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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임덕 대통령’ 지지율 폭락원인 살펴봐야 새해 기자회견을 하는 이명박 당선인의 얼굴은 밝았다. 붉은 넥타이도 잘 어울렸다. 그는 기자들의 복잡한 질문을 단순화해 대답했다. 말 한마디에도 자신감이 묻어났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만난 사람들에게는 붉은 기운이 감돌았다. 이경숙 위원장, 김형오 부위원장, 강만수 경제1분과위원회 간사는 후광이 비치는 듯했다. 새 정권의 실세들답게 믿음직했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정권을 잡은 사람들의 초기 모습엔 공통점이 있다. 사명감으로 가득 차 있다. 약간의 흥분 상태에서 매우 열심히 일한다.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혹은 ‘우리는 뭔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전두환-노태우-김영삼 정권에서 일하고 16대 국회의원을 지낸 인사가 있다. 그는 권력 교체기를 맞는 정치인과 관료의 관계를 이렇게 묘사했다. “인수위원회에서는 천하가 발밑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증세가 취임 뒤에도 1년은 간다. 그 시기에 정권의 모든 문제점이 잉태된다. 정치인은 밀어붙이고 관료는 집행한다. 관료는 나중에 문제가 터진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안다. 그렇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반개혁으로 몰리기 싫은 탓이다. 정부의 ‘센서’가 망가진 상태에서 임기 초반이 흘러간다. 그러고 나면 사실상 레임덕이 시작된다.” 87년 이래로 모든 대통령들은 초기엔 인기가 꽤 높았다. 임기 초반의 ‘힘’은 개혁의 성과로 이어지는 듯했다. 그러나 중반을 돌면서 지지율이 폭락했다. 악순환의 원인은 뭘까? 간단하다. 정책 프로그램을 갖지 못한 상태에서 집권했기 때문이다. 대통령 선거에서 이긴 뒤 엉뚱하게 인수위원회에서 정책을 만든다고 허둥댄다. 그렇게 만든 졸속 개혁안을 힘으로 밀어붙인다. 제대로 될 턱이 없다. 이명박 당선인은 지난해 10월8일 ‘한경 밀레니엄 포럼’에서 멋진 강연을 한 일이 있다.
“역대 정권은 정권을 잡은 뒤에 로드맵을 만들다가 세월을 보냈다. (나는) 정권을 잡은 뒤에 바로 집행할 수 있도록 로드맵을 미리 작성하려고 한다.” 그런데 요즘 돌아가는 사정을 보면 영 이상하다. 총리 후보에는 웬 대학총장들이 그렇게 많을까? 삼성 비서실과 전경련 출신 친재벌 인사도 총리가 될 수 있을까? 인선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기로 한 이유는 뭘까? 어지럽다. 인사의 기본 개념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정부 개혁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조직 개편안 발표도 늦어지고 있다. 당연히 혼선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일까? 대통령 선거에서 이겼으니 좀 부실해도 국회에서 무조건 통과시켜 달라는 얘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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