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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2.29 09:32 수정 : 2014.12.29 09:51

백수린 소설 <길 위의 친구들> ⓒ이현경



백수린 소설 <1화>



우리는 끝을 향해 가기로 했다.


지난 몇 년간 친구들과 여행을 계획한 적이 있긴 했지만 단 한 번도 실행 단계까지 도달한 적은 없었다. 친구들이 하나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삶이 가족 중심으로 한정되기 시작하면서 우선순위가 바뀐 탓이었다. 계절에 따라 햇빛의 농도가 달라지는 것이 그러하듯, 나는 이 모든 변화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렇지만 이번에도 흐지부지될 줄 알았던 여행 계획이 눈앞의 현실로 다가왔을 때 나는 내가 이런 일을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깨달았다. 커다란 배낭에 옷가지와 화장품 샘플을 챙겨 넣으면서, 고작 2박 3일 지방에 다녀오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들뜬 기분이었다.

이번 여행이 성사된 것은 신문에 실린 한편의 글 때문이라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올해 나는 별 볼 일 없는 단편소설을 써서 신춘문예에 당선이 됐다. 당선된 뒤 삶이 달라진 것은 딱히 없었지만 한 가지만은 분명히 깨달을 수 있었다. 그것은 내 소설을 당선시켜준 신문의 독자 폭이 생각보다 꽤 넓다는 사실이었다. 오래전 알고 지냈다가 연락이 끊겼던 사람들이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축하한다며 연락을 해왔다. 그중에는 예전에 잠깐 만났던 남자도 있었고, 고등학생 때 짝사랑하던 국어 선생님도 있었다. 그런 연락은 대개 반가웠지만, 짧은 몇 마디를 주고받고 나면 끝나게 마련이었다. 그리고 3월을 지나가면서부터는 그런 연락을 받는 일조차 뜸해지기 시작했다.

민아가 연락해온 것은 그로부터 한참 후인 10월 말이었다. 등단하고 거의 1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이었다. 민아와 통화하는 것은 퍽 오랜만이었다. 우리는 대학 시절 친하게 지냈지만 민아가 신랑의 직장 탓에 목포로 이사 가고 나서부터는 거의 교류가 없었다. 민아는 등단 소식을 들었다며 뒤늦게나마 축하 인사를 전하고자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어떻게 등단해놓고 나에게 연락을 안 할 수가 있니?” 민아는 진심으로 섭섭한 말투였다. “아무래도 아기 키우고 그러니까 바쁠 것 같아서.” 이것 역시 어느 정도는 나의 진심이었다. 이런저런 대화 끝에, 민아는 나에게 얼굴도 한번 볼 겸 함께 여행을 갈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다. “작가 선생님이 된 네가 어떻게 변했나 보고 싶으니까 바빠도 꼭 같이 가줬으면 해.” 민아와 둘이 보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고, 단둘이 하는 여행은 처음이었다. 평소에는 충동적인 결정을 하거나, 귀찮은 일을 벌이는 데 적극적이지 않은 나였지만 친했던 친구와의 여행을 생각하니 제법 설렜다. 등단 소식을 미리 전하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도 어느 정도는 작용했을 것이다. “그래서 어디로 갈 생각인데?” 웃음 섞인 나의 질문에 민아는 잠시 머뭇대더니, 조심스러운 말투로 “해남에 다시 가보면 어떨까?” 하고 물었다.

해남에 도착한 것은 다섯 시간 동안 고속도로를 달려온 뒤였다. 우리는 해남종합버스터미널에서 만나기로 되어 있었다. 민아는 직접 운전해서 해남에 오겠다고 말했다. 우리는 해남에서 1박을 한 뒤, 목포의 민아 집에 가서 하루 더 놀기로 결정했다. 나는 버스에서 내리기 전에 콤팩트를 꺼내 화장을 살짝 고쳤다. 날씨는 늦가을답지 않게 따뜻했다. 터미널에서는 달짝지근한 자판기 커피 냄새가 났다. 양지바른 창가에서는 폴리에스테르 소재의 점퍼를 입은 사내가 흙 묻은 고구마와 직접 따다 볕에 말렸다는 산고사리를 박스째 팔고 있었다. 나는 두리번거리며 터미널 안을 걸어나갔다. 매표소 앞 벤치 위에 앉아 있던 누군가가 나를 보고 손을 들어 올렸다. 머리가 짧아져 알아보는 데 시간이 걸렸지만, 민아였다.






*파블로 네루다의 시 <길 위의 친구들> 에서 제목을 빌렸음.





백수린(소설가)





백수린

1982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201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거짓말 연습>이 당선되었다. 소설집 《폴링 인 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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