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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2.31 09:44 수정 : 2014.12.31 09:44

백수린 소설 <3화>



우리는 읍내에서 점심을 먹은 뒤 예전처럼 땅끝마을에 가기로 했다. “옛날에 그랬던 것같이 땅끝 전망대에서 일몰을 보고, 우리가 묵었던 민박집에서 하룻밤을 자자.” 말만으로도 우리는 그 시절로 돌아간 양 설렜다. 우리가 모른 척하면 우리 사이에 많은 시간이 흘렀다는 사실이 없어질 수 있기라도 한 듯이. 우리는 그해 우리가 했던 모든 일들을 기꺼이 복기하고 싶었다. 어쩌면 민아도 나처럼 만회, 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우선 그 겨울, 점심을 먹었던 식당을 찾아 식사를 한 뒤 땅끝에 가기로 했다. 식당은 전통 시장 근처에 위치해 있었는데, 하필이면 장날이라 주차할 자리를 찾기 위해 한참을 헤매야 했다. 색색의 파라솔이 세워진 시장은 해수욕장같이 보였다. 파도가 밀려오고 빠져나가듯, 알록달록한 색깔의 누비옷을 입은 아주머니들이 커다란 비닐봉지를 끌며 밀려왔다가 빠져나갔다. 인파를 뚫고 가까스로 다다른 식당에는 손님이 거의 없었다.

우리는 메뉴판을 보고 음식을 주문했다. 얼마 안 있어 금세 반질반질한 상 위로 참기름에 살짝 무친 나물 몇 가지와 잘 익은 김치가 작은 종지에 담겨 올려졌다. 삼삼하니, 맛있네. 누군가 틀어놓은 가게의 텔레비전에서는 리포터가 천일염 대신 중국산 정제염으로 배추를 절인 업체들을 고발하고 있었다.

“저런 놈들 때문에 우리가 손해를 보는 거야.”

주인아주머니는 우리가 주문한 떡갈비를 상 위에 내려놓으며 혼잣말인 양 중얼거렸다. 가만 들어보니 절인 배추의 대부분이 해남에서 생산되는데, 저런 비양심적인 업체들 때문에 해남 주민들 전체의 장사가 안 돼서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 요지였다.

“사람들이 너무 이기적이에요.”

우리는 최대한 공손한 말투로 아주머니에게 호응을 해드리며 음식을 먹었다.

“그런데, 얼마 전에 텔레비전을 봤는데 환자식 잔반을 재활용하는 병원도 많다더라.”

아주머니가 사라지자 민아가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작은 병원에서는 영양관리사 둬야 하는 법 적용이 안 돼서 그런 거래.”

민아는 중요한 비밀을 이야기하는 듯 심각한 얼굴이었다.

“너 큰 병원 갈 수 있게 보험은 들어놨어? 부모님 보험도 필요한 것 다 들었고?”

민아 신랑이 보험 회사에 다녔었나? 갑자기 피곤해졌다.

“아기가 생기니까 병원 갈 일도 많아지고 그런 일들이 예삿일 같지가 않은 거 있지.”

그렇게 말하더니 민아는 밥을 먹다 말고 휴대전화를 꺼내어 아기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커다란 리본을 머리에 매단 채 엉덩이를 들썩이는 민아의 딸은 결혼식 날 본 적 있었던 신랑의 얼굴을 똑 닮았다. 아이가 카메라를 보고 웃자 민아도 아이를 따라 웃었다. 아이의 엄마가 된 민아. 민아는 유행에 민감하고, 현실감각이 우리 중 가장 뛰어난 아이였다. 두 달에 한 번은 미용실에 가고, 그 계절에 유행하는 색의 색조 화장품은 꼭 챙겨서 사던 아이.

“미안.”

갑작스러운 내 사과에 민아는 영문을 알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그리고 휴대전화를 상 위에 올려놓고 다시 밥을 크게 한 숟가락 뜨다가 갑자기 생각난 듯이 말했다.

“참, 땅끝 가는 길에 그때 그 절에 들러보지 않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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