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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5.01 15:31 수정 : 2015.05.01 19:16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29일 밤 서울 여의도 당사 선거상황실에서 4·29 재보선 개표 결과 광주 서구을을 제외한 3개의 선거구 모두 이긴 것으로 나타나자 박수를 치고 있다. 그러나 새누리당 지도부는 선거 이?날 일제히 몸을 바짝 낮추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18

4·29 재보궐 선거가 새누리당의 압승, 새정치민주연합의 완패로 끝났습니다. 선거 결과는 문재인 대표와 야당 지지자들에게 큰 좌절을 안겼을 것입니다. 반면에 김무성 대표와 새누리당 지지자들은 무척 기뻤을 것입니다.

그런데 선거 다음날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에서 김무성 대표와 당 지도부 인사들은 뜻밖의 태도를 취했습니다. 몸을 바짝 낮췄습니다. ‘부자 몸조심’이라는 말이 있지만 그런 수준을 넘어서는 파격적 발언이 이어졌습니다. 좀 길지만 간추려서 소개하겠습니다. 자세히 읽어보면 새누리당 지도부의 생각을 알 수 있습니다.

‘부자 몸조심’이라 하기엔 파격적인 겸손

“재보선을 치르며 우리 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혐오감이 매우 높다는 것을 느꼈다. 모두가 불신받는 상황에서 세 곳 이겼다고 진정 승리라고 말할 수 있는지 냉철하게 짚어봐야 한다. 어떻게 하면 정치혐오증을 떨쳐낼지 여야 모두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짜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치는 공멸한다. 승리의 기쁨보다 솔직히 내년 총선이 더욱 걱정되는 상황이다. 새누리당은 초강도 정치개혁을 통해 부정부패 없는 대한민국을 만들고 국민 신뢰 회복에 최선을 다하겠다. 어제도 말했는데 선거 과정에서 다소 수위 높은 발언을 한 데 대해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마음을 다친 사람들에게 양해를 부탁한다.”(김무성 대표)

“우리당은 선거 결과에 대해 결코 착각하지도 자만하지도 않겠다. 오히려 민심 앞에 더 낮은 자세로 국정개혁에 임하겠다는 각오다. 총선이 1년도 채 안 남았다. 짧은 기간 동안 민심은 수십번 바뀔 수 있다. 4월 국회가 끝나는 대로 원내대표단과 정책위의장단을 중심으로 곧바로 총선 준비에 착수해 공약을 점검해 나가겠다.”(유승민 원내대표)

“이번 선거는 국민이 우리에게 분명히 준 메시지가 있다. 우리는 옷깃을 여미는 겸허한 마음으로 어려운 국민들의 일자리 문제와 경제 살리기에 올인해야 한다.”(서청원 최고위원)

“보수대혁신이 일어나야 한다. 우리를 다시 되돌아보는 반성과 성찰의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는 2004년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천막당사로 갔던 시절을 돌이켜 보아야 한다. 지금 국민들은 희망을 잃고 있다. 어디로 갈지 방황하고 있다. 내가 허리띠를 졸라 자식을 교육시키면 먹고 살겠지 이런 보편적 믿음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해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공동체가 와해되고 있다. 믿음을 회복하지 못하면 보수의 존재가치가 없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해야 한다.”(김태호 최고위원)

“오늘의 승리에 도취되면 큰일난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야당이 쏘아올린 정권심판론 화살은 힘을 잃고 빗나갔지만 총선이 1년도 안남았다. 내년에는 화살이 어마어마한 위력으로 우리를 향해 날아올 것이 분명하다. 그 화살을 막아내려면 국민의 믿음과 희망을 키우는 일 밖에 도리가 없다. 겸손하게 물불 안가리고 개혁을 추진하고 성과를 내야 한다. 인물에서 우위를 점하지 않으면 안된다. 다양한 인물을 발굴해 육성해서 내세워야 한다. 피나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이인제 최고위원)

“국민에 가까아 다가가는 진정한 국민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김을동 최고위원)

“광주에서 새누리당 후보가 패배했지만 의미있는 득표를 했다. 대표를 포함해 지도부가 조금도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지원했다. 앞으로도 호남에서 새누리당은 결코 오목을 두지 않고 바둑을 둘 것이다. 큰 판을 보고 가면 지긋지긋한 지역주의에 금이 가고 둑이 무너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이정현 최고위원)

“선거에서 나타난 국민의 뜻은 정쟁을 그만하고 민생을 챙기라는 것이다. 정책위원회는 세 의원이 지역주민에게 약속한 공약사항이 이뤄지게 적극 뒷받침할 것이다.”(원유철 정책위의장)

“자만하지 않고 더 낮은 자세로, 겸손한 자세로, 국민을 섬기는 자세로 새누리당이 국민으로부터 사랑받고 신뢰받을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이군현 사무총장)

그들은 원래 오만불손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런 발언을 단순히 겸손이나 엄살로 치부할 수 있을까요? 새누리당 지도부가 선거에서 완승을 거두고도 이처럼 자세를 낮추는 이유가 뭘까요? 여당 지도부가 본래부터 이렇게 겸손한 사람들이었을까요?

