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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2.01 09:59 수정 : 2014.12.02 12:43

박민정 소설 <아름답고 착하게> ⓒ이현경



박민정 소설 <1화>



맛이 없다. 기본 면발에 간간한 국물이지만 잘 먹히지 않는다. 그래도 활주로를 보면서 먹는 칼국수다, 생각한다. 위로가 되지 않는다. 재이는 조그마한 치아로 자꾸만 면발을 뚝뚝 끊는다. 기껏 젓가락에 국수를 말아주면 전부 끊어버리는 바람에 맥이 빠진다. 공항에 입점한 식당에 아기용 메뉴 따위는 없다. 항아리 칼국수 1인분은 재이에게 너무 많다. 애초에 두어 젓가락 먹으면 그만둘 것이 뻔했다. 재이는 다 먹지도 못할 거면서 기어이 고집부려 자기 몫을 챙겼다. 재이 몫으로 주문한 국수가 아깝다. 장난칠 거면 먹지 마. 주의를 줘보지만 재이는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재이가 끊어버린 면발은 앞 접시에 흡사 구더기처럼 오글오글 모여 있다. 그걸 손가락으로 집어 관찰한 후 다시 입에 넣으려는 모양을 보자니 기가 막혔다. 호되게 야단치고 싶지만 참는다. 참는 일이 어렵지는 않다. 저지레하는 모양에 울컥 화가 났다가도 재이의 포동포동한 손등을 보면 그새 마음이 누그러진다. 순간 치미는 화를 잘 참고 넘기면 다시 사랑스러운 아이, 그저 말랑말랑하고 귀한 살덩이 하나가 내 앞에 놓여 있을 뿐이다.

칼국수가 좀 더 맛있다면 좋았겠다. 무던하게 한 그릇 비우고 시작하는 여행길이라면 더욱 괜찮았으련만. 아니, 칼국수 맛의 문제는 아니다. 무엇이든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억지로 국물을 삼킨다. 재이는 벌써 외투를 걸치고 미니 캐리어를 끌고 와 옆에 섰다. 외투를 입을 줄 몰라 걸친 것이지만 왠지 어른스러워 보여 웃음이 난다. 재이의 주장에 의하면, 재이도 어른들처럼 캐리어를 끌어야 한다. 먼 여행을 떠나는 길이니까 바퀴 달린 뭔가를 끌어야 한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영유아용 캐리어라는 것이 있다. 여행용 파우치만 한 크기다. 재이는 그 안에 사탕 한 봉지와 애지중지하는 작은 인형을 넣고 지퍼를 올렸다. 행인들이 짐짓 한 번씩은 재이의 모양을 주목한다. 어머. 작은 게 캐리어를 끌고 다녀. 젊은 여자가 키득거리며 제 입을 틀어막는다. 세 살 꼬마지만 대놓고 이야기할 수는 없는 것이다. 눈치가 빤한 재이는 새침한 표정으로 나를 돌아본다.

아빠. 얼른 와.

재이가 나를 재촉한다. 내가 재이를 따라가는 것 같다. 마치 그런 여행인 것 같다. 재이가 티켓팅을 하고, 재이가 호텔을 예약하고, 재이가 스케줄을 정리하는 여행. 그런 여행이라면 좋겠다. 재이를 데려가는 것이 아니라 따라가는 여행이라면 좋겠다. 언젠가 그런 날이 오게 될까, 잠시 생각할 뻔했다. 그런 생각은 해봤자 좋을 것이 없다. 재이는 고작 세 살일 뿐이고, 아직 재이에게는 모든 것이 요원하다. 늘 생각하듯 재이에게는 완벽한 한 문장조차 요원하다. 아빠, 나 바퀴 달린 여행용 가방을 갖고 싶어요. 그래야 여행 가는 기분이 제대로 날 것 같아요. 이런 식의 문장들 말이다. 아빠. 바퀴. 나도. 저거. 내 꺼. 나도. 가방. 내 꺼. 아빠가 말고. 내가. 뭐 이런 식의 파편적인 의사표현이 아닌. 주성분과 부속성분이 알맞게 자리한 하나의 문장 말이다.

아빠. 빨리 와. 늦어.

그렇다면 이런 문장은 완벽한가, 그렇지 않은가. 생각해보게 된다. 사실 성인도 정리된 하나의 문장을 내뱉는 경우란 거의 없다. 우리의 말은 대개 파편적이다. 녹취를 풀어 정리하는 아르바이트를 할 때 지겹게 실감한 사실이다. 아, 그러니까요, 가령, 그러한 것들이, 대체적으로 이러한 자세를 갖추고, 우리에게 육박한다, 뭐 정리하면 그렇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이따위 말을 읽을 수 있는 하나의 문장으로 정리해야만 했던 적이 얼마나 많았나. 재이의 분절된 표현들과 나의 일상적인 말들이 서로 얼마나 다른가.

생각하다 보면 열심히 걷던 재이가 멈춰 돌아보며 다시 말한다.

빨리 오라고. 아빠.




박민정(소설가)




박민정

1985년에 태어났다. 2009년 〈작가세계〉 신인상에 단편소설 〈생시몽 백작의 사생활〉이 당선되었다. 소설집 《유령이 신체를 얻을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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