비, 자원 낭비 해가지고 뭐라도 했다고 들이미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게 내 삶의 이유이자 특기였다. 이제는 그마저도 못 하고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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