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린 소설 <7화>
“혹시 카보 다 로카(Cabo da Roca) 나오던 소설 기억해?”
반도의 최남단임을 상징하는 땅끝탑 앞에 이르렀을 때, 민아가 물었다.
“응, 당연하지.”
민아가 그 소설을 기억하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것은 송이 졸업 직전 문집에 실었던 소설이었다. 나는 작년 이맘때쯤 신춘문예에 투고할 소설의 첫 문장을 수없이 고쳐 쓰다가 침대 아래 처박아둔 문집들을 꺼내어봤기 때문에 그 소설을 기억하고 있었다. 송의 소설 속에서 주인공 K는 가까스로 찾아온 카보 다 로카 곶에서 몇 줄의 글이 담긴 유리병을 바다로 집어 던졌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대충 이런 식의 문장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곳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기 전까지 유럽인들에게는 대륙에서 가장 먼 서쪽 땅이라고 알려져 있던 곳이라 했다. 대륙의 서쪽 끝. 그러나 끝에 가닿은 사람은 알 수 있다. 끝이라고 생각했던 그곳이 결코 끝이 아니라는 것을. 끝인 곳에 이르면 길은 새로 시작된다. 단지 끝을 보기 전에는 아무도 그것을 상상할 수 없을 뿐이다. 벼랑 끝에 몰려, 이름마저 바꾸고 연고가 없는 낯선 도시에 가 홀로 정착하는 인물이 등장하던 송의 소설들은 대부분 이런 식의 터무니없이 낙관적이고 희망찬 말들로 끝났다. 허무에 기대는 것은 차라리 쉬운 거라고, 송은 언제나 내게 말했다.
아마도 민아의 청첩장을 받기 위해 셋이 모였던 날이었을 거다. 결혼식에는 가지 못할 것 같다며 송이 대신 전해달라고 5만 원을 내게 쥐여줬던 날. 아주 오랜만에 만난 송은 얼굴에 핏기가 하나도 없었다. 그때 나는 수습사원으로 일하던 잡지사에서 정직원으로 전환되는 데 실패해 마음에 여유가 전혀 없었다. 송은 여전히 각종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습작을 하고 있었다. 그즈음, 송은 기면증에 걸린 사람처럼 어디서든 갑자기 고꾸라져 잠든다고 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어?” 하고 묻자 송은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그 대신 번번이 소스라쳐서 잠에서 깨어난다고 답했다. 악몽을 꾸기 때문이었다. 송은 꿈꾸는 동안 손을 하도 꼭 쥐어 자다 깨어보면 손바닥에 손톱자국이 선명히 찍혀 있다고 말했다. “어디 아픈 건 아니니?” 하혈이 몇 달째 멈추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지 말고 산부인과에 가.” 내가 말했다. “혹시라도 병이 발견되면 어떻게 해.” 행복해 보이는 민아와 헤어지고 우리는 버스 정류장에 서서 버스가 오기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그러면 치료를 해야지.” 버스는 오지 않았고, 송은 아이보리 종이에 금박 테두리를 두른 청첩장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수술해야 한다는 말을 듣기라도 하면 더 많은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잖아. 그런 건 너무 무서워”라고 말하던 송.
그날, 소설 같은 것, 이제 더 이상 쓰지 마, 그렇게 말했으면 뭔가 달라졌을까. 수술이 필요하면 쓰라고, 돈을 뽑아서 쥐여줬더라면.
송이라는 이름을, 의식적으로, 언급하는 것을 피했기 때문에 우리의 대화는 어딘지 조금씩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것을 민아도, 나도, 똑같이 느꼈겠지만, 그러나 민아도, 나도, 둘 다 그 사실을 모른 척했다. 그렇게 할 때만 우리의 관계가 지속될 수 있음을 알았기 때문에. 새로운 관계를 만들며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곳에서 병을 던지면 카보 다 로카 곶의 누군가가 받을 확률이 과연 있을까?”
암초 위로 파도가 거품을 내며 부딪쳤다가 사라졌다.
“그런 일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 아닐까?”
송이 나의 인생에서 사라져버린 뒤, 다시 찾아 읽은 그녀의 소설 속에서 K는 바닷바람 소리보다 더 크게 숨을 몰아쉬며 세상의 끝을 향해 걸어나갔다. 구름이 짙게 드리워진 하늘 아래 황량한 바다. 잔영 속에 폐허 같은 모습을 드러낸 절벽 위의 십자가 돌탑. 그것을 향해 걷는 남루한 사내의 더운 입김, 한쪽으로 치우치는 발걸음, 홀로 오래 걸은 자 특유의 체취, 고독, 회한, 열망 따위의 감정들. 자신이 결코 가본 적 없었을 세상의 반대편 끝을 형상화하기 위해 송이 수없이 지우고 또 지웠을 문장들을 상상하면 어쩐지 외로워졌다.
“네가 소설가가 되어서 기뻐.”
민아의 얼굴이 순간 너무 진지해 나는 늘 말하듯, 난 아직 소설가가 아니야, 라고 대꾸하지 못했다.
“계속 열심히 써라.”
삶에 생로병사가 있듯 사람 간의 관계에도 생로병사가 있다던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 말은 한때 내게 위로가 되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말을 처음 한 사람은, 모든 관계가 생로병사를 겪으며 자연사하는 것이 아님을 모르는 게 분명했다. 나는 지척에서 우리에게 닿을 것처럼, 닿을 것처럼, 밀려왔다가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보며,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사고사로 끝나는 수많은 관계들에 대해서 생각했다. 기습적으로, 불시에, 사멸하는 관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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