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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2.10 10:17 수정 : 2014.12.10 10:17

박민정 소설 <8화>



날이 어두워졌고, 더는 미룰 수 없다. 여자의 생애를 내가 시작한다. 내게 자서전 대필을 맡긴, 의상디자인과 교수인 이 여자는 단연 전자의 부모에게서 길러진 종류였다. 그녀의 부모는 예로부터 손 관리에 각별한 신경을 쓸 것을 주문했다. 여자의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부모 말에 의하면 여자는 자고로 손이 예뻐야 물일뿐 아니라 험한 일을 덜 하게 된다는 거였다. 그런 여자가 핀 쿠션을 손목에 걸었을 때, 반짇고리를 달고 사는 일을 하기로 했을 때 여자의 부모는 반대했다고 한다. 그토록 가르쳐놓았는데 여공들이나 하는 일을 한다고 속상해했다고. 그때부터 여자는 우울증에 걸렸다고 했다. 아름답고 착하게 살라고 한 부모의 뜻을 거역한 자신에 대한 배반감 때문에.

초반부터 뭔 개소린지, 생각하며 타이핑을 했다. 내가 본 여자의 손은 전혀 예쁘지 않았다. 그런데 부모님은 손이 예뻐야 한다고 강조하셨다는 내용으로 시작하려니 영 찜찜했다. 여자는 꼭 그 대목에서 출발해달라고 했다. 극적인 구성이기는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집중적 구성이다. 오래전 그런 내용을 강의한 적 있다. 태반이 졸거나 떠드는 중학생들을 모아놓고. 지지리도 못사는 동네의 보습 학원이었다.

어떤 인물의 생애와 업적, 언행, 성품 등을 사실에 바탕해 기록한 글이다. 크게 일대기적 구성과 집중적 구성으로 나눌 수 있지. 본인이 스스로 쓰느냐, 다른 사람이 쓰느냐에 따라 나눠. 이 중 자신의 생애를 직접 쓴 글이 자서전이다.

소설과의 차이를 애써 설명하기도 했다. 시험 성적에는 관심 없는 아이들이었지만. 전부 맞벌이 부모들이 탁아소라도 되는 양 집어넣고 간 아이들이었지만. 인물의 생애가 극적으로 제시된다고 하더라도 소설은 허구의 이야기이고 전기는 반드시, 반드시 사실에 입각해야 한다. 교실 전체의 풍경은 메타 시점으로 각인되었다. 그 말을 마치고 냉수를 들이켜던 인간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재이가 태어나기 직전이었다. 나는 하루도 쉬지 않고 일했지만 가끔 교통비도 없어 난감한 대학원생이었다. 대학원 수업을 들으며 최 교수의 연구실에서 소처럼 일하던 시절이다. 엄마가 해준 게 뭐가 있어, 라는 말을 그때만 해도 입에 매달고 살았다. 내가 굶어 죽게 되더라도 엄마한테 손 벌릴 일은 없을 거야, 이런 말을 해버렸는데 아이가 덜컥 생겼다. 결혼식은 못 올려도 아이는 강보에 감싸 키워야 했다. 임금을 떼먹기 일쑤인 보습 학원에 나가는 것만으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아름답고 착하게. 24포인트의 압도적인 크기로 모니터 한가운데 박혀 있다. 여자가 직접 만든 유일한 문장이다. 사실에 입각해야 한다, 유독 입에 감기던 그 말이 떠오른다. 책상에 함부로 엎드려 졸던 아이 중 한 명이 번쩍 손을 들어 이렇게 질문해왔다면 어땠을까. 선생님, 본인이 스스로 쓴 글이 자서전이고 남이 써준 글이 전기라면 자기 생애에 대해 본인이 쓰고 싶은 대로 남이 써준 글은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출판되는 자서전 중에는 그런 글이 훨씬 많지만 나는 다시 잠이나 자라고 했을 것 같다. 또 어떤 아이가 이렇게 질문했다면. 선생님, 제가 읽은 대부분의 위인전에는 그 사람이 얼마나 훌륭한지에 대해서 적혀 있었는데요. 전기의 주인공을 존경하지 않고도 그 사람의 전기를 쓰는 일이 가능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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