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영 소설 <8화>
노트를 다 태워버린 그날부터 나는 소설을 썼다. 그날그날 있었던 일과 생겨난 마음을 어정쩡하게 과장하거나 어설프게 꾸며서 기록하는 대신, 진짜 거짓 이야기를 지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상했다. 소설을 쓴답시고 가짜 인물과 사건을 지어내서 그것에 나의 감정만을 입힐 뿐인데도, 많은 경우 더 적나라하게 진짜 내가 드러났다. 감정의 축소나 왜곡, 합리화가 없진 않았지만 일기를 쓸 때보다는 그 정도가 덜했다. 나의 싸가지 없었던 말투, 비열한 행동, 내가 상상하는 상대의 마음 등을 좀 더 솔직하고 냉정하게 쓸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건 일기가 아닌 소설이니까. 소설이란 명찰을 가슴에 붙인, 지어낸 이야기니까. 통쾌할 때도 있었다. 나의 어둡고 부조리한 면을 남 이야기하듯 까발리는 것이. 내가 저지른 지저분한 말과 행동을 가상의 인물을 통해 드러내는 것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면서도 상처받았던 나를 돌아보는 것이. ……정말 이상했다. 쓰려고 돌아보면, 간혹 뜻하지 않은 감정이 들었다. 분명 내가 상처받았다고 생각했는데 상대에게 미안했고, 내가 잘못해놓고도 서러웠고, 모두의 칭찬과 인정을 받은 일에 모욕감이 들기도 했으며, 내가 왜 그런 어이없는 말과 행동을 했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고, 나 빼고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 내가 그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부끄러웠다. 그러면서 다시 생각해보는 나라는 인간. 입버릇처럼 말하는 인간다움. 의문. 의심. 나의 오해와 당신의 오해. 결코 메워지지 않을 우리 사이의 깊고 깊은 절벽. 그 빈 공간을 간간이 채우는 메아리. 잠시 울리고 사라지는 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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