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영 소설 <5화>
일기는 계속되었다. 공부를 왜 하나, 밥은 왜 먹나, 말은 왜 하나, 나는 왜 이 모양인가, 대체 왜 사나 생각해본 적은 있지만 일기를 왜 쓰나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노트에는 일관되지 않은, 비정형적인 그날그날의 내가 기록되었다. 그걸 쓴다고 해서, 쓰인 나를 읽는다고 해서 나를 더 잘 알게 되는 건 아니었다. 아…… 책 찾는 것도 글 쓰는 것도 그만두고 맥주나 마시고 싶다. 냉장고엔 맥주 세 병과 소주 한 병이 있다. 냉장고 문을 열고 병을 꺼내고 뚜껑을 따고 마시다가 잠들면 된다. 그럼 악몽 없는 긴 잠을 잘 수 있을 것이다. 글쓰기도 이와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 열서너 살 때부터 스물두어 살까지 쓴 크고 작은 노트만 백 권은 넘을 것이다. 10여 년 전 어느 날, 마당 구석에 있던 양철 드럼통에 그걸 다 처넣고 불태웠다. 다시 들춰보고 싶지 않은 과거의 기록이 집 안 어딘가에 탑처럼 쌓여 있다는 사실이 굉장히 부담스러웠다. 지난날의 내가 궁금하지도 않았다. 쓰인 나는 진짜가 아니었으니까. 어릴 때 나는 지나간 일이나 내가 지녔던 물건에는 나의 좋지 않은 부분이, 이를테면 누구도 알아서는 안 되는 나의 비밀이나 치부나 더러움 같은 것이 묻어 있다고 생각했다. 유리에 찍히는 지문처럼. 특별한 감각을 가진 누군가는 그것을 느끼거나 알아챌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내 손을 거친 것은 무엇이든 놓지 않으려 했고, 손에서 놓으면 정해놓은 장소에 두려고 했고, 그 장소를 나만 알고 있으려 했다. 부모님이나 친구들이 나와 관련된 과거 얘기를 하는 것도 싫어했다. 이야기하는 도중에 그들이 과거에는 몰랐던 무언가를, 나의 잘못이나 나쁜 면을 알아낼까 봐 두려웠다. 하지만 기억이나 말이 아닌 기록은 나를 좀 더 그럴듯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글자라는 옷을 입은 나는 실제보다 덜 비겁하거나 더 애틋한 사람이었다. 좋아하는 감정을 그저 품고 있는 것보다 문장으로 옮기면서 더 고유하고도 깨끗한 사랑에 빠졌다. 비겁한 나를 변호하거나 합리화할 수도 있었다. 내가 품은 감정은 너무 거칠고 날 것으로 볼품없으니 그것을 말하거나 기록하여 가공해야 했는데, 나는 말에 서툴렀다. 말은 피곤했고 가벼웠다. 털어놓을 만큼 믿을 만한 대상도 없었다. 하여 나는 기록 속의 나를 기억했다. 본래의 나보다 훨씬 그럴듯한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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