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정 소설 <3화>
두 번째 만남에서 나는 여자 혼자 술을 시키고, 그것을 마시고, 몸이 기울어지고, 머리카락이 헝클어지고, 얼굴이 붉어지고, 눈이 풀리고, 옷매무새가 흐트러지는 것을 삼인칭 시점으로 관찰해야만 했다.
첫 만남이 이루어진 장소와 같은 장소였다. 여자는 역시 지난번에 만났던 곳이 편하겠죠? 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다. 호텔 1층에 있는 카페는 뭘 해도 찜찜한 뉘앙스를 풍긴다. 그곳의 인테리어와 값비싼 커피 맛 등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저 여자의 취향이다. 내 취향이 아니다. 그러나 그녀가 말했듯 한동안은 그녀의 취향에 군말 없이 동의해야 한다.
두 번째 만남에서 밤은 쉽게 찾아왔다. 백화점처럼 창이 없으면 차라리 괜찮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곳의 창은 컸고, 바깥의 어둠은 실내에 쉽사리 침범했다. 실내가 함께 어두워지는 것은 아니지만 여자의 마음은 들뜨는 모양이었다. 불편한 상대와 단둘이 있는데 날이 어두워지고 상대가 흥분하면 나는 몹시 불안해진다. 애초에 약속한 시각 자체가 문제였다. 한겨울의 낮은 일찍 끝난다. 오후 4시 반, 시작이 낮이었더라도 끝은 밤이 될 수밖에 없는 시간대였다.
혼자 들떠서 술을 시켜 먹는 여자는 멋대로 자세를 풀고 막말을 해대는 것이다.
아이가 세 살?
정말 사랑스럽겠다.
가장 예쁠 나이잖아.
이제 막 말문이 트일 시기인데, 언어의 보따리가 풀어진 듯 신비롭지.
문득 여자의 비유가 괜찮게 느껴져 당혹스럽다. 재이에 대해 뭘 안다고 언어의 보따리니 뭐니 지껄이는 것일까. 재이에 대해 언급하는 것 자체가 불쾌하다. 그러나 틀린 말은 아니다. 요즈음 재이를 두고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이 그것이었다. ‘저런 말은 어디서 배워온 걸까.’ 텔레비전을 좀 본다고 해서, 어린이집 교사들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다고 해서 그토록 빠르게 습득할 수 있는 걸까. 인간의 말은 어떻게 갓 태어난 인간들에게 전염되는 것일까. 나도 한 번도 쓴 적 없는 표현을 재이가 쓸 때도 있었다. 스마트폰 메모장은 재이의 새로운 말들로 넘쳐난다. 머리를 감길 때나 스마트폰이 저 멀리 있는데 아이가 속사포로 말을 뱉어낼 때에는 조급증마저 생길 지경이다. 늘 메모장을 끼고 살지만 잠시라도 손에서 놓칠 때면 몹시 불안한 것이다. 내 아이가 배운 새로운 말을 놓칠까 봐.
말하자면 언어의 보따리가 풀어지는 것 같은 현상인데, 그 신비를 이 여자와 나누고 싶지는 않다. 육아의 선배처럼 구는 꼴도 마뜩잖다. 내 생활 이야기를 하는 자리가 아니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하는 자리다.
취한 여자의 말은 실타래처럼 풀어진다.
그러니까. 아이는 그때가 제일이라고. 지나봐라. 아예 콱 죽이고 싶은 때도 다. 그런 때도 다. 아니, 지금이 지나면 없어. 그런 예쁨은. 난 그랬어. 그때 이후로는 없었다고. 그때가 제일이야. 그런데 어쩌겠어. 그 후로도 오랫동안 돈 잡아먹는 귀신처럼. 그것들은.
녹취를 풀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막막했다. 써먹을 수 있는 종류의 이야기도 아니다. 아름답고 착한 이야기가 아니니까. 더불어 문득 여자의 세 자녀를 생각했다. 모두 좋은 학교를 졸업했고, 돈 잘 버는 인간들이다. 돌연 여자는 몸을 앞으로 당겨왔고, 나는 당황했다.
아이랑 같이 가요.
갑자기 여자의 발음이 분명해진다.
아이를 데리고 가. 여행한다 생각하고. 작업실에 처박혀서 나오는 글을 원하지 않아. 넉넉하게 줄 테니까 아이 데리고 작업하러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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