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영 소설 <4화>
실은 귀찮았다. 맥주 캔을 따고 그것을 들이켜며 서서히 취해가는 일 말고는 다 귀찮았다. 하지만 글을 쓰고 싶었고 글을 쓸 수 없었고 그 책을 찾아서 읽으면 꼭 글을 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귀찮다는 감정으로 모든 의욕이 수렴되기 전에 쏜살같이 첫 문장을 시작하고, 재빨리 두 번째 문장을 쓰고, 두 번째 문장을 돌아보지 않고 세 번째 문장을 쓰고, 세 번째 문장에 잡아먹히기 전에 네 번째 문장을 쓰고, 그렇게 득달같이 백 문장을 쓰고, 다음 날이 되어도 그것을 지우거나 휴지통에 처넣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나날을 쇠사슬처럼 이어 한 편의 글을 완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책은 어디 있을까. 우주는 왜 무자비하며 지구는 어째서 돌연변이일까. 부장 새끼의 현란한 발언을 전해 들으며 나는 방 안 구석구석을 집요하게 훑어봤다. 그런데 정말 Their Earth일까? 그럴지도 모르지. 제목을 몰라서 책을 못 찾는 건 아니니까. 그것은 분명 있었다. 이 방 어딘가에 두었고 방을 오가며 몇 번을 봤다. 봤던 것 같다. 앉거나 눕거나 걸을 때 방해가 되면 여기저기로 옮기기도 했고 이런저런 용도로 사용하기도 했다. 베고 잤다. 무릎에 올려두고 그 위에 냄비를 놓고 라면을 먹었다. 다른 책의 독서대로도 썼다. 그 책 위에 다른 책을 쌓아두거나 지갑이나 휴대전화 따위를 올려두기도 했다. 책장을 넘기며 읽는 짓 빼곤 다 했다. 내가 진짜 일을 못하는 걸까, 아니면 내가 제일 만만하니까 나한테 화풀이하는 걸까. J가 물었다. 나도 묻고 싶었다. 내가 글을 왜 쓰는지부터 알아야 할까, 왜 못 쓰는지부터 알아야 할까. 그래 나도 알아. J가 말했다. 반반이지. 일도 못하고 만만하기도 하고 또 결정적으로 그 새끼도 사는 게 존나 짜증 나는 거야. 반반. 나는 중얼거렸다. 반반 무 많이. 내 말에 J가 웃었다. 웃는 줄 알았는데 우는 것도 같았다. 지저분하게 양념이 묻은 데다 무를 잔뜩 쏟아버린 반반 무 많이 치킨 상자를 들고 컴컴한 밤 낡은 빌라 앞에서 우왕좌왕하는 배달원 같았다. 근데 정말 Their Earth일까? The earth 아닐까? J에게 물었다. 부장 새끼가 말 못 하는 병에 걸렸으면 좋겠어. J가 대답했다. 거기에 우주는 사이코패스라고 적혀 있었어. 내가 말했다. 너 브로카중추라고 알아? 거길 다치면 말을 잘 못 하게 된대. 근데 굉장히 연습하면 조금씩 잘할 수 있게 된대. 부장 새끼가 거길 다쳐서 말을 못 해서 괴로워서 존나 굉장히 연습하는 걸 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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