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119
반기문 불출마로 대선주자급 ‘보스’ 사라진데다
개헌.반문재인 고리 등 취약한 ‘명분’도 이유지만
박근혜 혐오감 커져 정권교체론이 압도한게 주요인
정계개편이 무슨 뜻일까요? 학술 용어는 아닙니다. ‘판을 크게 흔들어 구도를 다시 짠다’는 정도일 것입니다. 엄청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정계개편이라는 용어를 쉽게 사용합니다. 정치인들도, 유권자들도, 언론도 정계개편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나라 정치가 그만큼 역동적이라는 얘깁니다. 어찌 보면 우리나라 정치는 고스란히 정계개편의 역사입니다.
1985년 2·12 총선을 앞두고 김영삼-김대중 ‘양김씨’가 이민우 총재를 앞세워 신민주당(신민당)을 창당했습니다. 정치규제에서 풀려난 인사들이 대거 합류했습니다. 선거 결과 ‘신민당 돌풍’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2중대’로 불렸던 민주한국당(민한당)은 몰락했습니다.
1987년 신민당의 이민우 총재가 전두환 정권과 내각제 타협 의사를 밝히자 김영삼·김대중씨는 의원들을 이끌고 탈당해 통일민주당을 창당했습니다. 이어서 양김씨가 대선후보 단일화에 실패하면서 김대중씨는 동교동계와 함께 탈당해 평화민주당(평민당)을 창당했습니다.
질풍노도의 시대였습니다. 야당발 정계개편 사례들입니다.
1990년 민주정의당(노태우)·통일민주당(김영삼)·신민주공화당(김종필)이 전격 합당했습니다. 여소야대 국회가 순식간에 여대야소로 바뀌었습니다. 김영삼 총재는 차기 대통령 당선을 위해 유리한 고지를 확보했습니다. 3당합당은 여당발 정계개편의 전형적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뒤에도 정치판의 큰 변화가 여러차례 있었습니다.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1992년 총선을 앞두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대통령선거 출마를 위해 통일국민당을 창당하고 교섭단체 구성에 성공했습니다. 1995년 김대중 전 총재가 정계복귀를 선언하고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했습니다.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이 새천년민주당을 창당했습니다. 2003년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한 정동영·천정배·신기남·이해찬 의원 등이 열린우리당을 창당했습니다. 열린우리당은 2004년 총선에서 과반의석을 차지했습니다.
2008년 총선에서 친박연대와 친박무소속연대가 돌풍을 일으켰습니다. 2016년 안철수 의원이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해 국민의당을 창당했고 교섭단체 구성에 성공했습니다. 2017년 김무성·유승민 의원과 남경필 경기지사 등이 새누리당을 탈당해 바른정당을 창당했습니다.
2008년 이후 사례는 정계개편이라고 하기보다는 ‘여권분열’이나 ‘야권분열’이라고 하는 것이 적절할 수도 있겠습니다.
정계개편에는 두 가지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명분’과 ‘보스’입니다. 정계개편 성공 사례를 보면 예외없이 명분과 보스가 있었습니다. 1985~1987년 정계개편의 명분은 전두환 정권 타도와 정권교체였습니다. 그리고 김영삼과 김대중이라는 보스들이 있었습니다. 1990년 3당합당의 명분은 국정안정이었습니다. 노태우·김영삼·김종필이라는 보스들이 있었습니다.
옛날 얘기를 장황하게 한 것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 이후의 정계개편 움직임을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지난해 연말부터 얼마 전까지 ‘제3지대 정계개편’이나 ‘빅텐트’ 등의 표현이 언론에 자주 등장했습니다.
|
손학규 ‘국민주권개혁회의’ 대표가 지난달 22일 오후 서울 세종로 세종홀에서 열린 국민주권개혁회의 창립대회 행사장에서 박수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
|
새누리당을 탈당해 무소속 자리에 앉게 된 이정현 전 새누리당 대표가 지난달 20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 출석해 바로 옆 자리의 바른정당 김무성, 유승민 의원 등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
기사공유하기