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4.12.22 09:47 수정 : 2014.12.22 09:47

최정화 소설 <지극히 내성적인 살인의 경우> ⓒ이현경



최정화 소설 <6화>



나의 의도와는 달리 선생님과 멀어지고 말았어요. 선생님과 친해지기 전보다 더 거리감이 느껴졌고 어떻게 해야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지 도저히 방법을 모르겠더라고요. 답답한 마음을 풀 길이 없어 점점 더 경선에게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그즈음 경선의 애인이 마을 센터에서 운영하는 귀농에 관한 강의를 맡으면서 좀 바빠졌거든요. 이래저래 경선의 집에 자주 놀러 가게 되었는데, 경선이야 자기 연애 얘기를 한다 치지만 나는 마땅히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 이야기를 하게 된 거예요. 선생님은 나를 굉장히 신뢰하고 있어서 자기가 글을 쓰기 전에는 꼭 내게 얘기를 들려주고 다 쓰고 나서는 확인을 받고 있다, 이야기가 막힐 때는 내가 이런저런 방향을 제시하기도 하는데 선생님 말로는 내가 얘기를 꾸며내는 재주가 뛰어나다고 한다, 이번 작품이 끝나면 선생님을 따라 서울로 올라가게 될지도 모른다, 선생님한테는 내가 꼭 필요하고, 그래서 같이 지내며 지금처럼 도움을 준다면 좋겠다는 얘길 들었다며 나는 진지하게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경선은 그래서 정말로 선생님을 따라 서울에 갈 거냐고 물었고, 나는 아직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싶다고 대답했습니다.

거짓말을 할 때는 내 얘기가 정말 사실이 된 것 같은 기분에 빠져들었어요. 서울에 가서 선생님이 작업을 할 때는 집안일을 거들고 작품이 완성되면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상상을 하며 한껏 부풀어 올랐어요.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습니다.

한번은 나물을 뜯어 와서 주방에서 다듬을 생각으로 거실을 지나다가 마침 맞은편 방에서 나오는 선생님과 마주쳤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방문을 열고 나를 보자마자 소스라치듯 놀라더니 소리를 지르지 뭐예요. 그 소리에 나 역시 놀라 더 큰 소리를 지르며 뒤로 주춤 물러서다가 하마터면 화분을 깨뜨릴 뻔했습니다.

“미옥 씨인 줄 몰랐어요.”

선생님은 가슴에 손을 얹고 쓸어내리며 말했습니다. 우스운 일이었어요. 이 집에는 선생님과 나, 둘밖에 없고 누군가 자기가 아닌 사람의 기척이 들린다면 그건 분명히 상대방이라는 것이 분명할 텐데 서로의 모습을 보고 놀라게 되었다는 것이요. 나는 어쩌면 마음이라는 것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피부로 느껴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서로를 향한 경계심이, 거리감이 드러나는 거라고요. 선생님이 나를 보고 깜짝 놀라게 되었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미안해요, 난 미옥 씨가 밖에 있는 줄 알았거든요.”

“조금 아까 들어왔어요.”

“아무래도 이 집은 둘이 지내기에는 지나치게 넓은 것 같아요.”

집은 고작 서른 평 남짓이었는데도 나 역시 선생님의 말처럼 집이 휑하게 넓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글은 잘 돼가느냐고 말을 돌렸어요. 선생님은 그럼요, 잘 되어가고 있죠, 라고 대답하는데 마치 한 번도 내게 글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는 것으로 들렸습니다. 그다음부터는 원고에 대해서 일절 묻지 않았어요. 일부러 미리 밥을 먹고, 선생님의 식사는 따로 차리는 적도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점점 더 소설에 몰입하는 것 같았습니다. 밖으로 나오는 시간이 눈에 띌 만큼 줄어들었고 오밤중에 깨서 화장실이라도 가다가 선생님의 방을 지날 때면 그때까지 불이 켜져 있는 날도 많았어요. 글이 잘 풀리는 거야 좋은 일이지만 선생님은 나날이 안색이 나빠지고 신경이 날카로워졌습니다. 가끔 서울에서 걸려오는 전화에도 퉁명스럽기 그지없었어요. 어떤 날은 성질을 버럭 내기도 했고 또 어떤 날에는 아주 이상하게 친절하기도 했어요. 평소와는 다르게 아주 애교 있는 목소리였습니다. 그 모습이 신경질적인 선생님의 모습만큼이나 이상하게 보여서 나는 선생님이 통화를 할 때면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습니다. 선생님이 좀 쉬어가면서 일을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더 이상 그런 얘기를 나눌 만한 사이가 아니었습니다.

선생님이 나를 싫어한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너무 게으르고 인생을 허투루 보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하고요. 아마 그건 내가 선생님을 이상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꺼린 채 신경을 곤두세우고 건강을 해쳐가면서 책상 앞에만 앉아 있는 선생님의 모습이 어리석게 보였으니까요.

선생님은 내게 원고를 보여주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내가 몰래 읽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인지 파지를 방 밖으로 내놓지도 않았어요. 내놓는 종이는 서울에서 동생이 보내주는 주간지 정도가 전부였습니다.

이제는 인사를 나누는 일조차 서먹했습니다. 선생님은 점점 더 살이 빠지고 신경은 곤두서 있었고 나는 나대로 주눅이 들어 무뚝뚝해졌죠. 관계는 완전히 끝난 것처럼 보였습니다. 남편과 이혼을 할 때도 나는 꽤 담담하게 대처를 한 편인데, 고작 몇 개월을 함께 지냈다고 이렇게 서운한 마음을 품는다는 게 신기했습니다. 그 무렵 경선이가 결혼식을 올렸어요. 나름대로는 치장이랍시고 화장까지 하고 가장 아끼던 투피스를 꺼내 입고 외출을 하고 돌아왔는데도 선생님은 내게 어디를 다녀오느냐고 묻지 않을 정도로 사이는 멀어져 갔습니다. 어떻게 해야 다시 전과 같은 사이로 돌아갈 수 있는 걸까, 아무리 고민해도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어요.




한겨레출판 문학웹진한판 바로가기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최정화의 <지극히 내성적인 살인의 경우>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