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정 소설 <2화>
대체 강의를 어떻게 한다는 것인지. 저런 화법을 가진 여자가. 그 여자에게 지금껏 남은 의문이다. 그러니까 그 여자는 대개의 어떤 인간들보다도 더욱 파편적인 화법을 구사하는 인간이었다. 낮에 봤을 때도 그랬는데, 밤에는 더했다. 낮에도 술을 마셨다면 밤과 같았을 것이다. 낮과 밤을 구분해서 술을 마시는 인간 같지는 않았다. 다만 나와의 첫 만남에서는 그것이 그나마 ‘미팅’이었기에, 돈 이야기가 오가는 자리였기에 다소 점잖았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걸 점잖은 태도라고 부를 수 있는지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해보면 또 자신이 없어진다.
돈이 필요하잖아, 자기한테는. 그렇지요?
이런 식의 기묘한 하대를 나는 무척 경멸한다. 차라리 첫인사를 나눈 직후 “내가 너보다 20년이나 더 살았으니 앞으로는 반말만 하겠노라” 선언하는 편이 더 낫다. 처음부터 끝까지 반말하는 사람이 차라리 더 깔끔하다. 나에게 불리한 내용을 언급할 때만 반말하고, 결국 종결어미에서는 존대를 하는 사람은 비겁하다. 자꾸 이상한 존대를 하며 교양 있는 사람인 척하려는 까닭도 분명하다. 결국 그녀가 내게 부탁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그녀에게 돈을 받아야 하는 처지라 하더라도 부탁을 하는 쪽은 그쪽이다. 이 만남의 용건은 부탁이다. 여자가 내게 부탁하는 자리라는 이야기다.
나한테는 좋은 문장이 필요하고.
마치 혼잣말인 양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소변으로 구역을 표시하는 똥개 같아 보여서 나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릴 뻔했다. 혼잣말인 척할 필요가 없다. 그녀에게는 좋은 문장, 아니 최소한 주어와 동사가 만나기라도 하는 문장이 필요한 것이고 나에게는 돈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사실을 면전에서 새삼 일깨워줄 필요가 없다. 최 교수의 소개로 이미 우리의 목적은 서로에게 각인되었다. 자서전 대필 과정에서 만남이 불가피하다 하더라도 장소 선택은 신중해야 했다고 생각한다. 그녀의 자녀들이 버티고 있는 자택이어도 좋았고, 조교와 학생들이 드나드는 그녀의 연구실이어도 좋았다. 왜 하필 호텔이었을까. 대낮에 호텔 1층에 있는 카페에서 젊은 남자와 나이 든 여자가 긴장하며 대면하고 있는 꼴이 남들 눈에 좋아 보이지도 않을 터였다. 첫 만남이라면 최 교수를 대동하는 편이 훨씬 좋았을 것이다.
최 교수는 왜 항상 이런 식으로 발을 빼는가. 왜 하나만 생각하고 둘은 생각하지 못하는가. 늘 그랬듯 최 교수는 생색내며 말했다.
뭐든 가리지 않고 해야 할 시기지. 아이를 키우려면 돈이 많이 들잖나.
그래, 그건 알면서 왜 이렇게 피곤한 여자와 처음부터 굳이 단둘이 만나게끔 하는지. 어차피 아는 사이라면서 한 번쯤 대동해줄 수 없었는지. 이런 식으로 혼자 아이를 키우는 일에 대해서 처음부터 진지하게 생각하게 만드는지. 새끼손가락을 들고 커피를 마시는 여자를 구경하다 말고 싱글 대디라는 자신의 부박한 처지를 잠시 비관하도록 만드는지. 하기야 석사 논문을 쓰던 당시에도 그는 늘 그런 식이었다. 어서 졸업해야지, 아이도 생겼는데. 늘 그런 말을 입에 달고 살던 최 교수는 그러나 밤늦도록 나를 연구실에 붙잡아뒀고,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논문 심사를 미뤘다. 결국 재이가 방바닥을 방방 기어 다닐 무렵이 되어서야 졸업할 수 있었다.
가진 건 돈밖에 없는 여자라서. 유명한 공주님이라서. 이런 말도 필요 없다. 좋은 자리를 소개해줬다는 생색밖에 안 되는 말이다. 일하는 건 나다. 최 교수가 아니다.
재이가 말을 더 잘하게 된다면 최 교수를 혼내줬으면 좋겠다.
선생님(아저씨라 해도 무방하겠지. 아니, 할아버지라 해도 무방하다), 우리 아빠 그만 괴롭혀요. 해먹을 만큼 해먹었잖아요!
나는 옆에서 재이를 야단치는 척할 것이다. 엄마 없는 애라서 철딱서니가 없어요. 우리 애가. 그런 말을 덧붙이면서.
최 교수는 워낙 고생을 모르고 산 사람이라 철이 없긴 했지만, 그만큼 천진한 구석도 있었다. 악의는 없는 사람이다. 이 여자도 그렇겠거니, 생각한다. 특히 저 연배의 교수들은 일부러 누군가를 괴롭힐 만큼 적극적이지 않다. 워낙 대접받고 살아서 상대의 눈치를 살필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정도가 심해지면 상대의 아픈 곳을 찌르는 이야기도 서슴지 않고 하는 것이다.
아이가 하나 있다고 들었는데, 예뻐요? 남자 혼자 헌신할 만큼.
이딴 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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