1997년 9월30일 대구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신한국당 임시전당대회에서 이회창 신임 총재(왼쪽)가 명예총재로 추대된 김영삼 대통령과 함께 당원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오래전 이야기를 해 드리겠습니다. 제가 여당반장으로 신한국당을 출입하던 1996~1997년의 일입니다. 당시 신한국당 지도부는 현직 대통령인 김영삼 총재, 이홍구 대표, 강삼재 사무총장, 서청원 원내총무, 이상득 정책위의장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아! 대표비서실장을 초선인 이완구 의원이 하고 있었습니다.

1996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국당은 야권의 거센 도전을 물리치고 139석의 원내 제1당을 차지한 상태였습니다. 김대중 총재의 새정치국민회의는 79석, 김종필 총재의 자민련은 50석을 차지했습니다. 통합민주당은 15석으로 교섭단체의 지위를 잃었습니다.

당시 집권여당이던 신한국당에는 수많은 대선주자들이 있었습니다. 이회창 이홍구 이한동 이수성 김윤환 김덕룡 최형우 박찬종 이인제 등 대선 예비주자들을 언론은 ‘8룡’ ‘9룡’으로 불렀습니다. 김대중 총재가 정계에 복귀한 상태였지만 1997년 대통령 선거에서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것은 거의 확실해 보였습니다. 신한국당 지도부 인사들은 누구나 이런 말을 자주 했습니다.

“누구든 우리 당 후보를 차지하면 다음 대통령이 된다. 아무나 나서도 디제이(김대중)를 꺾을 수 있다. 디제이는 역대 최약체 후보다. 그가 대통령이 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거기다가 우리는 검찰과 경찰, 안기부 등 모든 권력을 장악하고 있다. 따라서 어떤 상황이 벌어져도 정권이 넘어가지는 않는다.”

김대중-김종필 연합이 성사될 가능성에 대해 신한국당 사람들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했습니다. 그들의 ‘이상한 삼단논법’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디제이는 대통령이 안될 것이다. 왜냐하면 디제이피 연합은 실패할 것이기 때문이다. 혹시 될 것 같으면 우리가 깨면 그만이다.”

흥청망청하다 패배한 97년 대선…첫 풍찬노숙

당시 신한국당은 흥청망청이었습니다. 고위 당직자들은 물론이고 중하위 당직자들도 룸살롱에서 술을 마셨습니다. 당직자들의 안중에 출입기자들은 없었습니다. 취재와 언론 플레이의 상당 부분이 고위 당직자들과 언론사 간부들 사이에서 이뤄졌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그들의 예언대로 흘러가지 않았습니다. 디제이피 연합은 성공했고 이인제는 경선에 불복하고 탈당을 해서 출마했습니다. 외환위기까지 터졌습니다. 그리고 절대로 넘어가지 않을 것 같던 권력이 넘어갔습니다.

그 뒤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만년 여당’으로 흥청대던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가 거리로 쫓겨났습니다. 정권을 잡은 쪽이 차지할 수 있는 자리가 수천개, 아니 수만개에 이르던 시절입니다. 정권교체는 정부와 공기업체는 물론이고 학계, 재계, 언론계 등 민간 영역까지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만년 야당’ 사람들이 대기업에 줄줄이 취직을 했습니다. 정권에 줄을 대려면 로비 창구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 전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있던 ‘만년 여당’ 사람들은 쫓겨났습니다.

1997년 대선 패배 이후 한나라당은 이회창 총재를 중심으로 결속했습니다. 정권을 놓친 충격은 컸지만 정권을 다시 잡을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다시 잡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한나라당 사람들이 자신감을 회복한 계기는 2000년 총선이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2000년 총선에서 새천년민주당을 창당해 의회권력 교체를 시도했습니다. ‘새피’를 과감히 수혈했고 총선 사흘 전에 남북정상회담을 발표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디제이의 이런 원대한 기획을 좌절시켰습니다. 선거 결과는 전체의석 273석에서 한나라당 133석, 새천년민주당 115석이었습니다.

총선 이후 한나라당은 2002년 대선 승리를 확신했습니다. 당직자들의 얼굴에 다시 활기가 돌기 시작했습니다. 이회창 총재는 가는 곳마다 차기 대통령 예우를 받았습니다.

