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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2.15 09:47 수정 : 2014.12.15 09:47

최정화 소설 <지극히 내성적인 살인의 경우> ⓒ이현경



최정화 소설 <1화>



전화를 받은 건 7개월 전이었습니다. 선생님이 직접 전화를 걸진 않으셨고요, 남편분인 것 같았어요. 여자가 쓸 방을 찾는다고 했고, 방이 얼마나 큰지, 들락거리는 식구나 손님이 많은지 이런저런 것들을 꽤나 상세하게 물어봤습니다. 그러고도 성에 차지 않았는지 주말에 직접 내려왔어요. 부인을 굉장히 사랑하는구나 싶었죠. 마당에 들어설 때부터 텃밭에 심어놓은 상추랑 수세미, 마당의 꽃들이며 닭장까지 유심히 살펴보더라고요. 물론 집 안도 꼼꼼히 확인했고요. 형광등을 켜서 조도를 확인해보고 벽지 상태랑 환기가 잘 되는지까지 체크했어요. 창문이 난 방향이 북쪽이라서 좀 망설이는 표정이었습니다. 누가 보면 방을 빌리는 게 아니라 아예 이사를 오는 줄 알았을 거예요. 화장실에 들어가서 수도꼭지를 틀어보고 변기 물까지 내려보고 갔다니까요. 동물을 기르진 않느냐고 물어서, 마당에 기르는 닭이 전부라고 대답했습니다.

“동물을 싫어해서요. 뭐 집 안에서 기르는 건 아니니까, 닭 정도는 괜찮겠지요.”

자상한 사람이었습니다. 방에 묵게 될, 부인 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지더라고요. 연애 초반이라면 모를까 아무래도 그런 세심한 배려를 받는다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니까요.

남자는 석 달간의 방세를 지불하면서 부인이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부인이 방에서 작업을 할 때 괜히 말을 걸거나 음식을 갖다 주거나 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요. 그저 조용한 환경을 조성해주는 게 제가 할 일의 전부라고 말했습니다. 아침은 거의 먹지 않고 점심과 저녁 식사만 챙기면 된다, 채식 위주의 반찬이면 좋겠다, 저녁은 점심의 반 정도밖에 먹지 않는다. 아, 흰 살 생선을 좋아하고 돼지고기는 먹지 않는다고도요.

이틀 후에 작은 트럭이 와서 짐을 내려놓고 갔습니다. 옷가지가 든 것으로 보이는 여행용 가방 하나와 프린터가 전부여서 따로 트럭을 부를 것까진 없을 정도의 간단한 것들이었지만 짐을 들이고 나니 은근히 기대가 되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혼자 지내는 시골 생활이 외롭기도 했고 유일한 말동무였던 경선은 지난달 귀농한 동갑내기랑 연애를 시작하게 되어 이젠 만나자고 하기도 눈치가 보이더라고요. 외톨박이 신세에서 벗어난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져서 누군가에게 자랑이라도 하고 싶었어요. 경선에게 전화를 걸어서 우리 집에 곧 유명한 작가가 오게 된다고 하자 경선은 선생님 이름을 묻더라고요. 나는 수첩을 펼쳐 ‘오난영’이라는 세 글자를 천천히 읽어주었습니다.

“그렇게 유명한 작가는 아닌가 보다.”

경선은 그런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다는 거였어요. 경선이 소설을 읽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선생님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 말을 하니까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서울에서 작가들한테 주는 큰 상을 받은 사람이라던데.”

내가 그렇게 거짓말을 해버리니까 경선은 더는 선생님을 깎아내리지 못했어요. 언제부터 집에 묵게 되느냐고 묻기에 이삼일 후쯤이 될 거라고 대충 둘러대고 전화를 끊어버렸어요. 자기는 애인까지 있으면서 고작 제 방에 손님이 오는 걸 질투한다고 생각하니 얄미워서 삼사일쯤 전화도 안 걸고 오는 전화도 받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이 도착한 건 짐이 오고 일주일이 지나서였습니다.

택시에서 내린 선생님은 핸드백을 옆구리에 끼고 천천히 걸어왔습니다. 단발머리는 방금 빗질을 한 듯 차분히 가라앉아 있었고 깡마른 체구에 흰색 마 원피스가 아주 잘 어울렸어요. 손수건으로 이마를 닦고는 나를 향해 희미하게 웃어 보이던 얼굴을 아직 기억하고 있어요.

지금도 선생님의 두 눈을 또렷이 떠올릴 수 있습니다. 쌍꺼풀이 겹겹이 져 있었고 눈동자가 아주 컸는데, 어쩌면 작가라는 얘길 먼저 들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그 앞에 서면 괜히 내 속마음을 들켜버리는 게 아닌가 싶은 서늘한 구석이 있었답니다. 얼마나 긴장을 했던지 순간 어깨랑 목이 딱딱하게 굳어버리는 것 같았다니까요. 선생님은 잘 부탁드린다고 말하며 다시 한번 웃었지만, 그 순간에도 그 눈만은 웃지 않고 있었어요. 꼼짝도 않는 검은색 눈동자가 어쩐지 굉장히 외롭게 느껴졌습니다. 남자가 집 안을 어슬렁거리던 모습이 떠올랐어요. 그렇게나 꼼꼼히 챙겨주는 남편이 있는데도 어째서 외로움이 이리도 물씬 풍겨 나오는 걸까, 희한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남편 쪽의 얘기대로 조용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식사를 정갈하게 챙기는 것 말고도 어쩌면 내가 할 일이 더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방 정리를 도와드리려고 했는데 선생님은 곤란해하며 사양하셨어요. 나는 좀 무안해서 닭장을 정리했습니다. 바닥에 엉겨 붙은 닭똥을 긁어내고 기생충 약이랑 소독약을 뿌려주고 겨를 깔았지요. 물통을 씻은 뒤 찬물도 충분히 받아두고요. 횟대 정리까지 마치고 나서 닭들이 마당을 노니는 것을 바라보니 다시 마음이 명랑해져서 매실을 담으려고 사온 유리병도 닦아놓고, 옥수수를 삶을 물을 끓이기 시작했어요. 선생님은 방문을 살짝 열어놓고 있었지만 나는 어쩐지 안쪽을 들여다봐서는 안 될 것 같아, 방을 등지고 앉아 말없이 옥수수 껍질을 깠습니다. 방 정리가 일찍 끝난 것 같은데도 저녁이 될 때까지 선생님은 나오지 않았고, 나는 새 손님을 맞아 들뜬 마음과 호기심, 함께 지내게 될 나에게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 같아 살짝 서운한 마음이 한데 뒤엉긴 채로 저녁을 차렸습니다.




최정화(소설가)





최정화

1979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2012년 <창작과비평> 신인상에 단편소설 <팜비치>가 당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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