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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1.13 09:38 수정 : 2014.11.13 09:38

최진영 소설 <9화>



*

책을 찾지는 못하고 그것이 과연 어떤 책일까, 안에는 무슨 내용이 적혀 있을까, 우주는 어째서 무자비하며 지구는 왜 돌연변이일까 생각만 하다 보니 나는 꼭 짝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굴게 되었다. 언뜻 비친 모습만을 마음에 품어두고 사귀어보지 못한 사람과의 연애를 상상하듯 그 책을 상상하게 된 것이다. 그의 이름, 성격, 아침과 점심과 저녁, 그리고 밤, 말투, 습관, 잠버릇, 꿈, 고민, 사소한 실수와 잔병……. 읽어본 적 없으므로 상상에는 제약이 없었다. 내 머릿속에서 그것은 천체물리학 서적이었다가 철학과 역사를 겸비한 인문서였다가 공상과학 소설이었다가 엄청나게 길고 긴 시가 되었다. 그 책을 반드시 찾아서 나의 상상을 확인해보고도 싶었고, 영영 찾지 않고 상상을 그저 상상으로만 남겨두고도 싶었다. 그러다 마침내는 제목에 Earth가 들어가는 글을 직접 써버리고 싶어졌다. 마감도 계약도 없이 아주 오랜 시간 공들여서, 한 문장을 백 번도 넘게 고쳐 쓰면서, 그렇게 내 마음에 꼭 드는 문장들만 잇고 이어서, 그 어떤 출판사에서도 받아주지 않는 괴팍하고 이상한 글이 되더라도 각각의 문장에 우선 내가 동의할 수 있다면…… 그렇게 단 한 편의 글만 쓰고 삶이 끝장난다고 해도…… 좋을까? 모르겠다. 아무튼 쓰게 된다면, 그것은 소설인지 에세이인지 시인지 인문서인지 정체가 아주 모호한 글이 될 것이다. 어떤 부분은 상징과 생략으로 가득 찬 문장으로, 또 어떤 부분은 건조하고 메마른 사실만 늘어놓은 문장으로, 또 다른 부분은 지겨울 만큼 기나긴 독백으로 한 장 한 장을 꾹꾹 눌러 채우고 싶다. 전체적으로는 아주 정확한 서술과 문장을 추구할 것인데 그 정확함이 오히려 모호함을 불러오도록 할 것이다. 그래, 그러니까, 젠장, 그렇게 쓸 수만 있다면.

아, 그거 나 읽어봤어.

A가 말했다. 내가 책을 잃어버렸다고, 책 제목이 무척 헷갈리는데 Another Earth인지, The other Earth인지 뭔지 모르겠다고, 아무튼 책 뒤에 우주는 무자비하다고 적혀 있다고 말한 뒤였다.

그 소설 무지 까다롭고 지루해서 겨우 읽었는데…….

A는 그 책이 소설이라고 했다.

자세한 내용은 기억 안 나. 뭐…… 이렇다 할 줄거리도 없고 그냥 어떤 사람이 여기저기 싸돌아다니면서 중얼거리는 게 다였던 것 같은데……. 되게 지독하고 우울한데, 근데 아주 잠깐씩 강렬하게 빛나는 부분이 있었어.

강렬하게 빛나는 부분이란 대체 어떤 것인지 미치도록 궁금했다. 그 책 제목이 정확히 뭐냐고 물어봤다.

To Another Us.

A가 미간을 찌푸리더니 대답했다.

To Another Earth?

그랬던 것 같아. 정확하진 않아.

A가 미심쩍은 표정으로 대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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