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8.27 16:44
수정 : 2015.08.28 07:47
성한용의 정치 막전막후 36
여야 첨예한 대치 중재로 해결하려는 ‘특이한’ 정치인
부산 출신이나 호남과도 인연…지역화합에 관심 많아
정치인의 말과 행동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정치인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좀 특이한 정치인입니다. 그에 대한 정치적 평가는 엇갈립니다. 여야의 첨예한 대치를 중재로 풀다 보니 어느 때는 여당으로부터, 어느 때는 야당으로부터 욕을 먹습니다.
그래도 그의 진정성과 일관성에 대해서는 의원들이 여야를 막론하고 대체로 인정하는 편입니다. 그는 영호남 화합과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오랫동안 남다른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정치인입니다.
세월호 참사 500일 앞두고 팽목항 찾아…
정의화 국회의장이 세월호 참사 500일을 하루 앞둔 27일 진도 팽목항을 찾았습니다. 정 의장은 팽목항 임시분향소에서 헌화와 분향을 한 뒤 실종자 가족들을 위로했습니다. 실종자 가족들과의 대화 내용과 현장 표정을 국회의장실에서 배포한 보도자료와 <연합뉴스> 기사를 토대로 재구성해 보았습니다. 정의화 의장의 기자간담회 발언입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 모두 진심으로 울었고, 진심으로 분노했고, 원망했다. 무기력과 절망 죄책감을 느끼며 많은 반성과 결심이 있었다. 우리 사회의 근본적 문제인 인명경시 풍조, 안전에 대한 불감증 해결이 시급하다. 우리사회가 이제는 물질주의에서 벗어나 물질과 정신이 조화를 이루는 사회로 바꿔나가야 한다.”
“우리 모두 세월호가 차가운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을 때의 참담함과 비통함을 잊지 않고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어나가는 데 앞장서야 한다. 세월호 참사 이후 500일이 흘렀다. 세월호 인양은 미수습자 9명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대한민국 국회가 국민 모두를 끝까지 지켜야 하는 의무와 책임이 있는 만큼 국회의장으로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
실종자 가족들은 정의화 의장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진도 팽목항에는 9명의 실종자 가족이 아직 머물고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수색 종료 선언 이후 9개월이 지나서야 정부가 사고 해역에서 인양 준비에 들어갔다. 답답한 일이다. 인양 현장의 안전과 유실 방지에 힘써 조속하고 온전한 인양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달라.”
“세월호 특별법의 배·보상금과 위로지원금 접수가 다음달 28일 종료되는데 지금 이런 일에 신경쓸 수 없는 가족들의 트라우마를 헤아려 달라. 9명의 시신 미수습자 가족만큼은 가족의 유해라도 찾은 뒤 이러한 절차를 밟을 수 있도록 예외 조항을 마련해줬으면 좋겠다.”
“집에 있으면 아이가 문을 열고 돌아올 것만 같고 마음이 아프고 ‘내가 죽었어야 한다’고 탄식하는 연로한 시어머니를 찾아뵐 수조차 없다. 유족들의 심리치료 지원과 그동한 함께 희생을 감내한 진도 주민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
정의화 의장은 이렇게 답변했습니다.
“나 역시 비슷한 아픔을 겪어 그 마음을 안다. 9명의 시신이라도 찾기를 바라는 마음을 국민이 동의했기 때문에 세월호 인양이 추진됐다. 돈이 얼마가 들고 하는 차원이 아니기 때문에 하루빨리 인양하고 그 안에 9명의 미수습자가 모두 있기를 기도한다. 인양 중 철저한 유실 대비를 위해 국회의장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
“시신을 찾을 때까지 미수습자 가족을 배·보상 협의 대상에서 제외해달라는 건의를 법사위원장 등 국회 차원에서 논의하겠다. 무엇으로도 위로나 보상이 될 수 없는 것을 안다. 유족들끼리라도 자주 만나 서로 위로하고 대화하며 정신 건강을 잘 보살피기 바란다. 정부가 희생자의 가까운 가족들을 개인별로 인터뷰해서 정신과 치료를 지원할 수 있도록 건의하겠다.”
30년 전 청량리역 화재 때 장인 잃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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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화 국회의장이 27일 오전 진도 팽목항을 찾아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을 만나 면담하고 있다. 26일부터 1박 2일 일정으로 광주·전남을 방문한 정 의장은 오는 28일 세월호 참사 발생 500일을 앞두고 이날 팽목항을 찾아 분향소를 참배했다. 2015.8.27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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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화 의장이 겪었다는 ‘비슷한 아픔’이 뭘까요? 정 의장의 장인은 88명이 한꺼번에 숨진 1974년 청량리역 대왕코너 화재의 희생자였습니다. 사고 직후 시신을 확인하지 못해 애를 태웠던 아픈 상처가 있습니다.
정의화 의장은 26일 전남대에서 명예법학박사 학위를 받고 애초에는 홍도를 방문할 예정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 발생 500일이라는 얘기를 듣고 중간에 발길을 진도로 돌린 것입니다. 정 의장의 팽목항 방문에는 우기종 전라남도 정무부지사, 손영호 진도 부군수, 김성 국회의장정책수석, 이민경 부대변인, 전종민 대외협력비서관 등이 함께했습니다.
정의화 의장이 전날 전남대에서 명예법학박사 학위를 받은 것도 영호남 갈등 해소와 관련이 있습니다. 전남대는 영남 출신의 정 의장이 입법활동을 통해 지역화합과 통합의 정치 실현에 두드러진 족적을 남긴 공로를 인정해 학위를 수여한다고 밝혔습니다. 정의화 의장의 답사를 간략히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제가 호남과 인연을 맺은 지도 40년이 넘었다. 저는 부산대 의대를 졸업하고 서울 세브란스병원에서 인턴을 끝낸 후 1974년 3월 전주예수병원에서 4년간의 신경외과 전문의 과정을 시작했다. 평소 관심이 많았던 전통문화에 대한 호남인들의 애정에 무한한 공감대를 느꼈고 타지 출신인 저에게 조건 없이 선의를 베풀어주는 호남인들의 정성에 감동했다. 돌이켜보면 그때부터 호남에 대한 저의 짝사랑과 동서화합을 위한 여정이 시작된 것 같다.”
“정치에 입문한 후 ‘동서화합 없이 대한민국 미래는 없다’라는 신념으로 동서화합과 낙후된 호남 발전을 위해 앞장섰다. 지금도 제가 생각하는 우리 시대 최대의 화두는 화합이고 통합이다. 이제 우리는 분열과 갈등의 시대를 넘어 화합과 통합의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
“특히 광복 70주년이자 분단 70년인 올해, 통일의 문을 활짝 여는 ‘통일의 원년’이 되길 바랐다. 최근 남북 합의를 시작으로 남북관계를 확고한 교류와 협력의 길로 이끌어가야 한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정치 입문 전부터 부산과 광주의 인사들로 ‘영호남민간인협의회’를 만들어 청소년, 문화, 학술 교류 활동을 펼쳤습니다. 재선 의원이었던 2004년 ‘한나라당 지역화합특별위원회’ 설치를 제안해 위원장을 맡기도 했습니다. 여수엑스포유치 특별위원회 위원장, 광주 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 유치위원장 및 조직위원장을 지낸 일도 있습니다. 참 특이한 정치인이지요?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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