정신 못차리고 5년 뒤 또 패배…탄핵 후폭풍 뒤 깨달음

2004년 3월20일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무효를 주장하며 서울 광화문 일대에 모인 촛불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이회창 후보가 노무현 후보에게 패배했을 때 한나라당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정몽준 의원이 노무현 후보 지지를 철회하기까지 했는데도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이유를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한나라당 사람들은 1997년 대선 패배 이후에도 세상의 변화를 전혀 읽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나라당 사람들은 또다시 5년을 시베리아 벌판에서 떨어야 한다는 현실을 좀처럼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사태의 근본 배경에는 한나라당 사람들의 이런 심리가 깔려 있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탄핵의 역풍은 무서웠습니다. 박근혜 대표가 나서지 않았다면 2004년 총선에서 한나라당 의석은 100석 이하에 그쳤을 것입니다.

한나라당 사람들의 인식과 태도에 확실한 변화가 시작된 것은 2004년 총선 뒤의 일입니다. 당장 두 가지가 달라졌습니다. 첫째, 당직자들의 눈빛, 둘째, 인사를 할 때 머리를 숙이는 각도였습니다. ‘만년 여당’의 디엔에이가 마침내 바뀌기 시작한 것입니다.

변화와 혁신의 반대급부는 선거 승리였습니다. 한나라당은 2006년 지방선거, 2007년 대통령 선거, 2008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잇달아 승리했습니다. 이명박 정권에서 치러진 2010년 지방선거에서 단 한 차례 고전했을 뿐입니다.

2012년 봄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만났던 새누리당 실무 당직자의 말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는 총선에서 당직자 몫으로 비례대표 공천 신청을 할 수 있을 정도의 고참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비례대표 신청을 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이유를 물었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믿으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야당 10년을 해보니까 내가 국회의원 안하더라도 여당을 하는 것이 더 낫습디다. 제 몫의 비례대표 자리에 외부에서 참신한 명망가를 한 사람이라도 더 데려와야 총선에서 이기고 연말 대선도 유리할 것 같아서 공천 신청을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저는 그 얘기를 듣고 약간의 충격을 받았습니다. 정치인들은 자신이 속한 정당의 집권보다도 자신이 국회의원 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알고 있었는데 이 사람은 전혀 다른 얘기를 한 것입니다. 그 뒤로 새누리당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어떻게 ‘만년 여당’ 체질을 벗을 수 있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들의 얘기를 종합하면 이랬습니다.

뼈에 새긴 3불(三不): 분열·자만·오버…그럼 다음 선거는?

내년 총선과 2017년 대선에서도 새누리당은 승리할까? 큰 선거에서 승부를 가르는 것은 여당의 업적, 야당의 정책역량, 후보의 인물됨 등 본질적인 부분이라 선거 결과를 지금 장담할 수는 없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1997년 이인제 후보의 독자 출마로 우리는 정권을 잃었습니다. ‘분열하면 진다’는 첫번째 교훈을 얻었습니다. 200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우리는 승리를 확신하고 자만했다가 정권을 또다시 잃었습니다. ‘자만하면 진다’는 두번째 교훈을 얻었습니다. 2004년 민심을 거스르고 노무현 대통령을 쫓아내려고 했다가 쫄딱 망할 뻔했습니다. ‘오버하면 망한다’는 세번째 교훈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세 가지 교훈을 뼈에 새겼습니다. 각골난망(刻骨難忘)이라는 말이 있지요. 우리에게는 세 가지 교훈이 바로 그것입니다.”

세 가지 교훈 때문일까요? 새누리당은 이명박 정부의 실정에도 불구하고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했습니다. 앞으로 새누리당은 어떤 상황에서도 분열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만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오버하지 않을 것입니다.

재보선 바로 다음날 김무성 대표와 최고위원들, 고위 당직자들이 바짝 자세를 낮춘 이유를 조금 이해하시겠습니까?

그렇다면 여당은 앞으로도 모든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요? 내년 총선과 2017년 대선에서 새누리당이 이길까요? 반드시 그렇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를 비교해 보면, 박근혜 후보는 ‘준비된 여성 대통령’이었고 문재인 후보는 지지자들에 의해 억지로 끌려나온 ‘초선 정치인’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두 사람의 득표율 차이는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진정성, 절박감, 태도, 열정 등은 정치의 매우 중요한 요소지만, 결국 큰 선거에서 승부를 가르는 것은 여당의 업적, 야당의 정책역량, 후보의 인물됨 등 본질적인 부분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2017년 대통령 선거에서 어느 쪽이 이길까요?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관련 영상] 물귀신 새누리 ‘돈 먹고 표 먹고’ / <한겨레TV> 돌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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